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바탕이고 조미료 조금 친거 감안하고 읽어주셈.
이번역은 서울대 입구,서울대 입구 역입니다. 내리실분은 오른쪽, 오른쪽입..
x발..
이 짓거리도 올해로 3년차다. 오른팔에 감싸쥔 1000쪽에 달하는 노동법 기본서는 너덜너덜해진지 오래다.
버스에서 내려 학원에 들어가기 전, 근처에 있는 2개의 편의점 중 첫번째 편의점에서 산 1+1떨이 삼각김밥 중 하나를 입에 쑤셔넣고 나머지 하나는 가방에 넣는다. 남은 놈은 오늘 저녁이다.
학원 앞에 다다라 주머니에서 마쎄 한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아 x발..팩 말고 꽉으로 살걸..” 구겨진 담배들을 보며 다음에는 꼭 곽으로 사리라 다짐하고 담배 뽕을 턴다.
오늘은 토요일. 오전 행쟁 수업까진 버틸만 하지만 인사 시간만 되면 집중력이 바닥난다. “다중 회귀 분석법의 효과는..” ‘아 올해도 떨어지면 진짜 어떡하냐..” 수업보다는 걱정과 불안감에 여전히 지배당하는 내가 한심하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5515버스에서 god의 촛불하나를 듣는다.
7월 21일. 이제 정말 한달 남았다.
작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원래 지내던 대전에서 올라와 신림에서 지내니 집밥이 그립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다. 정신차리자 x발.”노경 요약집을 펼쳤지만 이 지랄맞은 몸은 따라주지 않는다.
8월 3째주. 시험 첫쨋날이 끝났다. 노동법 포섭도 풍부히 했고, 인사도 한문제는 불의타였지만 18p 끄적이고 나왔으니 뭐라도 되겠다 싶었다.
둘째날도 무난했다. 항상 양채우기 어려워했던 행쟁을 20p 꽉꽉 채웠고, 노경 3문 마지막 그래프를 검토하며 합격을 확신했다.
시험장을 나오며 역시나 god의 촛불하나를 들었다. 올해는 느낌이 좋다.
헤어진 여자친구한테 연락을 해볼까 했지만 합격발표가 나온 후에 해도 늦지 않겠다 싶었다.
11월 x일. Qnet에 접속하기 2시간 전인데도 온몸에 식은땀이 흐른다. 심장 뛰는 소리가 뇌 속에서 진동을 한다.
딸칵.
빨간색 글씨로 선명히 “불합격”이라고 써 있었다.
그냥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멍하게 앉아있길 5분, 그대로 일어나 책상에 있던 9만원짜리 2010년식 싸구려 모니터를 부서버렸다.
그전까지 태어나서 가장 길게 울어본 시간이 포경수술하기 전날 20분 정도였던 것 같다.
난 그날 신림동 3평 고시원에서 장장 12시간을 쉬지 않고 울었다.
바로 다음날, 알바몬으로 상하차 알바를 잡았다.
그곳에서도 키 170에 몸무게가 55키로 밖에 나가지 않았던 나는 상차하차가 아닌 바코드 찍는일로 배정받았다. 내 옆에서 상차 담당하시던 아저씨 한 분에게 “병신세끼가 비실거릴거면 처 나오질 말던가” 라는 말을 들었다.
다음날도 출근하였다.
일주일 후에도 출근하였다.
다음달도 출근하였다.
그리고 그그 다음달도 출근하였다.
통장잔고에 1350만원이 찍혔다. 그때 병신세끼라고 욕하던 아저씨한테서 장기로 일할 생각 없냐는 소리를 들었다. 정중히 거절하고 상하차 통근 버스를 타고 자취방에 돌아왔다. 여전히 이어폰에서는 god의 촛불하나 노래가 흘러나왔다.
3일동안 하루에 18시간씩 잠만 잤다.
몸이 편하거나 정신이 깨어있으면 너무 괴로워서 벽에 이마에 피가 흐를때까지 머리를 처박았다.
일을 나가지 않은지 5일째, 손해사정사를 따기로 하였다.
바로 인강을 결제했다.
독서실 따위는 끊지 않았다.
7개월 반동안 자취방을 나온 적이 30번이 안된다.
살기 위해 공부했다. 생존하기 위하여.
2차 합격후 자소서를 작성하며 비록 좋은대학은 아니지만 4년간 성실히 학교 생활을 하였던 나 자신한테 감사하였다.
2021년 x월 x일. 오전 11시 30분 문자 한통이 왔다.
“축하합니다. 귀하는 y손해보험사에 최종 합격하셨습니다. 추가 안내사항은..”
그저 멍 했다.
지난 4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2년간 얼굴을 뵈러 가지 못했던 어머니한테 전화를 드렸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단어가 나오지 않았다. 그저 낼 수 있었던 소리는 “끄윽끄윽” 숨 넘어가는 소리가 전부였다.
그저 모든날이 감사한 순간이었다.
이번역은 서울대 입구,서울대 입구 역입니다. 내리실분은 오른쪽, 오른쪽입..
x발..
이 짓거리도 올해로 3년차다. 오른팔에 감싸쥔 1000쪽에 달하는 노동법 기본서는 너덜너덜해진지 오래다.
버스에서 내려 학원에 들어가기 전, 근처에 있는 2개의 편의점 중 첫번째 편의점에서 산 1+1떨이 삼각김밥 중 하나를 입에 쑤셔넣고 나머지 하나는 가방에 넣는다. 남은 놈은 오늘 저녁이다.
학원 앞에 다다라 주머니에서 마쎄 한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아 x발..팩 말고 꽉으로 살걸..” 구겨진 담배들을 보며 다음에는 꼭 곽으로 사리라 다짐하고 담배 뽕을 턴다.
오늘은 토요일. 오전 행쟁 수업까진 버틸만 하지만 인사 시간만 되면 집중력이 바닥난다. “다중 회귀 분석법의 효과는..” ‘아 올해도 떨어지면 진짜 어떡하냐..” 수업보다는 걱정과 불안감에 여전히 지배당하는 내가 한심하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5515버스에서 god의 촛불하나를 듣는다.
7월 21일. 이제 정말 한달 남았다.
작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원래 지내던 대전에서 올라와 신림에서 지내니 집밥이 그립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다. 정신차리자 x발.”노경 요약집을 펼쳤지만 이 지랄맞은 몸은 따라주지 않는다.
8월 3째주. 시험 첫쨋날이 끝났다. 노동법 포섭도 풍부히 했고, 인사도 한문제는 불의타였지만 18p 끄적이고 나왔으니 뭐라도 되겠다 싶었다.
둘째날도 무난했다. 항상 양채우기 어려워했던 행쟁을 20p 꽉꽉 채웠고, 노경 3문 마지막 그래프를 검토하며 합격을 확신했다.
시험장을 나오며 역시나 god의 촛불하나를 들었다. 올해는 느낌이 좋다.
헤어진 여자친구한테 연락을 해볼까 했지만 합격발표가 나온 후에 해도 늦지 않겠다 싶었다.
11월 x일. Qnet에 접속하기 2시간 전인데도 온몸에 식은땀이 흐른다. 심장 뛰는 소리가 뇌 속에서 진동을 한다.
딸칵.
빨간색 글씨로 선명히 “불합격”이라고 써 있었다.
그냥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멍하게 앉아있길 5분, 그대로 일어나 책상에 있던 9만원짜리 2010년식 싸구려 모니터를 부서버렸다.
그전까지 태어나서 가장 길게 울어본 시간이 포경수술하기 전날 20분 정도였던 것 같다.
난 그날 신림동 3평 고시원에서 장장 12시간을 쉬지 않고 울었다.
바로 다음날, 알바몬으로 상하차 알바를 잡았다.
그곳에서도 키 170에 몸무게가 55키로 밖에 나가지 않았던 나는 상차하차가 아닌 바코드 찍는일로 배정받았다. 내 옆에서 상차 담당하시던 아저씨 한 분에게 “병신세끼가 비실거릴거면 처 나오질 말던가” 라는 말을 들었다.
다음날도 출근하였다.
일주일 후에도 출근하였다.
다음달도 출근하였다.
그리고 그그 다음달도 출근하였다.
통장잔고에 1350만원이 찍혔다. 그때 병신세끼라고 욕하던 아저씨한테서 장기로 일할 생각 없냐는 소리를 들었다. 정중히 거절하고 상하차 통근 버스를 타고 자취방에 돌아왔다. 여전히 이어폰에서는 god의 촛불하나 노래가 흘러나왔다.
3일동안 하루에 18시간씩 잠만 잤다.
몸이 편하거나 정신이 깨어있으면 너무 괴로워서 벽에 이마에 피가 흐를때까지 머리를 처박았다.
일을 나가지 않은지 5일째, 손해사정사를 따기로 하였다.
바로 인강을 결제했다.
독서실 따위는 끊지 않았다.
7개월 반동안 자취방을 나온 적이 30번이 안된다.
살기 위해 공부했다. 생존하기 위하여.
2차 합격후 자소서를 작성하며 비록 좋은대학은 아니지만 4년간 성실히 학교 생활을 하였던 나 자신한테 감사하였다.
2021년 x월 x일. 오전 11시 30분 문자 한통이 왔다.
“축하합니다. 귀하는 y손해보험사에 최종 합격하셨습니다. 추가 안내사항은..”
그저 멍 했다.
지난 4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2년간 얼굴을 뵈러 가지 못했던 어머니한테 전화를 드렸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단어가 나오지 않았다. 그저 낼 수 있었던 소리는 “끄윽끄윽” 숨 넘어가는 소리가 전부였다.
그저 모든날이 감사한 순간이었다.
어디서 퍼온거?
아 근데 서울대입구역은 섬식승강장이라 출입문 왼쪽열림
고생 많았네 노무사는 아쉽지만 손사로서도 충분히 중상위 인생 살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