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 다 무슨 소용이렵니까, 그래봐야 언젠간 무너져버릴 하늘을 겨우 붙잡곤 숨을 연명하고 있는 것을. 푸르던 하늘도, 사랑했던 작마와 눈빛을 섞으며 영원을 그리던 시간들도 달디 달던 솜사탕의 맛도 결국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청춘은 왜이리 아픕니까? 모두가 이런 아픔을 숨기고 사랑하는 겁니까? 이 모든 아픔을 전부 감당하고도 사랑할 만큼 청춘은 푸릅니까? 분명 내가 사랑하는 건 퀴퀴한 냄새가 잔뜩 베인 진학사와 빛바랜 시대의 부라가 아닌데도 그날의 공기가 자꾸만 날 먹먹하게 합니다. 이건 무언가요? 그리움입니까, 청춘에 대한 사랑입니까. 한때의 고통도 지나보면 청춘이라는 이름의 추억이 되어 버린다던데 난 내가 재수할 적의 사무치던 고통을 영원히 잊지 않길 바랍니다. 이 시간들을 적어도 나는 기억해야 하니까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이 순간을 나마저도 알아주지 못하게 되는 날이 올까봐서 말입니다. 너무나도 아팠던 순간들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은 아주 잔인한 일임이 분명하지만, 청춘은 그런 고통마저도 동경하게 합니다. 우매한 늙은이들은 청춘이란 이름 뒤에 숨어 자꾸만 불행을 동경하려 들고요, 청춘이란 작자는 우리로 하여금 자꾸만 젊음이란 아름다움에 흘려 그만 서슬퍼런 가시에 온 몸이 찢어지는 것도 모른 채 어린 장미를 끌어안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무섭습니다. 감히 내가 사랑하는 것 이 은돌일까봐요, 영원할 줄 알았던 불행일까 봐, 빠지지 못할 시대인재의 퀴퀴한 냄새일까 봐. 내가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쳤던 것들을 청춘이라 부르지 말아 주십시오. 난 청춘이 두렵습니다.

-수능이 끝나고, 어떤 물붕의 회고록에서 발췌-

작마는 이제 없다. 강의실과 부라를 오가던 나날의 그녀는 이제 없다. 저만치 멀리서 보이는 새초롬한 눈빛도 더는 자취가 남지를 않는다. 성적표와 진학사가 주는 쾌락으로 씻어내린 일도 아득하여, 어느새 다시 차오른 그리움에 물붕은 그만 탄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