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자:Olfas






그 일은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 보건대 겨울에 일어났던 것 같다. 

왜 흐릿하냐. 내가 지금부터 쓸 얘기는 별로 떠올려 내고 싶지 않은 시절의 별로 떠올려 내고 싶지 않은 씁슬한 얘기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잊고 있었다. 그런 걸 하나하나 기억하며 살아 봐야 좋을 게 무엇 있겠는가. 밤에 이불을 뻥뻥 찰 일만 많아질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 보아도 몇 안 되는 여자와 얘기해 본 기억이다. 

따라서 가끔씩, 그러니까 일 년에 한 번, 인싸들이 1년 중 섹스를 가장 많이 한다는 크리스마스에 한 번 정도는 상기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에 나는 이 글을 적고 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2017년이었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생이던 시절이다. 

나는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아싸찐따였다. 기숙사에 친구도 없고, 그다지 친한 형도 없는.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 때는 그 정도가 아주 심했다. 


이 글을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고등학교를 다녔거나 다니고 있는 중일 것이다. 

그렇다면 고등학교에는 가끔씩 '레전드' 로 취급받는 인간이 있는 것도 알리라 생각한다. 

물론 사람이라면 문제 하나쯤은 품고 살아가는 것은 당연하다. 

성격이 문제거나, 외모가 문제거나, 성적이 문제거나... 어딘가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문제 없는 사람은 없다. 

'레전드' 는 문제가 없는 부분이 없는 사람이다. 

어디 하나 멀쩡한 부분이 없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파면 팔수록 괴담만 나온다. 

그러니 레전드는 보통 유명해진다. 어떻게 보면 고작 전교 1등 따위보다 더 유명하고, 더 대단하다. 학년 단위의 유명세를 넘어 학교 단위의 유명세를 얻고 퍼져나가는 것이다. 

1학년 때의 나는 그런 '레전드' 의 문턱까지 근접해 있었다. 

아직은 기숙사 내의 유명세였지만, 학년 전체의 유명세로 퍼져나가기 일보직전인 상황이었다. 

외모는 물론이고, 그 행동 양식도 일반인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 있었던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줄이겠다. 이 정도면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상상이 가리라 믿는다. 



어쨌든 그것은 겨울날의 일이었다. 아주 추운 겨울날. 

하루 일과가 모두 끝난 시간이었다. 나는 방에 올라가 멍하니 누워 있다 다시 내려와 자습실에 들어갔다. 

나는 자습 시간에 자습을 하지 않았다. 남들이 자습실에서 교과서 한 쪽을 외울 때 나는 라노벨 한 쪽을 읽었다. 남들이 컴퓨터실에서 인강 한 편을 들을 때 나는 VPN을 켜고 웹툰 한 편을 봤다. 

무언가 공부를 해 볼까, 생각을 해 보아도 공부를 한 지 너무 오래되어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어두컴컴한 자습실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뒤에서 내게 말을 걸었다. 

"저기..." 

여자였다. 

분명히 여자의 목소리였다. 

아니? 여자가? 내게? 왜? 

나는 고등학교에서 보낸 9개월 동안 여자가 나에게 말을 거는 상황을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 

내가 간접적으로나마 여자에게 언급당한 마지막 경험은 '야 저기 니 남친 지나간다ㅋㅋ' 였다. 

나는 반쯤 굳은 채로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정말 여자가 있었다. 

여자였다. 

분명히 여자 사람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기숙사의 회장인가, 부회장인가, 어쨌든 그런 역할을 맡고 있는 아이였다. 나와 동급생이고, 반은 달랐다. 

그걸 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나는 여전히 굳어 있는 상태였다. 

입에서 'ㅇ... 어... 왜...?' 라는 말이 새어나왔었나.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아이는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저기... 잠시 따라와 줄 수 있을까? 혼자서..." 


대사의 디테일은 전부 각색이다. 하지만 대충 저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저 말을 듣고 나는 그 아이를 혼자 따라갔으니까. 

내가 쭈뼛이며 그 아이를 따라가는 도중에 한 생각은 하나밖에 없었다. 

왜? 

왜 나를 불러내는 것인가. 

나는 어딘가에 끌려갈 만큼 나쁜 짓을 저지른 적은 없다. 

아침식사를 안 하고 자습에 지각하고 컴퓨터로 만화를 보긴 했지만 그를 추궁하는 것은 사감의 몫이다. 기숙사의 학생에게 처벌받을 일은 아닌 것이다. 

물론 연애 얘기에 대한 가능성도 머릿속에 잠시 스쳐지나갔지만 이내 지웠다. 

그 당시의 나조차도 대략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럴 일은 절대 없다고. 이런 나를 좋아해 줄 사람은 없다고. 


우리는 윗층 발코니로 올라갔다. 어젯밤에 흩날린 눈이 채 녹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추웠다. 매우 추웠다. 

스스로의 행동도, 말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살갗을 에는 듯한 추위만은 아직도 선명하다. 이 이야기에서 확실한 부분이 단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발코니의 추위다. 급작스런 호출에 미처 챙기지 못한 겉옷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긴팔과 긴바지로만은 대비하지 못할 추위가 그 발코니에 있었다. 

그 아이는 내가 발코니의 문을 닫고 들어오자 내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내가 처음 그 아이를 돌아봤을 때 망설이던 것처럼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무언가를 말하기로 결심한 듯 했다. 

그 아이는 입을 열었다. 

"너 혹시... 얼평 같은 거 하니?" 

그리고 잠시 굳어 있었다. 

나도 아마, 굳어 있었다. 

다시 입을 연 것은 그 아이였다. 침묵을 견딜 수 없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혹시 여자애들 얼굴을 평가한다거나..." 

내 입에서는 바보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게 무슨..." 

그 아이는 참을성있게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얼평 한 적 없어?" 

"너희 방에 선배들이 모여서 여자애들 얼평을 한다던데..." 

"너 XXX호 맞지? 얼평 한 적 없어?" 

"얼평 한 적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다. 아니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우리 방에 모이는 선배들이 무서워서 이불을 덮고 자는 척을 했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 듣지도 못했고, 당연히 얘기에 낀 적도 없다. 

금시초문이었다. 얼평이든, 선배들이 나눈 얘기든. 

어쩐지 머리가 새하얘졌다. 핑핑 도는 머리로 나는 횡설수설했다. 

아니다. 모른다. 한 적 없다. 그런 건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쩐지, 내 말은, 

무척이나 변명처럼 들렸다. 

정말로 그런 적이 없는데도. 


그 아이는 내 말을 잠시 듣다가 대답했다. 

그렇구나. 알았어. 

그리고 발코니 문을 열고 떠났다. 

나는 발코니에 남겨져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추웠다. 

추위를 참을 수 없게 되었을 즈음 나는 방으로 돌아갔다. 

방에서 한창 떠들고 있던 선배들이 잠시 대화를 멈췄다. 

2층으로 올라가 이불을 뒤집어쓰자, 밖은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이불 속은 조용했다. 

나는 생각했다. 

'나여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하필 내가 이 방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내게 질문이 들어온 것이다.' 

'나의 결백함을 알아 줄 것이다.'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러나 그 후에 가끔 생각했다. 

하필 여학생의 대표 격인 그 아이가 나를 찾아왔다는 것은, 누군가가 얼평을 한다고 의심되는 사람의 목록에 나를 집어넣었다는 것이다. 

나와 같은 방을 사용했던 인싸도 과연 나와 같은 질문을 받았을까. 

그 인싸도 그 의심가는 사람 목록에 들어가 있었을까. 

그러니 내가 좀 더 믿을 만한 인간이었다면, 

예컨대 좀 더 잘생겼거나, 

좀 더 살이 덜 쪘거나, 

좀 더 사교성이 있거나, 

좀 더 공부를 잘 했거나, 

좀 더 어쨌든 나은 인간이었다면, 

그런 질문은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정말,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일까. 

이것은 물론 피해망상이다. 

그렇지만 피해망상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정말 아무런 잘못이 없었던 것일까, 라고.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 글은 물론 소설이다. 

이런 소설을 쓰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따라서 가끔씩, 그러니까 일 년에 한 번, 인싸들이 1년 중 섹스를 가장 많이 한다는 크리스마스에 한 번 정도는 상기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에 나는 이 글을 적고 있다. 

무엇을 상기하는가? 그것은 당연하다.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 따위는 세상에 없음을 되새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