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장동혁 국민의힘 당 대표의 패러디 ‘나의 투정’
“정당은 투정을 들어주라고 존재하는 조직도 아니다!”
이양승 군산대 교수
독일의 히틀러는 자신의 광기를 ‘나의 투쟁’이라는 책으로 포장했다. 이 책의 바탕은 철학도 이념도 아니다. ‘원한의 합리화’다. 핵심은 패배자 의식, 열등감, 음모론, 그리고 책임 전가이다. 히틀러는 독일의 패배와 자신의 실패, 여러 사회 문제들을 제도와 정책 실패로 설명하지 않고 ‘내부의 적’들이 망쳐놨다고 주장했다. 증거는 없다. 그래서 이 책은 분석이 아니라 원망의 나열인 것이다. 개인적 분노를 민족적 서사로 포장했을 뿐이다.
그래놓고 장동혁 대표는 단식 중이다. ‘투쟁’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숭고해 보인다. 굶고, 버티고, 고통을 견디는 이미지는 정치에서 도덕적 우위를 가장하는 데 쓰여 왔다. 하지만 세상 모든 단식이 투쟁은 아니다. 장 대표의 단식은 투쟁이라기보다 정치적 ‘보챔’에 가깝다. ‘투정’이다.
‘지존 뒷담화’ 의심만으로 한 전 대표를 제명해 놓고 비판이 거세지자 갑자기 몸을 굶기며 ‘결기’ ‘비장미’를 연출한다. 이건 책임지는 정치인의 모습이 아니라 “내 말 안 들어주면 밥 안 먹겠다”는 아이의 떼쓰기와 닮아 있다. 유치하다. 단식은 논리가 막혔을 때 쓰는 최후의 수단이다. 지금 장 대표의 문제는 논리가 약한 게 아니라 논리가 아예 없다는 데 있다.
‘제명’의 칼을 단번에 휘두르면서 그 칼질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선 정작 아무 설명도 내놓지 못한다. 증거 없이 남에게 벌을 줄 순 없다. 한 전 대표가 그 글들을 썼다는 명확한 증거도 없거니와 설령 그 글들을 직접 썼더라도 그렇다. 그게 제명 조치에 정당성을 줄까? ‘그렇다’고 대답하면 그는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배.신몰이도 황당하다. 국민의힘은 ‘배.신 도미노’ 현상이 지배하고 있다. ‘윤어게인’ 지지자들의 논리를 적용한다면 계엄을 사과한 장 대표도 배.신자일 수밖에 없다. 장 대표보다 더 오랫동안 위선과 싸우며 당을 지켜왔던 김문수 전 대선후보도 배.신자로 몰렸고, 안철수 의원도 배.신자로 몰린바 있다. 이대로 가면 전한길 씨 빼고 모두 배.신자가 될 판이다. 그는 장 대표에게도 공공연히 ‘배.신자 낙인’ 신호를 날리고 있다. 공당이 이래도 되는지 장 대표가 대답해주기 바란다.
장 대표는 묵묵부답. 굶을 뿐이다. 투쟁이 아니라 ‘투정’인 이유다. 더 큰 문제는 그의 정치적 이중성과 모호성이다. 장 대표는 한때 한 전 대표를 가장 가까이서 누구보다 열심히 도왔으며 계엄 해제에 앞장섰었다. 그런데 무슨 연유인지 몰라도 지금은 한 전 대표만은 포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계엄은 사과했으면서 ‘윤 어게인’에 대해서도 끝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못한다. 사과는 했는데 선은 긋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사과를 해놓고 다른 이에 대해선 배신의 책임을 묻는다. 이게 말이 되는가?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현명치 못하다. 중도 확장을 포기한 채 극단적 지지층의 박수 소리에만 반응하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그가 중용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봐도 방향은 분명하다. 약자를 조롱하고 분노를 선동하고 타협을 배신으로 규정했던 사람들이다. ‘계엄 사과’란 말에는 낙인찍고 배신몰이에 앞장섰던 그들이 장 대표에겐 같은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정치는 설득의 기술이지 분열의 기술이 아니다.
이대로 가면 지방선거는 해보나마나다. 중도를 버리고 극단을 끌어모으는 시도에 누군가는 환호하겠지만 그 끝은 고립과 파멸이다. 동서고금 역사가 말해준다. 중요한 건 극단 지지층의 박수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신뢰다. 경제도 실은 신뢰다. 장 대표는 그 신뢰를 단식이라는 ‘정치 이벤트’로 대체하려 한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 광기의 선언문이었다면 지금 장동혁이 보여주는 건 ‘나의 투정’이다.
지금 필요한 건 몸으로 하는 ‘정치 이벤트’가 아니다. 무엇이 옳고 왜 정당한지에 대한 대한 머리의 설명이다. 그걸 못 하겠다면 단식은 의미가 없다. 그건 투쟁이 아니라 그냥 투정일 뿐이다. 정당은 투정을 들어주라고 존재하는 조직도 아니고 민심은 그 투정을 들어줄 만큼 한가하지 않다. ‘한동훈 제명’ 당장 철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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