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20년간 회사생활 하시던 아버지는 하루만에 잘리시고
아버지의 내조에 질리신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하셧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두분다 따로 가정을 꾸리시거
외동이였던 나에게 자급자족 하라며 주신 삼천만원
나는 당시에 친구도 부모도 무엇도 없었다.
외모도 몸매도 무엇하나 잘하는게 없고
남들처럼 꿈이 있거나 신념이 있거나 그런건 없었다.
살기에는 너무하도 공허했고
죽기에는 너무나도 비참했다.
그렇기에 흘러가는대로 살기위해 선택한 공무원
그나마 법원직이 맘에들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기에 학교를 자퇴하고 19살에
나는 노량진 고시원을 입주해 1년치 월세를 한번에 냈다
처음에는 너무 좁고 비참했으나
지금의 상태가 나에게 어울린다고 생각을했다.
잘못된 마인드 였을까 당시에 나는 최대 2년을 잡았다.
물론 꾸준히 공부한다면 당연한 결과지만
내 생각보다 나는 멍청하고
내 생각보다 나는 나태했다.
처음 1년간의 시험은 피시방과 고시원을 오가며
시험일수가 줄어들수록 남은 일수를 더 하면 된다고
혼자 안주하며 무엇도 안하고 1년이 지났다.
이번 년도는 다를거라며 똑같이 2년을 지내었고
남은 통장에는 1500만원 정도가 남아있었다.
페북을 보니 나의 동창들은 대학을 다니며 술과 친구들
그리고 연인을 사귀었고
나는 그것이 부럽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무언가 가슴속에 응어리가 진 기분이였다.
그리고 3년차에 다짐이라도 한듯 주제에 열심히는 했지만
12점차로 떨어졌다.
통장에 남은돈이 없어 알바를 시작했고
2년동안 타인과의 대회도 안하고
골방지기 처럼 방구석에 자리를 잡은 바퀴벌레처럼
그저 연명하기 위해 삶을 살아온 나에게는
타인과의 살아감은 너무나도 힘들었다.
알바를 그만두고 이번년도에 붙는다는 마인드로 공부를 했고
처음으로 처절하고 절박하게 공부를 했다.
하지만 결국 2점차로 떨어지고 정말로 많은 고민을 했다.
많은 고뇌와 고민은 점점 나를 피폐하게 하고
무엇보다 자유로웠던 나는
결국 스스로를 옭아매고 나락으로 빠트렸다.
남들보다 빠른 선택으로 잠깐이나마
자신이 현명하고 미래가 밝다고 생각했지만
끝내 나에게 남은건 아무것도 없었고
다시 펜을 잡기에는
너무나도 무섭고
너무나도 두려운거 투성이엿다.
1년간의 폐인생활을 끝내고
정말 마지막으로 도전하자고 생각하고 공부를 했다.
옛날처럼 하루하루 죽어가는 기분이다.
처음 시작할때처럼 새로움은 없다.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며 시작의 탄생을 알리는 행위도 하지않았고
스스로를 벌주는듯 부정적 감정에 휩싸여 나의 모든것을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생각을 비우고 하루하루 공부를 했다.
결과를 받았다.
4점차로 합격하지 못하였다.
시험지를 받고 괴롭거나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무덤덤 했다.
고시원 방을 정리하고 5월에 입대를 하기로 했다.
나이도 차고 공시도중에 따놓은 검정고시 외에는
나를 증명하고 나를 정의할수있는건 아무것도 없다.
조금이라도 과거에 고개를 돌리면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너무나도 공허했던 기억이
나를 휩쓸어갈까봐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후회도
슬픔도
무엇도
가득차버려 나아감에 있어서 무엇이 있을까
내가 이 글을 쓴 이유는 단 하나이다
공시를 도전하는 친구들과
다시한번 공시에 임하는 분들에게 꼭 하고싶은 말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던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열심히 하지 않았던 나는 결국 나락으로 떨어졌고
붙을만한 충분한 공부량에도
나락으로 빠졋던 나에대한 비방과
나락의 두려움으로 시험에 집중하지 못했다.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할수있을지
어떻게 살아야할지 두려움만 생긴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나와같은 실패를 하지않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기도하며
부디 최선을 다하기를
- dc official App
공무원갤에 쓰지 왜 여기에 - dc App
이제 세무사 준비하겠데
ㅅㅈ 군대부터 갔다오지 뭔 5년을 꼬라박냐 ㅋㅋ
고생했네. 군대가서 부사관 지원한다음 장기 지원해서 말뚝박는것도 방법이야.
애초에 군필부터 찍고 경찰을 준비했어야지..쯧쯧 아쉽다 법대출신 노무라이인데 우리과애들 경찰은 6달컷~길어도1년컷인데 법원직은 2,3년 이상 장수생 널리고 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