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부터 사진 찍기에 취미가 들리기도 했고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새해 해돋이 구경을 하게 됐다.
태백산,정동진,호미곶...전국의 일출 명소를 고르고 고르다가 결국 낙산사로 결정.
2016년 12월 31일
나는 동서울 터미널에서 낙산 종합 버스터미널행 표를 끊었다.
내가 차도 면허도 없다는게 출사지 선택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이번 해돋이 출사도 제일 크게 작용한게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
카메라 두대에 보조배터리들도 잔뜩 충전해뒀고 추울지도 모르는 날씨를 대비해서
다이소에 들려 핫팩도 사두고 장시간 추위와 싸우며 사진 찍을때 비상식량으로 먹을만한 육포와 양갱도 사뒀다.
낙산 종합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까 이미 해가 넘어가려고 하더라...
저 초입엔 민박,모텔,펜션들이 깔려있었음.
조금이라도 알려진 명소 근처엔 이런 관광객들을 노린 모텔,민박,펜션이나 식당들이 즐비한게 좀 아쉽긴 하다.
급할때 숙소잡긴 편하겠지만...
원래 계획은 12월 31일에 조금 일찍 낙산사에 도착해서
해넘이를 찍고 1월 1일 아침에 해돋이를 찍는거였는데...
낙산사 올라가면서 보니까 바다에 해무인지 그냥 구름인지...수평선에 쭉 깔려있어서 해는 안보이더라.
어차피 나도 해질 무렵에 겨우 도착해서 날씨가 좋았더라도 찍지는 못했을거다.
해수관음상 보러가는 길목...
난 종교는 없지만 이런걸 보면 그냥 좀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그 유명한 해수관음상...
인터넷에서 사전조사하면서 사진으로만 봤을땐 그냥 그랬는데
실제로 보고 꽤 감탄했다.
신비로운 위압감이 느껴진다...
사람들이 해수관음상 앞에서 절을 올리거나 합장을 하고 있었다.
나도 사진을 찍고 조용히 합장을 했다.
나는 종교가 딱히 없지만 이런 곳에선 해당 종교를 존중하는 뜻의 행동 정도는 해주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해수관음상에서 내려와 의상대에 갔다.
의상대쪽에서 바라본 홍련암...
의상대사가 붉은 연꽃 속의 관음보살을 봤다고 지어진 이름이란다.
이 또한 낙산사에 대해 사전조사를 하면서 알게 됐다.
저 위쪽에 조명을 받고 있는 해수관음상도 보인다.
홍련암 쪽에선 어느 스님이 신자들을 상대로 강연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낙산사 입구 근처의 숙소가 즐비하던 쪽에선 레크레이션이라도 하는건지
크게 음악소리가 들려오고 가끔 폭죽도 터졌다.
고요한 절의 분위기를 내심 기대했던 나로썬 약간 아쉬운 점이었다.
원래 계획엔 없었지만 밤하늘을 보니 별이 조금 떠있기에 카메라를 꺼내서 별궤적 촬영을 해보기로 했다.
의상대를 배경을 별궤적 촬영을 하면 괜찮은 사진이 나올 것 같았다...
3초 간격으로 600장을 찍어 만든 타임랩스...
600장을 스타트레일로 합성해 만든 별궤적사진.
그때 북극성을 찾을 생각도 안하고 그냥 의상대만 가운데 잘 나오게 카메라를 설치했는데
프레임 안쪽에 북극성이 들어왔나보다.
중간에 카메라가 움직여서 살짝 어색하긴 하지만 꽤 괜찮은 궤적이 나온 것 같다.
우측 하단의 오렌지색 불빛들은 풍등이다.
카메라 한대는 그렇게 인터벌 촬영 돌려놓고 의상대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다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다.
난 처음엔 저 밤하늘에 날아가는 오렌지색 불빛이 뭔가 궁금했는데 풍등이더라.
(범프 오브 치킨-천체관측)
내가 유일하게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별자리...
겨울의 왕자 오리온이다.
어렸을땐 꿈이 천문학자였을 정도로 천체니 우주니 그런걸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그런걸 좋아하고 쫓아다닐 여유도 거의없다.
이런저런 생각들에 잠겨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정말로 별들이나 달이 움직이는게 눈에 보인다.
그저 신기할 뿐이다.
한 세시간 정도를 별궤적 촬영에 투자하고 나니 밤 열한시쯤 됐다.
그동안 숙소를 잡아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다가 날이 날인지라 비쌀것 같기도 하고
해돋이를 보려면 일찍 좋은 자리를 선점해둬야 할 것 같아서 그냥 밤을 새기로 함...
12시가 되어 홍련암으로 이동했다.
홍련암으로 가던 길목...스님께서 타종을 하고 계셨다.
신자들이 그 앞에 줄을 서서 차례로 스님과 함께 타종을 하더라...
신자들과 스님이 합장을 하는 모습은...그냥 보기 좋았다.
따뜻하더라...
홍련암으로 가던 중에 낙산사 초입의 숙박촌 쪽에서 불꽃놀이를 하는지
불꽃 터지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내가 움직이는 도중이라 불꽃놀이 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불꽃이 보이는 위치도 아니었지만...
불꽃놀이를 찍었다면 별궤적,불꽃놀이,해돋이 이렇게 삼관왕에 오를 수 있었을텐데 ㅋㅋ
홍련암에 도착하니 새벽인데도 수많은 신자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잠깐 그 앞에서 구경만 하려고 했는데 어느 비구니께서 천수경과 관세음보살정근을 읊으셨다.
신자들이 스님을 따라 합장이나 절을 하며 천수경과 관세음보살정근을 읊는걸 보니 마음이 숙연해져서
그 틈에서 같이 한참을 합장했다.
평소에 종교같은건 관심이 없어서 불경 이런거 한 글자도 모르는데
이럴땐 신념과 관계없이 천수경 몇구절쯤은 알고 있어도 좋을 것 같더라.
내가 딱히 불교를 좋아한다거나 그런건 아니다.
그냥, 여행이라던지 출사를 나와서 이런 종교적 성지에 방문하게 되었을때 불경이라도 한 구절
혹은 찬송가라도 한 구절 알고 있다면 최소한의 예의 정도는 갖추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한 생각이다.
낙산사에서 그랬던 것 처럼 교회라던지 성당에 방문하게 되면 나름대로 해당 종교의 방식에 맞춰 최소한의 예의를 갖출 것이다.
그것이 범죄가 아닌 이상은...
한시쯤 되어 홍련암 오는 길목에 자리를 잡았다.
홍련암 방향에서 의상대를 바라보는 자리가 해돋이 사진을 찍기에 좋아보이더라.
인터넷에서 이 각도로 찍은 사진도 많이 봤고...
내가 막 삼각대를 펼쳤을땐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그러다가 새벽 세시쯤 되니 서서히 카메라 든 사람들이 내 주변에서 삼각대를 펼치기 시작하더라.
내가 숙소를 잡았더라면 한 새벽 네시쯤에 일어나서 올라올 계획이었는데
그렇게 했다간 좋은 자리를 확보하지 못했을 것이다.
밤을 꼴딱 새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졸음이 쏟아지는건 어쩔 수 없었지만...
새벽 6시 30분쯤 되니까 수평선 너머로 붉은 기운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 나도 미리 설치해뒀던 카메라를 켜서 인터벌 촬영을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수평선 멀리 구름띠같은게 껴있어서 해가 떠오르는걸 제대로 못볼거라고 생각했다.
주변의 많은 사진사들도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 "해 못보면 말고~"식의 이야기가 귓가에 들리더라.
서서히 하늘이 붉어지고...의상대 쪽에선 작은 불꽃도 터졌다.
이건 사진 네장을 겹친건데 내가 주로 쓰는 프로그램인 라이트룸은 다중합성(?) 기능 같은게 없는걸로 알아서
별궤적 합성 프로그램으로 불꽃 사진 네장을 합쳐봤는데 뭐 괜찮네.
시간이 지나도 하늘만 밝아오고 수평선 너머로 구름띠같은 것만 보이길래
전날 해넘이처럼 해돋이도 날씨때문에 못보는건가 싶었다.
주변에 있던 사진사들도 그런 생각을 했는지 "해 못보면 말지 뭐~"하는 투의 말들이 귓가에 들려왔다.
나도 희망을 반쯤 접었는데 이미 인터벌 촬영 시작한거 애매하게 끊어버리기도 뭐하고 해서
그냥 쭉 촬영을 계속했다.
참 잘했어요.
밤을 샌 영향으로 가만히 선채로 비틀거리며 졸고 있는데
순간 주변에서 사람들의 탄성이 터져나왔다.
흠칫 놀라서 저 멀리 수평선을 보니 해가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미리 검색해서 봐둔 일출시간에 거의 맞춰서 해가 보이기 시작하더라.
이런 광경은 처음봐서 정말 신기했다.
2017년의 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홍련암~의상대까지 사람이 정말 발 디딜 틈도 없이 꽉 차있었다.
다들 어떤 소원을 빌고 있을까...
혹은 나처럼 딱히 새해 소망이나 목표없이 그저 새해니까 해돋이보러 온 사람들이 더 많을까?
(mr.children-Tomorrow never knows)
이번 해돋이를 보면서 조금 깊이 알아차린게 있다.
나는 어렸을땐 새해가 오면 '새해에는 이런거 되게 해주세요'라는 소원을 신나게 빌거나
한살 더 먹는다는 막연한 기쁨, 학년이 올라가면서 곧 새로운 반 친구들을 만날 것이라는 기분 혹은 지금까지 함께 해왔던 반 친구들과 떨어진다는
아쉬움...그런 감정들에 들떠올랐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냥 새해가 되어도 별다른 좋은 감정이 들지 않더라.
그저 '아 이제 한살 더 먹는다...'라던지 '아 이제 XX살인데 난 그동안 별로 한 것도 없는 것 같다... 앞으로 뭐하고 살지'
하는 식의 그저 그런 감정들만 마음 속에 맴돈다.
오히려 해가 넘어갈 수록 어린 시절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앞날에 대한 걱정등으로 인한 약간 우울한 감정들만 깊이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지난 한 해동안 내가 해왔던 일들 혹은 나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곱씹어보고 있으면
당시에는 정말 암담해서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을거라고 생각했던 일도, 내가 정말 크게 실수했다고 느껴졌던 일들도
내 인생이 어떻게 될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에는 정말 인생이 활짝 폈던 것 마냥 기뻤던 일들도, 인생이 끝나버린 것 마냥 슬펐던 일들도...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내 인생에 큰 굴곡이 되진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끝없이 펼쳐진 길을 꾸준히 걸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묵묵히 걸어갈 것이라는 그저그런 느낌이다.
2017년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쭉...
세상을 다 얻은 것 처럼 기쁜 순간도 있을 것이고 세상을 다 잃은 것 처럼 슬픈 순간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온 세상이 내 편이 되거나 온 세상에 내게서 등을 돌리진 않을 것이다.
그냥, 지금까지처럼 때로는 잠시 뛰기도 하고 잠시 쉬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면서 내 인생을 걸을 것이다.
앞으로의 길에 뭐가 있을지도 모르고 종착지가 어떨지도 모르는 채로 그냥 꾸준히 걸을 것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다보니 어느새 해가 완전히 떠올랐다.
해가 이쯤 떠오르니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다.
나도 카메라들을 정리하고 낙산사에서 내려왔다.
낙산 종합 버스터미널 매표소는 편의점이랑 같이 운영되고 있더라.
난 이런거 처음봤음...
사전조사때 알아두긴 했지만 실제로 보니까 좀 신기했다 ㅋㅋㅋ
그렇게 나는 집으로 돌아왔고 밤을 샌 영향으로 침대에 뻗어있다가 이제 사진 정리 끝내고 후기를 쓰고 있다.
좀 스압이긴 하지만 봐줘서 고맙다...
간식이아재인데?ㅋㅋ 글쓰느라수고했어
나이먹으니 꿀꿀... 즐감요~~
캬
좋다
흠 - dc App
개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