문득, 어떤 판타지 계열 이세계 웹소설에서 등장했던 대사가 떠오른다.


"애초부터 능력도 신체도 다른 종족들을 한 데 모아놓고, 평등하다고 선언했다고 해서 정말 평등해질 리가 없잖아."


엘프도, 드워프도 없는 현실이지만 이 대사는 소설을 읽던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불과 백여 년, 이백여 년 전까지만 해도 각각의 인류에게는 제각기의 분명한 신분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모두가 평등하다는 선언'으로 인해, 겉으로는 모두가 "하나의 평등하고 존엄한 인격체"로서 대우받게 되었다.


이론적으로는 사람들 간의 선천적 우월과 격차가 없어진 셈인데, 실질적으로 모두에게 평등한 대우가 이루어지는지 생각해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이런 식의 '겉보기 평등'은, 하류층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 큰 자괴감과 절망을 가지게 만든다. 이를테면, 삼백 년 전 돈도 없고 얼굴도 못생겼던 조선 노비 갑쇠와 현재 집에 돈도 없고 얼굴도 못생긴 대한민국 국민 똘똘이를 생각해 보자.


갑쇠는 태어나서부터, '노비는 양반에게 절대 대들면 안 된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노비의 신분은 평생 유지된다.' 등의, 불평등한 이데올로기를 주입받으며 자랐다.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몹시 불합리하고 야만적이지만, 갑쇠는 그것에 별다른 생각이 없다. 자신이 살아가며 마주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노비일 뿐더러, 밥 잘 먹고 잠 잘 자면 그게 그만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처지의 노비 을숙이와 결혼도 했다. 아이를 낳아서 무난하게 살다가, 노비로서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똘똘이는 어떤가? 태어나서부터 초등학교에서 계속 배우는 것이라고는,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 '인간은 모두 존엄하며 각자의 삶은 소중하다.' 따위의 것들이다.


그런데, 주변의 친구들이 좋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베스킨라빈스와 엽기 떡볶이를 친구들끼리 갈 동안, 똘똘이는 한참 구형인 스마트폰에, 아이스크림 하나 쉽사리 사 먹지 못한다.


더군다나, 옆 반 잘생긴 준식이는 중학교 때부터 예쁜 여자 친구를 달고 다니고, 고등학교 때는 인스타에 여친과 여행 간 사진, 스킨십하는 사진 등을 올려 댄다. 자신은 아무리 노력해도 이루기 어려운 사랑을, 준식이는 너무나도 쉽게 쟁취한다. 자신이 좋아하던 여자 아이도, 준식이의 옆에서 준식이와 가까워지려고 발버둥친다.


똘똘이는 필연적으로 의문을 가지게 된다. 대체 이게 어딜 봐서 평등하지? 내 삶도 분명히 존엄하다고 했는데? 대체 이게 어딜 봐서 존엄하지? 내 인생은 한없이 남들에 비해 불행하기만 한데? 정말 우리가 평등하긴 한 걸까?



주제를 조금 돌려서, 고등학교 시절 읽었던 한 비문학 지문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모든 생물이 자신의 유전자적 본능에 따라,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려고 살아간다는 이론에 관한 지문이었는데, 꿀벌과 개미 등이 예시로 등장했다.


번식 활동에 거의 참여하지 않는 일벌과 일개미의 경우, 자신을 희생하여 자신과 유전자가 비슷한 자신의 종족의 유전자 보존에 도움이 되도록 하기에 유전자를 남기려고 노력한다는 대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그 때는 지문을 보며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었다. 평생 성 경험도 없이, 다른 개미와 벌들의 번식을 돕기 위해 우직하게 일만 하다 죽는다는 게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흐르고 고등학교 생활이 끝나고 나니 나의 삶이 과연 일개미, 일벌과 무엇이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능 참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데 열심히 공부해서 남는 학벌? 돈? 그게 진짜 내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는 데 도움이 되나?


경제와 기술을 발전시켜, 다른 "여왕개미/여왕벌"들이, 선택받은 좋은 외모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아이를 낳기 용이하게 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 아닌가?


나 자신의 번식을 포기하고, 우직하게 일만 해서 다른 동족들의 번식을 돕는다... 생각할수록 나의 삶과 일개미들의 삶은 이상하리만치 겹쳐 보였다.


차라리 일개미들처럼, '모두가 평등하다' 따위의 구호가 없는 사회였다면, 종족이었다면 끝없는 박탈감과 허무함에 빠져서 살지 않아도 됐을까?


유전자는 전혀 평등하지 않다. 사회는 더더욱 그렇다. 외모도 성격도 망가진 쓰레기 같은 인생이 쓸모를 가지려면, 다른 인류의 편안한 삶을 돕는 하나의 톱니바퀴로서 기능하면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