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오늘도 피곤한 몸을 일으켜 출근 준비를 하고 나온다. 도착하고 보니 8시40분.. 적당한 시간이다. 사무실을 들어가며 가볍게 인사하고 카누 아이스커피를 한잔타서 마신다.

배당된 건을 보니 차상해중상건 말고는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다. 치료비 심평원에서 심사 끝난것들 지급하고 전날 발생건 유선 조치후 전산 입력을 마쳤다. 시간을 보니 오전 11시..
점심 후 잡힌 면담까지 시간은 있지만 좀 일찍 외근을 나가 식사를 하고 서류를 봐야 겠다.

발걸음이 가벼우면서 무겁다. 오늘은 미성년학생 개호(사지마비)건을 13억에 합의하기로 손사와는 협의가 끝났는데 어린 자식을 잃은것과 다름 없는 부모의 마음이 느껴져서 일까.


가족서류, 인감도장, 신분증등등.. 필요 서류를 확인하고 덤덤히 도장을 찍어나간다. 옆에서 지켜보는 보호자들도 이미 지난 3년간 흘린 눈물을 다 쏟아냈는지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자리를 지킨다. 이윽고 서류작성이 끝났고 입금이 어떻게 되는지 설명하는 찰라 환자의 모친이 흐느껴운다. 잠깐 숨을 고르고 울음이 그치기를 기다려 간단히 설명을 마치고 자리를 파한다.

소장님 고생하셨습니다. 근처 카페에서 기다리던 손사를 만나고 나온 첫마디다.
개호건, 더군다나 미성년이니.. 더 오래걸릴줄 알았는데 예상보다는 길지 않은 시간에 합의가 마무리가 됐다. 법인카드로 손사것 내것 커피를 주문하려는데 손사가 손사래를 친다.
굳이 부득불 본인이 내겠단다. 잘해결해줘서 고맙다고 한다.

하긴 이건하나 해결해서 받는 수수료가 1억인데...4500원짜리 커피한잔은 얻어먹어도 될 것 같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큰 사고건을 맡아 진행한지도 벌써 수년.
사망사고나 절단, 개호같은 큰 사고를 봐도 이제 감정의 동요는 없는듯 하다. 일할때는 주위에서 찔러서 피한방울 안나올것 같다고 농을 던진다. 그럼에도 이런건은 왠지 마음이 쓰이는건 어쩔수가 없나..

손사한테 이제 1년의 반도 안지나서 큰건 해결했으니 일안하고 몇개월 놀고 먹어도 되겠다고 농담을 던졌다. 손사는 웃으며 벌때 더 벌어야 한덴다. 1시간정도 근황토크를 마치고 차로 가는데 손사가 끌고온 흰색 벤츠g바겐이 햇빛에 번쩍인다.
왠지 내 비머가 초라하게 느껴지는건 기분탓이겠지?

사무실로 들어와 13억 보험금 지급결재를 올리고 잡다한 서류 업무좀 하니 4시반이다. 오늘은 센터장께 선보고 하고 퇴근을 한다. 더 일할 기분이 아니네. 신입때 밤 9시에 퇴근하면 일찍 가는것 같았는데 요즘에는 유연근무에 주40시간만 채우면 터치도 없으니.. 워라벨찾아 공무원 한다는게 이해가 안간다.
내가 만난 행 시출신 서기관이나 사무관들.. 밤10시 11시 퇴근은 기본이라던데;;
시켜주지도 않겠지만 사무관누가 시켜준다고 해도 난 못하겠다고 혼자 망상하며 하루를 마무리 한다.
내일은 사망사고 조사나 하러 현장출근 가야겠다.



2편


또다. 또 재진료를 청구했다.
환자에게 개인정보동의 후 치료확인서를 받을 때에는 분명 의사 얼굴은 초진때만 보고 물리치료실로 직행했다고 했는데 이 병원은 매 통원마다 의사 재진을 본것으로 청구하고 있다.

xx정형외과....다른 병원에서 부상이 너무 경미해서 입원안된다는 경미한 환자들이 이 병원만 오면 2주이상 장기 입원시키기로 유명한데 결정적인 불법행위를 찾기 위해 치료확인서를 받던 중 특이점이 드디어 발견된 것이다.

심지어 통원 5번 온 사람이 20회 통원으로 치료횟수마저 허위청구라니.. 참 간도 크다.

차분히 그간의 사고 피보험자들(경미사고 가해자측)을 찾아가 면담하며 병원의 불법행위에 대한 탄원서를 받는다. 가뜩이나 별것 아닌 사고 였는데 이 병원만 가면 기본 2주 입원이었는데 불법행위사실 적발에 대해 분노하는 피보험자들이 탄원서를 물처럼 써서 흘려보내준다. 명필도 이런 명필이 없다 싶구나.. 판사가 감탄하고 눈물을 흘릴 내용들이다.

병원의 허위청구 자료로만 전공책 두권 두깨가 됐다. 덤덤히 탄원서의 개인정보를 지우고 사본을 만들어서 불법행위자료와 같이 챙긴다.

먼저 xx정형외과 원무팀장을 면담한다. 특유의 거만한 표정으로 맞이한다. 나도 그 표정이 이제 익숙한듯 무심히 인사를 건내고 앉는데 내가 싸들고 온 전공책두권분량의 자료에 호기심을 보인다.

'그건 뭐에요?'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왜 그러셨어요...암튼 원장님 봐야하니 원장실에 먼저 얘기해주세요.'

그러자 원무팀장이 그건 뭐냐고 재차물어서 허위청구하신거 모아봤어요 라고 응수했다.

그러자 갑자기 원무팀장이 책상위로 올라가 무릎을 꿇는다.
죄송하다. 이대로 본인 선에서 해결못보면 본인도 생계를 잃게 된다고 사정한다.

참 교활한 인간이다. 그간 관내의 경미사고 환자 다 데려가서 입원시켜놓고 입원 일일당 얼마씩 인센티브 받는것 까지 다 조사하고 왔는데도 의사가 입원시키는걸 내가 어찌 아냐고 발뺌하던 인간이 확실한 범죄혐의를 가져오니 갑자기 태세전환이다.

이러지 마세요. 전 그냥 할일 해야죠. 무시하고 원장실로 향한다.

원장은 벌써부터 안절부절중이다. 이미 원무팀 다른 직원이 얘기를 전달해서 그럴테지.

'왜 그러셨어요?'

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다.

원장은 다른 변명없이 다른 사업을 벌린것도 많고 해서 그렇다고 내 팔 소매를 붙잡으며 죄송하다고 한다.

드뎌 결정적인 자백까지 받아냈구나.

물론 허위청구가 하도 많아 판사가 받아들일 일은 없겠지만 실수로 잘못청구했다고 거짓말을 하면 귀찮을 뻔 했는데 허위청구가 고의였음을 원장 입으로 들었으니 할 일은 다한것 같다. 원장실을 나와 켜놓은 녹음기가 잘돌아가는지 확인하고 병원을 나선다.

나머지는 조사한 자료들 정리해서 SIU팀장께 전달하면 내가 할 일은 다 한것 같다.

이 병원의 불법행위 수집한것만 벌써 수개월이 걸렸는데 이제야 결실을 맺는구나. 하지만 여기 잡으면 다른곳에서 또 난리겠지...

보험범죄는 범죄가 아니라는 인식이 참 많은것 같다는 생각을 문득 한다. 이런 범죄행위안해도 충분히 먹고살 사람이 왜 이런 무리수를 뒀나 싶으면서도 지난번 학생들이 옆으로 지나가면서 용돈 떨어졌는데 차에 슬쩍 부딪혀볼까?라고 깔깔대며 얘기하던것이 떠올라 그냥 보험사돈이 눈먼돈으로 인식되는 사회분위기가 문제인가 싶다.

시간을 보니 18시 10분이다. 센터장께 오늘의 성과를 보고하고 현장퇴근을 한다. 오늘은 좀 피곤하다. 씻고 일찍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