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과학자

아이작 뉴턴

수학과 물리학에서 이룩한 그의 업적

우리 시대와 우리 민족의 크나큰 자랑


에드문드 핼리


보라, 눈을 들어서 하늘의 조화를!

물체들의 균형과 그 위치.

성스럽도다! 신이 숙고해 법칙들을 택하고,

우주를 만들었도다. 버리지 않고,

그의 작품에 새겨 놓았구나.


하늘 끝 가장 깊숙한 곳, 이제 이르렀구나.

더는 숨지 않고 모습을 드러냈구나.

까마득히 먼 궤도를 돌리는 힘.

해는 왕좌에 앉아서 모두에게 명령한다.

해를 향해 숙이고 내려오너라.

그러나 별들이 지나는 길은 바뀌지 않네.

끝없는 허공을 가로질러, 곧게 가거라.


그러나 해를 중심으로, 타원을 그리며 움직이네.

이제 우리는 안다.

혜성들이 급히 방향을 바꾸는 것을.

한때는 공포의 대상

그러나 이제는 살별의 출현에 떨지 않네.


마침내 달의 행동을 알았네

걸음걸이를 달리해 움직이는 것 같았지

그 움직임을 숫자로 나타내는 것이 싫은지

어느 천문학자도 알지 못 했지

계절은 가고 또 오지만

시간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네

마침내 바다의 힘도 알았네

달의 여신이 어떻게 물을 일으키는지

물결은 해초를 버리고

해변의 모래들을 때리네

뱃사람들은 짐작하고 있었지

높이 쳐 해변을 때리네


고대 선지자들이 속을 썩였던 일

우리 시대의 학자들도

목청 높여 말다툼만 벌였지

이제 이성의 밝은 빛이 보이네

마침내 과학이 무지의 구름을 걷어 내네

미혹에 빠져 의심의 장막을 벗지 못 하던 사람들


천재가 빌려 준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가네

신들이 사는 집을 살펴보고

하늘의 높이를 재어라

오 가련한 인간들이여 일어나거라

세속의 번뇌를 벗어버리고

하늘이 준 이성의 힘을 깨달아라

움츠러든 무리의 생각과 생활이 아니다


(후략)


대충 그 뒤는 뉴턴 찬양하는 내용


뭐하는 사람인가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더니 나무위키에 이런 내용이 나옴


6세기 유럽의 천문학자들은 나날이 축적되는 연구와 발전하는 망원경, 관측 도구 덕에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공전한다는 것을 이해하고는 있었다. 다만 그걸 수학적으로 계산하려들면 이상하게도 공전주기에 계산이 안 맞아 당대 수학계의 난제로 유명했다. 그 때문에 반박을 하려고 해도 정확하게 들이밀 수 있는 과학적이고 수학적인 증명이 없었고, 그로 인해 당시까지 천동설은 견고한 반석 위에 올려져 요동도 안 했고, 때문에 천동설을 제창하던 일부 천문학자들에게 비난 받아왔다.

다시 말해 지구의 태양 공전주기를 정확히 계산해 내는 사람은 그때까지 아무도 없었다.

풀릴 듯 안 풀릴 듯한 이 문제는 당대 학자들에게 있어서 핫이슈였다. 그중에 핼리, 크리스토퍼 렌(1632~1723, Sir Cristopher James Wren)[3] 그리고 로버트 훅, 이렇게 셋이 담화 도중에 렌이 재미 삼아 누가 먼저 지구의 공전주기를 계산할지£40[4] 내기를 건다. 하지만 대략적인 이해와는 별개로 근거가 될 수학적 자료가 전무했기에 누구도 진전이 없었다. 거기에 훅이 자신의 용수철 연구를 통해 공전 문제를 풀 수 있다며 나댄 것도 있고.

1684년 8월 8일 핼리는 캠브리지 대학을 방문하는데 거기서 같은 왕립협회의 회원이던 뉴턴을 다시 만나게 된다. 뉴턴은 왕립협회에서 안면은 있었으나 13년 가까이 직접 만나보지 못했는데, 이유는 13년 전에 뉴턴이 발표한 '빛에 대하여'란 논문에 갑자기 훅이 자기 연구를 도둑질해 갔다며 공식적인 표절 의혹을 제기한 것. 아는 사람들은 노친네 병 도졌네라는 식으로 쳐다 봤지만 왕립협회 고참이 정식으로 제기한 문제를 절차상 그냥 넘어갈 수 없었기에, 억울한 뉴턴이 토라져 은둔해 버린 것. 거기에 훅이 쓸데없는 인신공격을 해서 뉴턴이 후에 앙심을 품게된 건 덤이고.[5] 물론 근거가 없는 채 끝났지만. 핼리가 추측하기에 만유인력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문제를 풀면 실마리가 풀리리라고 생각했지만 만족할 만한 계산법이 없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뉴턴에게 질문을 던진다.[6]
'지구의 태양 공전 말입니다, 인력의 거리 제곱에 반비례하면 어떤 궤도가 나올 거 같습니까?
'타원'
'!!!'

뉴턴에게 어떻게 계산했냐고 물었더니 20년 전에 이미 계산이 끝났다고 했다. 핼리는 뉴턴에게 당장 증거를 보여달라고 했지만 뉴턴이 갑자기 20년 전 자료를 찾을 수도 있는 것도 아니고, 다음 날 다시 써서 가져다 주겠다고 했다. 흥분한 핼리는 다음 날이 오길 고대했고 시간이 조금씩 흐르자 훅처럼 또 당했구나 하며 실망하기 시작한다. 그때 들리는 편지 배달소리, 그렇게 뉴턴의 프린키피아의 초본이 핼리의 손에 쥐어졌다. 내용에 충격과 감복받은 핼리는 단숨에 뉴턴에게 달려가 옛 일 일랑 잊고 왕립협회에서 당장 출판하자고 했다. 뉴턴을 설득한 다음 단숨에 왕립협회에 보고한 다음, 협회에서 당장이라도 출판하자는 회답을 기다렸는데, 돌아온 답은...
돈이 없어...




그런데 이놈의 책이 안 팔린 걸 넘어서 왕립협회의 운영까지 흔들게 된 것. 그러다 보니 이 위대한 발견을 당장 출판할 길이 없게 됐다.[7] 결국 핼리의 계속되는 설득에 3년 뒤인 7월 5일 1687년에 우여곡절 끝에 뉴턴을 도와 프린키피아를 출판하고 당시 협회 직원이던 핼리에게 날라온 왕립협회 발 편지 한 장.
논문 출판 
축하 드립니다.
앞으로 '핼리' 씨 1년치 봉급£50[8]은,
'물고기의 역사' 책으로 대신 하겠습니다.
왕실협회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