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이었다.
기억부는 점심시간에도 정해진 루틴대로 움직인다. 식사는 20분, 정리 및 이동 8분, 그리고 정오 정각. 그 시간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의식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바로, 2분 증오.
이레는 멍한 눈으로 김이 나는 트레이를 바라보며 수저를 집었다. 연한 쌀죽과 비슷한 혼합물, 소금기 없는 절인 배추, 그리고 가끔 나오는 콩기름 약간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음식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 불평은 사고다. 사고는 반역이다. 반역은 죄다.
그는 조용히 앉아 수저질을 했다. 주변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각자 자신이 지정된 번호의 테이블에 앉아,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먹었다. 말은 금지되어 있었고, 눈빛조차 조심스러웠다.
정확히 11시 59분 58초, 벽면 전체를 차지하는 대형 스크린에 붉은 테두리의 경고등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공기의 온도가 달라졌다. 사람들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은 자세 그대로 숨을 멈췄다.
삐—익.
짧고 날카로운 경고음.
그리고 12시 정각, 스크린이 바뀌었다.
지글거리는 전파 잡음이 스쳐지나간 화면엔,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검은 안경, 매끈한 머리, 각진 턱, 그리고 끝없이 미소 짓는 입술.
그는, 한동훈이었다.
국가파괴자. 국민기만자. 코리아를 위협한 자.
하지만 이레는 알고 있었다. 아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한때 법무부 장관이었고, 윤석열 대통령의 반대파였으며, 지금은 존재해서는 안 될 ‘과거’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그를 지워버리기보단 매일 끌어와 모든 이들의 증오의 대상으로 삼았다.
화면 속 한동훈은 웃고 있었다.
조롱하듯, 능청스럽게, 때론 뻔뻔하게. 그는 언젠가의 국회 발언 중 일부를 편집한 영상 속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민은 몰라도 됩니다. 진실은 우리가 결정합니다.”
웅웅, 웅웅—
군중의 분노는 천천히 고조되기 시작했다.
“거짓말쟁이!”
“이 나라를 팔아먹은 배신자!”
“죽여버려!”
사람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구보다 먼저 소리치는 이들이 있었고, 책상을 내려치는 이도 있었다.
“그가 없다면, 위대한 영도자 이재명 동지께서 이토록 고생하실 필요도 없었어!”
“당이 없었으면, 저 쓰레기들이 나라를 지배했겠지!”
이레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은 떨렸고, 입술은 바짝 말랐다.
증오하지 않으면, 의심받는다.
늦게 반응하면, 조사받는다.
너무 과하게 반응해도, 적혀진다.
스스로에게 되뇌며, 그는 입을 열었다.
“국민을 모욕한 자! 배반자!”
그의 목소리는 섞여 사라졌다. 지금 이 공간에선 모두가 증오의 기계였다.
누군가는 트레이를 스크린에 던졌고, 누군가는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심지어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리며 발을 구르고 있었다.
스크린은 화면을 바꿨다.
한동훈이 휘파람을 부는 영상,
폭력 시위 장면 위에 겹쳐지는 그의 얼굴,
거짓 뉴스, 공작 정치, 조작된 여론조사.
그 모든 것이 혼합되어 하나의 내러티브를 구성했다. 그는 ‘혼란’ 그 자체였다.
그리고, 마지막 10초.
영상은 검게 변했다가 다시 붉게 번쩍였고, 그 위에 한 줄의 문장이 떠올랐다.
"그는 사라지지 않았다. 당신 곁에 있다."
이레의 심장이 한순간 멈춘 듯했다. 이 문장은 의도된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_의심_을 심는 문장.
“그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건, 누군가가 아직도 그를 따르고 있다는 의미였다.
곧바로 다음 문장이 따라왔다.
"당신은, 진실한가?"
이제 모두의 눈은 서로를 향했다.
이레는 고개를 숙였다. 절대 눈을 마주쳐선 안 된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위험한 것은 비난이 아닌 침묵이었으니까.
눈빛 하나, 말없는 무표정 하나, 조용한 숨소리 하나가 체포의 근거가 된다.
드디어 영상이 꺼졌다.
붉은 조명은 사라지고, 평범한 방송이 재개되었다.
사람들은 땀을 닦았고, 이마에 핏줄이 떠 있었고, 어떤 이는 주저앉아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거기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식사는 끝났다.
이레는 트레이를 챙기며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그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충분히 증오했는가?’
‘혹시, 너무 늦게 일어서진 않았나?’
‘내 목소리는, 떨리진 않았나?’
그 질문들이 머릿속을 감쌌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2분 증오의 목적은 ‘증오’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감시되고 있다’는 공포를 확인시키는 것이다.
식당을 나서는 순간, 벽면에 걸린 당의 구호가 다시 보였다.
"망각은 충성이다."
이레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문장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래야만 했다. 살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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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죽이고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