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철학이 있어야 하는가? 이분법적으로 나누자면 사람은 철학과 신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있고 그저 때마다 맞닥드리게 되는 상황에 대응하는 맛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 전자는 (기억력이 정상적이고 지능이 높아 내로남불하지 않는 사람에 한한 서술이다) 자신이 하는 모든 행위에 가치를 부여해서 그만큼 결행에 신중해진다. 이 사람에겐 과정 자체가 큰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결과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않고 묵묵히 그 과정을 일관하여 마침내 목표한 바를 성취한다. 다만 그 철학과 신념 자체가 오류라면 곤란하다. 반면 후자는 자신이 하는 행위가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깊게 생각하지 않고 결행해버린다. 이념으로부터 자유한다는 측면에서 이 사람은 외부 변화에 굉장히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고 자신에게 솔직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초점을 즉각 대응과 성과 도출에만 집중하다보니 과정 자체에는 소홀할 수 있고, 거시적인 안목 부족으로 삶이 망가질 수 있다. 삶을 살아가는 두 태도는 여러 장단이 있다.
과정이란 과연 목적지까지 가는 도중 창밖으로 지나치게 되는 풍경 같은 것에 불과한가? 과정은 결과를 위해 존재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가? 나는 어느정도 결과의 중요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저말이 완전히 틀렸다고는 말을 못하겠다. 결과가 좋지 않은건 아무래도 달갑지가 않다. 하지만 과정을 지날 때 일관성을 가지고 모든 상황에서 신념을 향한 진지한 태도로 임하면 내일 당장 죽어도 억울할 것이 없다. 결과를 얻지 못했어도 이념을 향한 방향을 유지했기 때문에 굳이 성취하지 않아도 뜻만큼은 소멸하지 않는다. 뜻이 있는 한 이 사람에게는 결과를 보냐 보지 않느냐는 크게 중요하지가 않다. 이루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이 사람은 만족한다.
철학을 가진 자를 좌절시키는 방법은 철학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든 이념을 향해 발버둥을 치며 견뎠던 모든 과정들이 부정당하고, 결과를 내지 못한 뜻은 즉시 무의미한 것으로 전락한다. 실패와 방황의 경험도 교훈이 있다는 말에 반박하자면, "사실 매순간의 경험에 교훈이 있기 때문에" 즉 "교훈이 없는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런 말은 허무의 감정을 추스리기 위해 하는 위로일 뿐이다. 사이비 종교에서 탈출한 자들을 인터뷰한 영상을 보라. 틀린 이념을 위해 몸을 바쳤던 노력들은 그냥 인생을 낭비 한 것이다.
인생은 짧다. 삶의 중추가 되는 철학을 잘 택해야 한다. 틀린 철학을 택하였다면 변명거리란 없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철학이 틀렸음을 인정하지 않고 정신 승리를 한다. 어떻게든 의미를 무의미로 낙하시키는 것을 막고 싶은 것이다. 자신의 인생이 헛된 것임을 받아들이기가 싫은 것이다. 이데올로기가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어지간한 용기와 자기를 객관화하는 능력, 그리고 지능이 바탕이 되지 않는 이상 자존심 때문에 마주하기 싫은 진리를 죽을 때까지 수용할 수가 없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불가양립한 두 가치관이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는 삶은 어쩔 수 없이 전쟁이 된다.
어쩌면 철학을 가지는 것 자체가 인생을 갉아먹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