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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자 오늘은 크눌프 펍의 생일! 이 자리에 오신 모든 VIP 손님들을 환영합니다! 원래는 엊그제였어야 합니다만 피치 못 할 사정이 발생하여 오늘 이 자리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바리스타 제길은 웃으며 특별한 날임을 설명했다. 이해준이라는 투자자가 크눌프 펍을 인수해 승재, 제길 및 다른 직원들에게 지분을 주어 크눌프 펍이 다시 문을 열 수 있었던 날인 것이다. 이상하게도 왜 크눌프 펍이 넘어갔었는지, 이해준이라는 사람이 왜 개입된 건지는 기억이 흐릿했지만 어쨌거나 축하할 만한 날이었다.
\"음, 일반 손님은 입장 안 되나요?\"
홍난은 마야와 함께 들어와 물었다. 당연히 됩니다, 하는 제길의 말에 웃으며 들어섰다. 안에는 승재 및 우리 식구들, 다혜와 가족들, 정지훈, 그리고 송이연이 있었다. 처음 발바닥이 피범벅이 되도록 뛰어가 만났을 때 입고 있던 하얀 블라우스에 베이지색 코트를 걸치고는 박수를 짝짝짝 치며 웃고 있었다. 저 모습에 내가 반했었지, 청순하고 정돈된 모습에 눈가도 붓기가 조금 빠진 듯했다.
마포대교에서 우리가 스쳐지나갔던 날, 나는 이연이 그 자리를 뜰 때까지 머물렀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녀가 더 이상 그 곳에 앉아있지 못할 때 까지였다. 이연은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외진 벤치에서 쓰러져버린 것이었다. 내가 홍난으로 처음 돌아왔을 때처럼 물론 그 때보다야 덜 하겠지만, 이유도 모른 채 많이 힘들어 했던 것임에 틀림없다. 가뜩이나 밥도 잘 안 먹는데 빈혈로 쓰러진 것일까. 119를 불러야 하나 고민하다 외우고 있던 승재의 번호를 눌렀다. 제발, 제발 받기를 바라면서.
\"여보세요?\"
승재의 목소리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형님 혹은 야, 라고 부르던 녀석. 이제는 나한테 그렇게 불러줄 리 없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여기 배우 송이연씨가 쓰러져있어요. 핸드폰에 번호보고 연락 드리는 거에요\"
승재는 깜짝 놀라 바로 가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홍난은 좌절했다. 대체 왜 나같은 것 때문에 이렇게 힘들어해야 하는 것인지, 존재를 지울거라면 감정도 모두 지워버려야지, 무력한 자신에 화가 나 떨면서도 행여나 바스라질 듯 너무나 조심스럽게 이연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십여분이 지나 승재가 도착하자 홍난은 자리를 피했다. 아직은 승재를 만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크눌프에 왔으니, 만날 수 밖에 없다.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해야할까. 제길의 유쾌한 사회가 진행되고 승재가 서빙을 보러 온다. 다혜, 정지훈, 송이연을 거쳐 우리가 있는 테이블로 와 메뉴를 정하셨냐고 물었다.
\"아, 여기 주방장 님이신가봐요\"
승재를 바라보며 나는 어색하게 물었다. 녀석은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는 얼굴로 나를 잠시 빤히 바라보다 네, 맞습니다 하고는 짧게 대답했다. 무뚝뚝한 건 그대로구나 하고 여전한 모습에 안심하며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어머~ 멋있어. 저런 남자친구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안 그래 홍난씨?\"
\"... 뭐, 뭐라고? 안 돼 승재는 뭣 모르는 애라구! 이 미쓰, 아니 미쎄쓰가!\"
맞은 편에 앉은 마야씨는 걸어가는 승재의 뒷모습에 반해버린 듯 바라보았고, 녀석이 잠시 뒤돌아 쳐다보자 손가락을 살랑살랑 흔들며 안녕, 하고 윙크를 했다.
\"맙소사, 안 돼 마야씨 승재만은 안 돼.. 차라리 이해준은 어때?\"
\"말했잖아 난 연.하.가 좋다구~ 홍난씨는 내 헬퍼라는 걸 잊으면 안 돼~\"
연하를 콕 집어 말하며 능글거리게 웃음지었다. 어차피 다 연하일텐데 뭘 고른단 말인가! 이번 생도 꽤나 복잡해지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이 아줌마로부터 승재를 지켜야한다. 그리고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연애가 하고 싶으면 젊고 예쁜 여자로 돌아오면 되는 게 아니었냐고 묻자, 마야씨는 웃으며 안 돼. 난 이 몸 그대로 와야만 했어. 하고 말했다. 무슨 사정이 있는 거겠지. 아니면 그냥 엄청난 변태일수도. 그런 시덥잖은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주방에서 아악, 하는 큰 소리가 들렸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아아, 하고 승재는 손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칼을 만지다 실수를 한 건지 놀라서 당황하는 바람에 옆에 있는 웍까지 모두 엎어버린 것 같았다.
\"내가 그러게 항상 요리는 정신 집중해서 하랬잖아!\"
날 잊어버린 망할 놈의 자식들은 이상한 사람인 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 중에 제길이 놈이 제일 나빴다. 저 손니임~ 테이블에 가 계시면 됩니다 하며 감히 히죽거린 것이다. 너는 미각 테스트나 똑바로 해! 요리보다야 낫겠지만 커피도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데. 나는 참지 못 해 윽박질렀고 다친 승재도 망할 자식들도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나를 쳐다봤다.
\"아.. 음..저기 그러니까, 제가 여기 이해준씨랑 잘 알아요! 그래서 우리 쉐프님들을 좀 잘 알지~\"
진짜 이해준이라도 만나게 되는 날엔 금방 들통날 거짓말이었지만, 일단은 우리 순수한 자식들은 그 말을 믿었다. 승재의 상처는 크지는 않았지만 요리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나는 제길을 도와 승재를 사무실로 옮겼다. 승재는 부축 받으며 우리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어째서? 나를 알아보았나? 아니면 마야씨 때문에? 설마 말도 안 되지, 고개를 저으며 주방으로 들어오자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제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말했다.
\"음.. 제가 미쿡에서 요리를 초큼 했어요. 다친 쉐프 자리 정도는 채울 수 있을거에요\"
불신의 눈빛을 보내는 녀석들. 살짝 짜증이 올라오는 것을 참고 크눌프의 가장 인기있는 파스타를 만들어보였다. 그 맛을 보자 제길은 놀라며 말했다.
\"바로 이 맛이야! 승재랑 나랑 찾던 게 이 맛인데! 씨스타~ 요리 좀 하는데?\"
씨스타라, 형님은 아니지만 그것도 좋다. 나는 탈의실로 가 그토록 그리웠던 검은 주방장 옷을 입었다. 조금 컸지만 상관없었다. 영수와 다혜 그리고 내가 함께였던 마지막 순간 입었던 그 옷을 입고 다시 주방에 서게 될 줄은 몰랐다. 어쩌면 이번 생에는 신이 조금은 나를 보살피는가싶어 감사했다.
오랜만에 선 주방은 뜨겁고 바빴다. 그리운 공간이었다. 마야씨는 주방에 서있는 나를 보며 손을 흔들었고, 나는 팬 연습은 게을리 하시면 안 됩니다! 하며 결코 쓰지 않았을 존댓말로 외치며 요리를 시작했다. 1번 테이블 2번 테이블.. 그리고 마지막 9번 테이블의 순서가 다가왔다.
9번 테이블은 송이연이 있는 자리였다. 영찬이와 함께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 앞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기를 쓰는 여자였다. 울다 지쳐 쓰러질 지경인 주제에 뭐가 그렇게 좋다고 웃고 있단 말인가. 왜 힘들 때 기댈 사람 하나 없이 온전히 스스로 아파해야만 하는지, 슬픔을 넘어 지독히도 깊이 화가 나는 것을 느끼며, 그 중에서 제일은 그 아픔이 나로 인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팬을 긁어댔다.
\"9번 테이블은 제가 직접 서빙 갈게요\"
별 일 아닌 듯 말하고는 테이블로 향했다. 그리고 말투와는 다르게 두근 두근, 심장이 뛰었다. 세번째 삶으로 돌아와서도 나는 저 여자를 보면 여전히 설레이는 구나 홍난은 생각했다. 한 발짝 한 발짝 그녀에게 가까워 질때마다 심장은 터질 듯 뛰었다. 나를 알아볼까, 당연히 그렇지 못 하겠지 생각하면서도 행복하게 웃고 있는 이연의 얼굴을 보며 혹시나 하는 생각을 접지 못 했다. 한기탁을 떠올리면 다시 괴로워질거야 하며 생각해보지만 홍난은 당장이라도 이연에게 다가가 그녀를 안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억눌러야만 했다.
\"주문하신 메뉴 나왔습니다\"
한기탁이, 한홍난이 입던 검은 주방장 옷을 입고 이연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전히 아름다웠다. 천천히 미소 지으며 잊을 수 없는 목소리로 말을 하고 있었다. 하하, 웃으며 영찬에게 장난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연약한 주제에 아이 앞에서는 따뜻한 엄마로, 홍난 앞에서는 장난끼 넘치는 소녀로 존재했던 송이연은 여전히 거기 그대로 있었다.
이연은 잠시 홍난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홍난은 절실히 기도했다. 나를 기억하든 말든 상관 없다. 차라리 지금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이 사랑하는 여자를 평생이고 영원이고 바라볼 수 만 있다면 지옥이건 소멸이건 뭐든 좋으니 함께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이 미소를 다신 잃고 싶지 않다고 빌었다. 동시에 절대 이뤄져서는 안 될 소원이라고 생각하면서.
홍난의 그런 표정에 의아했던 것인지 이연은 뭔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 영찬의 엄마, 하는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홍난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뒤돌아 가려는 순간
\"저기요\"
\"네?\"
\"저기.. 우리 어디서..\"
이연은 뒤돌아 가는 홍난을 불러세우고 조심스레 물었다. 조금은 쑥스럽다는 표정으로.
\"어디서 만난 적 있냐구요?\"
홍난은 따뜻하게 웃으며 이연의 말을 대신했다. 슬퍼보이지 않기만을 바라며. 홍난의 가면이 통했던건지, 이연은 당신도 그런 것 같지 하는 표정으로 반갑게 미소지었다.
저 미소를 다시 볼 수 있게 되리라 생각지 못했다. 모든 기억이 지워지고 나는 죽어버리고, 그렇게 다시는 우리가 만나는 일도 떠올릴 일도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서 내게 말을 걸고 있다. 아, 나는 행복하다. 내게 어떤 비탄의 시간이 찾아온다 할 찌라도 지금 이 순간만으로도 나는 내 세번째 삶의 가치를 찾았다. 홍난은 환하게 웃으며, 복잡한 감정은 모두 얼굴 뒤로 숨긴 채 최선을 다해 말했다.
\"글쎄요, 저도 어디서 만난 것 같긴 한데.. 전 여기 있으니까 혹시 무슨 일 있으시면 언제든 부르세요\"
친절한 직원 쯤 되는 듯 말했지만, 그것은 실은 홍난의 온전한 진심이었다. 그녀 곁에 있겠다는 것.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삶일찌라도 반드시 지켜내고야 말겠다는 신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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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번개걸이다!\"
영찬은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요리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 그 번개걸이야 내 꿈에 나왔던. 무슨 말이야 하고 이연은 물었다. 예전에 영찬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엄마 옆의 번개걸이 없어졌다고. 이연이 수십대의 카메라에 둘러쌓여 공격당하고 있을 때 예쁜 번개걸이 날아와 그녀를 구해줬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렸다고.
\"예쁜 누나네\"
연예인을 해도 될 법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자였다. 검정 주방장 옷을 입고 거침없이 요리하는 모습은 남자라면 누구라도 반할 법한 매력적인 모습이었다. 이연은 예쁜 누나 꿈을 꾸었구나 하고 영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예쁘죠?\"
\"네?\"
바로 옆 테이블의 40대쯤 되보이는 여자가 말을 걸었다. 저기 요리하고 있는 엄청 예쁜 여자. 저 사람 이름이 한홍난이에요. 한, 홍, 난. 이상한 여자였다. 묻지도 않은 사람의 이름을 알려주다니.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이름을 듣자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심혈관 질환 있으세요? 옆 테이블의 이상한 여자는 다시 물었다. 이연은 그 말을 무시하고 시선을 돌렸다.
전혀 모르는 이름인데 그립고 미안하고 따뜻하고 너무 아픈 느낌이 들었다. 요즘 그녀에게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영찬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마음을 간신히 진정시키는데, 그 여자가 요리를 들고 이연의 테이블로 오고 있었다. 짜증이 났다. 차재국만으로도 인생이 피곤한데 저 여자는 또 뭐란 말인가.
\"주문하신 메뉴 나왔습니다.\"
홍난이라는 여자는 무감정한 표정으로 음식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눈동자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분명히 나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다. 이연은 생각했다. 뭐라고 물어봐야하지, 내가 요즘 시도 때도 없이 우는데 왠지 당신 이름을 들으니 더 그렇더군요, 당신이 네게 무슨 짓이라도 한건가요, 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여자는 음식을 내려놓은 뒤 이연을 쳐다보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얼굴에는 힘을 주어 표정을 숨기고 있었지만 눈빛에는 애절함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익숙하게 느껴졌다. 마포대교를 건널 때 느껴지던 저릿한 통증이 올라왔다. 심장이 쿵쿵거리며 뛰고 왠지 눈물이 흐를 것 같고 동시에 너무나 반가웠다. 홍난과 이연이 눈을 마주친 것은 아주 잠시에 불과했지만, 둘에게는 흐르지 않는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이연은 일부러 영찬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모습을 본 홍난은 뒤로 돌아 주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저기요\"
이연은 일단 붙잡았다. 이대로 그냥 보낼 수는 없다. 분명히 이상한 일들과 관련된 사람일 것이다.
\"네?\"
홍난이라는 여자는 놀란 채 대답했다.
\"저기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느냐고 말하려다 너무 이상한 작업 멘트 같아서 이연은 말 끝을 흐렸다.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냐구요?\"
홍난은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늘 연기를 하는 배우인 이연은 그것이 가짜 웃음임을 깨달았다. 부드럽게 웃지만 그 얼굴엔 슬픔만이 가득했다. 홍난은 전 여기 있으니까 언제든 부르세요, 라고 말하고는 황급히 뒤돌아 걸어갔다. 그 모습은 마치 손만 대면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이연은 더 이상 그녀를 부르지 못 했다.
아 여기까지 봤다
글 한두 번 쓴 솜씨가 아닌데 ㄷㄷ
존나 찌통
승재한테 또 눈독 들이는 거 보소ㅋㅋㅋㅋㅋㅋ
글 진짜 잘 쓴다
울 뻔 했다ㅜ
자가치유님..글 너무 잘 읽고 있었는데 삭제되어 너무 아쉽습니다ㅠㅠ 석철x기탁 읽으려고 아껴뒀었는데 못 읽었네요ㅠㅠ 죄송하지만 댓글 보시면 한 번만 다시 올려주시면 안될까요? 정말정말 보고싶은 마음에 글 남깁니다.. 부탁드립니다ㅠ
자가치유님 이제 돌갤 잠잠해졌는데 글 한 번만 다시 부탁드립니다ㅜㅜ
부족한 제 글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석철기탁은 짧게 그냥 쓴거라 보여드리기 좀 부끄럽네요. 싸우는 것도 좀 무섭고 덕질(?) 계속 하고 싶어서 블로그로 옮겼어요 sansamkim.tistory.com 가끔 글 올릴게요~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저도 쌈판나도 식겁했는데 이제 잠잠해진 것 같네요 싸움만 안나면 돌저씨얘기하기에 여기만큼 괜찮은 곳도 없는 곳 같아요 가끔 들러서 안부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