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물리학은, 어떤 면에서는, 국어 문법과 쌍두마차를 이룬다.
바로, 내용적인 측면에서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오개념을 잡는 역할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애들의 주 오개념을 살살 건드리기만 해도 알아서 틀려준다.
그리고 문제를 그렇게 내는 게 바람직하다. 원래 교육적으로 그런 걸 고쳐주기 위해 존재하는 과목이니까.
즉 수능 물리는 애가 얼마나 정확한 물리적 해석력을 가지고 있는지 테스트하는 시험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굳이 역학을, 회로를, 전기력을, 자기장을 계산으로서 어렵게 내지 않아도 16수능 물1이 그러했듯이 아이들이 잘못 생각할만한 포인트를 찾아내서 내기만 해도 변별은 아주 잘 되고 나는 그것도 매우 바람직한 출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를 쉽게 내서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기도 정말 어려운 과목이다.

이번 수능 물리가 난도뿐 아니라 퀄리티에서 비판받아야 할 이유는 여기서도 나온다고 생각한다
19수능 물1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 트랜지스터 문항이라도 있었다.
이런 문항이 물1 물2 포함하여 이번 수능에 있냐? 없다고 생각한다
있을 만하게 질문을 짤 수 있는 문제들은 전부 선지제거법으로 알아서 보기 판단이 된다. 선지 구성도 사람이 하는데 정말 고의적으로 배치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심지어 물2는 역배점도 심각하다.
원래 역배점은 문제가 매우 더럽게 어려워서 맞을 수 있는 애들이 매우 적다고 생각될 때 거는 기법이다. 물2에서는 전설의 두 문제 181120, 190920이 역배점에 해당하고, 물1에서는 "일정 시간 동안 힘을 가하는 역학적 에너지 보존 문제의 시초"인 170920, 그리고 사실 멀리 갈 것도 없이 쿨롱 법칙과 변화량의 정량판단을 이용한 당시 신유형에 해당했던 210919도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번 수능 물2의 역배점은 근본이 없다. 배점은 문항의 난도뿐만 아니라 교과 내에서 중요한 평가 요소일수록 대체로 높게 받아온 편이다. 예를 들어 물1에서 간단한 운동 법칙 문제는 거의 대부분 3점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번 수능 물2는 대체 왜 2점이고 대체 왜 3점인지 이해가 안되는 문항이 많다. 일단 19번과 20번 둘 다 2점이다. 하긴 뭐 난도로만 보면 3점 주기 아깝긴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변별용 문항인데. 마치 제발 컷을 좀 올리려고 하는 출제진들의 애절한 심보가 느껴진다.


평가원보고 출제기간동안 술쳐먹고 놀았냐고 하는데 사실 사설 출제능력만 되어도 술쳐먹고 놀아도 이거보단 퀄리티 훨씬 좋게 나온다. 선샤인팀 나사빠진 오타쿠새기들 맨날 술쳐먹고 놀지만 퀄리티 일정 이상으로 보장된다. 그만큼 과목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 때문이다.
당장 대학생 애들이 취미로 만드는 정도의 시험지에서도 상당히 그럴듯한 시험지가 만들어지는데 평가원 얘들은 대체 누구를 모시고, 아니 데리고 출제하게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혹은 정말 중위권~하위권 유입을 늘리려고, 혹은 일부러 사설 컨텐츠를 저격하려고 자기 스스로 퀄리티를 떨어뜨리는 길을 걷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시험지에 고의성이 짙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정말 슬프게도 전자가 맞는 것 같다. 여기 사람들은 쉽게 내면 누가 고르냐고 말하지만, 세상엔 1~3등급만 있는 게 아니고 4등급, 5등급이 목표인 학생들도 있고 그들이 통계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런 하위권 학생의 수가 늘어나고 상위권 수가 줄어드는 그림을 의도한 것이라면 슬프게도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세상엔 합리적인 사고를 할 줄 아는 사람보다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뭐 어떤 측면에서는 사실 나도 이딴 과목 좋아서 계속 골라온 걸 보면 후자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