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태남이다. 

자발적 절식이 아니다. 

나도 사랑하고 싶고, 숱한 마음을 품어 왔다.

하지만 항상 매몰찬 거절만이 있을 뿐이었다.


당연하다, 나는 대크, 면씹, 호빗, 어좁의 4신기를 모두 다 갖췄기 때문에.

키는 170이 채 안되는데 전투모는 60호를 썼다. 

군필이라면 이게 대체 무슨 비율인지 대강 감이 올 것이다. 

더군다나 어깨도 좁고, 엉덩이마저 골반이 커서 오리궁둥이이다.

전형적인 덤벨 체형이다.

빈약한 상체가 거대한 대가리와 하체를 위태롭게 잇고 있는 그런 형태 말이다. 


진즉 도태되었어야 할 열등한 이 유전자, 

가부장제와 중매연애라는 관습으로 인해 위태롭게나마 나까지는 내려왔으나

이제는 끝날 차례다. 

20대 후반에 접어든 지금까지 내게는 그 흔한 썸 한 번조차 없었고, 이런 사정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혼자였고, 혼자일 것이다. 

사회와 제도라는 발명품이 존재하기도 전부터, 

암컷은 자기보다 힘 세고 거대한 수컷에게 몸을 의탁하며 새끼를 키워왔다.

180cm가 달고 있어야 했을 크기의 대가리를 

160cm짜리 왜소하기 짝이 없는 골격에 억지로 붙여놓은 나와 같은 수컷에게는

애초에 새끼를 낳을 기회조차 없어왔다, 

인류라는 종이 지나온 대부분의 시간 동안 말이다.


수컷실격, 

노동자로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사랑과 번식의 상대로서의 수컷으로는 그야말로 실격이다.

서류상, 그리고 생물학적 남성이기는 하나 사회적으로는 거세당한 실격 수컷이다.

몸을 만들고, 차고 넘치는 유머를 가지고, 스타일을 가꾸면 

형용사는 바꿀 수 있을 것이나 그 뒤의 명사까지 갈아치우지는 못할 것이다. 

기껏해야 재밌는 '친구', 운동 열심히 하는 '선배', .... 그 뒤의 명사가 '남자'로 바뀌지는 못한다. 


애써왔다.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근육량 40%를 넘겨도 봤다. 

중학생때까지는 반장을 도맡아 해왔다. 

대학에서는 동아리나 학생회도 해봤다.

그리고 그러면서 여러번 마음을 표현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여러번'은, 씁쓸한 기억과 '못생긴 놈이 발정만 났다'는 뒷담화로만 남았다. 


안 되는구나. 

옥동자 골격에 아무리 근육 패드를 붙여도, 

그건 '몸 좋은 옥동자'일 뿐 '몸까지 좋은 ㅍㅌㅊ남'조차 못 되는구나.

다들 덜 자라 이 놈이 그 놈인 어린 시절을 지나 

모두가 나보다 크고 강해진 성인이 되니

내가 갖고 있던 그 외향성과 유머조차, 이 초라한 수컷 실격의 껍데기에 빛바래 버리는 구나. 


행동의 결과가 좋아야 그 행동을 더 하게 된다.

그게 스키너의 강화 학습이론이다. 

하면 할수록 벌만 주어진다면 그 행동은 하지 않게 된다. 

나에게는 마음을 갖는 게 그런 행동이다.

이제는 꾸미는 것도, 운동을 하는 것도, 당최 의미를 모르겠다.


나는 내가 탄 15년된 마티즈의 엔진이 터지도록 엑셀을 밟는데, 

1km 앞에서 출발한 20년식 911이 엑셀을 거의 안밟는 것조차 따라갈 수가 없다.

엔진에 김나서 터지기 직전인데도, 1km 앞 출발했던 911 운전자는 왜 가만히 있느냐며 다그친다.


이제 그만할래.

진즉 도태되었어야 했는데도 지금까지 내려왔다면

내 대에서 도태되는 것이다.

혼자였고, 혼자이고, 혼자일 것이다.

오래된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