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윤동주의 시에 눈물을 흘렸는가
나는 죽기 전에 이 세상의 진리를 알고 싶다.
진리란 세상 만사만물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진리를 향한 탐구의 수단으로 철학, 종교, 자연과학을 가만히 살펴보게 되었다.
철학은 깊은 사유를 통해 인간을 설명하는 데에는 탁월하지만, 인간을 넘는 자연 전체를 포괄하기엔 너무 주관적이다. 종교는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이들의 삶을 지탱해왔지만, 각 종교는 그것이 탄생한 시기의 현실과 권력 구조에 영향을 받기 쉬우며, 그 근거 역시 신성한 ‘경전’에 의존하고 있다. 나에게 그것은 진리라고 부르기엔 불충분했다.
자연과학은 달랐다.
자연과학은 인간이 아니라 사물에서 출발한다.
수학적으로 자연 현상을 설명하고, 그 설명이 맞는지를 실험으로 증명한다.
이 과정은 인간의 감정이나 신념과는 무관하게 진리에 가까워진다.
생명과학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점을 밝혀냈고, 정신 역시 물질적 기초인 뉴런과 호르몬의 작용으로 설명되고 있다. 나는 이런 이유로 자연과학이 진리를 향한 가장 신뢰할 만한 수단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자연과학조차 자유롭게 발전할 수 없다.
국가라는 개념 때문이다.
국가는 인간의 집단적 지성 속에서 만들어진 무형의 구조물이다. 그러나 이 구조는 실제 과학의 방향까지도 결정한다. 예컨대 무기 개발처럼, 과학이 진리 추구보다는 권력과 지배를 위한 도구로 변질되는 것은 대개 국가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과학이 진리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
물론 과거를 보면, 유럽은 국가 간 경쟁 속에서 과학을 폭발적으로 발전시켰고, 오히려 단일 국가였던 동양의 문명은 그 경쟁이 없어 과학의 동력이 부족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오늘날의 과학기술은 핵무기처럼 ‘경쟁’이 아니라 ‘대립’ 그 자체가 몰락을 불러오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리고 인터넷과 정보기술은 지구상의 모든 곳을 실시간으로 연결해 놓았다.
우리가 단일국가이든 연방국가이든 하나로 통합된다고 해서, 다양성이 억압될 이유는 없다.
기술은 통합과 자유를 동시에 가능케 한다.
그래서 나는 국가, 민족, 애국심 같은 개념은 더 이상 인류의 진리 추구를 위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이자, 때로는 감정의 구속이기도 하다.
그런데… 윤동주의 시 「쉽게 씌어진 시」를 읽고, 나는 눈물을 흘렸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내가 그렇게 비판해왔던 ‘민족성’이나 ‘애국심’의 감정에 내가 감응한 걸까?
아니면, 단지 한 인간의 고독과 고뇌, 그리고 그것을 시로 표현한 아름다움에 감정이 움직인 것일까?
윤동주는 일제강점기의 억압 속에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타국의 거리에서 깊은 내적 갈등을 겪었다. 그리고 그런 갈등을 시로써 저항했다.
나는 그 시를 읽으며, 단지 그의 고통이 나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눈물이 났다.
그가 처했던 역사적 상황 때문이 아니라, 나처럼 진리를 갈망하며 고뇌했던 한 인간의 정직함과 슬픔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묻게 된다.
애국심이란 과연 존재하는가?
우리가 그 감정을 품게 된 건 교육과 사회적 학습 때문일까?
아니면 인간이 태생적으로 품는 공감과 연대의 한 형태일까?
나는 아직 이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 눈물 역시 나의 일부이며, 내가 진리를 추구하는 존재인 동시에 감정으로 살아가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어쩌면 진리란, 인간의 사유와 감정이 충돌하는 그 지점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험범위 국어 공부 중 윤동주 시를 공부하게 됐고 그러다 갑자기 윤사를 배웠던 감정이 떠오르면서 철학과 물리를 같이 한 하이젠베르크가 떠오르면서 마침 심심하기도 하니 gpt랑 이런 글 씀... 시험기간엔 공부 아닌 것에 관한 평소에 흥미 없던 분야도 재밌어진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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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잘 읽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