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참 부끄럽다. 여기저기에 '저는 이렇게 해서 합격했어요'란 합격수기만 잔뜩 있는 마당에, '저 불합격했어요'라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하는 것 같으니까.


간절히 합격을 염원하며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신 부모님과 가채점 후 대면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평소에 날 응원해주시던 모습들을 계속 봐왔기에 충격이 얼마나 큰지 눈에 보였다. 사실 나보다 부모님이 더 힘들어하신 것 같다.


내 나이 이제 스물일곱. 2년을 이 공부에 투자했다. 불합격이 확실시 되는 마당에 '매진, 전력투구' 같은 단어는 차마 낯뜨거워서 못쓰겠다. 사실 그렇지도 않았던 것 같다. 적잖이 놀았고, 적잖이 즐겼다.


자취방 한 켠에 가득 쌓인 수험서적과 지난 날을 회상하니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남은 것은 무엇인가'라고 수 없이 자문했지만, 쉽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냥 내가 왜 이 길을 택했었는지와 지난 수험생활 전반을 돌아보려고 노력했다. 


'회계사'란 직업을 알게된 것은 대학교 입학 후 였다. 정확히 무엇을 하는 직업인지도 잘 몰랐다. 마치 졸업하면 훗날 최고경영자가 될 것만 같은 느낌때문에 경영학과를 지망했고, 합격했다. 고등학교 때 까지만 해도 학교에 제출하는 장래희망에 '국제변호사'등을 적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초등학생 때 적었던 '대통령'과 같은 느낌이다.


우리 반은 유난히 회계사를 준비하는 선배들이 많았다. 그리고 합격자도 꽤 많았다. 하지만 당시엔 알지 못했다. 그 정도의 합격자를 내기위해 몇 배의 수험생이 존재했었다가 지금의 나처럼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는 사실을.


사실, 이 시험은 어찌보면 만만하게 생각하기 쉬웠다. 기본적으로 '준(準)고시'라고 불리며 행정고시나 사법고시 같은 악명높은 끝판왕급 시험보다는 그 진입장벽이 낮다는 인식이 형성되어 있다. 나 역시 이런 유혹(?)에 넘어갔던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왠지 행정고시나 사법고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았고, 이 시험은 위의 고시보다는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대내외적 인식에 동의하며 수험계에 발을 들였다. 매년 1000명 정도의 최종합격자가 나온다는 것도 이 시험에 뛰어들도록 유혹하는 유인이다. '공부 깨나 했다는 사람들'에게 '저 1000명에 내가 못들리가'란 근거없는 자신감 정도는 누구나 가질 수 있지 않은가.


시험 후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며 며칠을 고민했다. '한번 더?'란 생각이 잠시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심신이 지칠대로 지쳤고, 고민 끝에 이 시험을 접고, 다른 길을 찾기로 결정했다. 이젠 쓸모없어진 필기가 빼곡한, 허리까지 오는 수험서적들을 버릴 때의 그 기분은 뭐라 말할 수 없었다. 독서실과 학교 도서관 열람실에서 보낸 지옥같던 혹은 보람찼던 하루하루가 스쳐갔다. 2년짜리 군대를 한번 더 다녀온 기분. 하지만 손에 쥐어진 전역증은 없었다. 일종의 '불명예 전역'이랄까.


가장 힘든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신뢰의 상실이다. 이렇게 자존감이 낮았던 적이 지금까지 살면서 있었나 싶다. 정말 쓸모없는 잉여인간이 된 것만 같았다. '이것도 못하는데, 다른 것이라고 잘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자꾸 괴롭힌다. 이젠 예전의 자신감 넘치던 날 다시 찾고 싶은데 지금은 요원하기만 하다. 세상 무서울 것 없던 20대 초반의 그 패기가 그립다.


이 세상에 '후회없는 선택'이 있을까. 솔직히 후회한다. 결과를 알았다면 누구나 그랬듯이 이 시간에 다른 것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내가 선택한 것이고, 결과도 나의 것이다. 성인이 된 후 마주한 가장 큰 인생의 이벤트였다. 난 이 시험을 통해 인생의 엄청난 무게와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배웠다.


나는 비록 이 곳에서 실패의 쓰라림을 안고 떠나지만, 더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은 꼭 그 노력의 열매를 맺고 웃으면서 수험계를 떠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또한, 지금의 아픔과 좌절이 미래의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