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국회의원 선거는 정당의 공천, 즉 공직 후보자 추천으로부터 시작한다. 미국(주 헌법에서 공천을 경선 방식으로 규정하고 있음), 영국 등 많은 선진국과 달리 한국의 경우 정당 공천이 당 대표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정치인은 공천을 받지 못하면 생존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공천 과정에 부패나 조작이 개입되기 쉽다. 지방선거에서는 언론과 국민의 감시가 소홀해 부패 가능성이 더 크다. 정치인은 선거에 당선되는 순간부터 다음 선거에서 공천권을 행사할 당 대표에게 충성을 다할 수밖에 없다. 국민에게는 아주 짧은 기간, 즉 공천장 수여일과 선거일 사이에만 충성한다. 따라서 한국 정당의 하향식 공천제는 당 대표에게만 복무하고 국민의 이익에 복무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국민의 이익에 더 잘 복무할 후보를 국민이 알아서 선출하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정당이 하향식 공천을 하는 상황에서 현직자뿐 아니라 도전자도 일단 선출되면 국민의 이익은 도외시할 것이기 때문에 결국 국민은 이념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되든 달라질 것이 없다고 판단하는 국민이 많아지고 이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낮은 투표율로 연결된다. 자격시험을 통해 후보를 제한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실질적으로 자신을 지지하는 집단에게 가산점을 부여하겠다는 하향식 공천의 논리일 뿐, 국민의 선택권을 무시하는 가부장적 개입이다.
하향식 공천제는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데도 유지되는 이유가 뭘까. 제도를 바꿀 권한을 가진 주체들이 제도 변화, 특히 상향식 공천제로의 변화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공천권을 행사하는 당 대표 외에 현직 의원들도 지역구의 더 나은 잠재적 경쟁자들을 배제할 수 있고 평소 지역구에 대한 노력이나 비용이 적게 드니 다른 제도로의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일단 정당 공천을 받아 국회에 진출한 현직자는 하향식 공천제에서 당 대표의 눈 밖에 나지 않는 한 손쉽게 공천을 확보할 수 있고 지역의 정치 성향이 크게 바뀌지 않는 한 쉽게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심지어 자신의 지역구를 다른 이에게 양보하거나, 빌려줬다가 다시 찾아오거나, 대물림하는 경우도 가능하다. 불체포특권, 정당 보조금 등과 더불어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만의 특권을 누리고 있다. 국회의 모든 정치 개혁 논의는 스스로의 특권을 내려놓는 것이기에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지대를 추구하는 정당과 국회에 대해 국민이 직접 나서지 않는다면 정치 개혁은 이뤄지지 않는다.
상향식 공천은 지역구민이나 지역당원이 공직 입후보자 중에서 후보를 선출하는 것을 말한다. 상향식 공천제에서는 지역구민이나 지역당원의 선거를 통해 공천이 이뤄지기 때문에 선출된 의원들은 지역구민이 원하는 바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지역구민이 원하는 정책이나 법안을 발의하고 통과를 위해 소속 정당의 다른 의원들, 더 나아가 경쟁 관계에 있는 상대 정당 의원들과도 자발적으로 소통하고 설득하며 협력하고 연대하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다. 국민과 가깝고 국민을 위한 정책과 법안이 많이 제안되고 통과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부분적으로 상향식 공천이 도입된 17대 국회에 대한 실증 분석을 통해 확인됐다. 현재는 국민의 뜻과는 거리가 먼 유사한 법안들이 수없이 제안되지만 상임위원회에조차 부의되지 않고 계류돼 있다가 자동 폐기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국회가 야유·비난·막말로 얼룩진 정쟁이 아니라 국민의 이익을 위한 공론과 소통의 장이 될 것이다.
KDI 선임연구원 000
자세한 설명 잘봤다 덕분에
근데 상향식 100%면 텃밭 한번 갈아놓고 10선해도 갈아치울 수가 없음 - dc App
그건 적어도 지역구민들의 인망을 얻었다는 거니까 명분은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