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3월 봉기 이후 동학군의 세력이 전라도에서 전국으로 확대되기 시작하자, 이러한 사태에 다급함을 느낀 조선 조정은 홍계훈을 양호초토사로 삼아 이를 진압하게 하였다. 홍계훈은 한성을 지키던 정예부대인 장위영 약 800명을 이끌고 전라도로 내려갔다. 이들은 독일 제국에서 수입한 크루프 사의 야포와 마우저 소총, 개틀링 기관포2문으로 무장하고 있었으며,
익명(223.38)2020-04-27 14:07
답글
당시 개틀링 2문 가지고 삼지창 들고 싸웠다는걸 까고 싶은건가요?;;
익명(125.182)2020-04-27 14:08
답글
너무후려치시는거같아서 한마디햇네요 ㅎㅎ
익명(223.38)2020-04-27 14:08
답글
그때 당시 관군 주력이 뭐였는지 검색을 해보셈
익명(125.182)2020-04-27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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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포와 소총은왜빼시죠?
익명(223.38)2020-04-27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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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관군이 게베어 1871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왔는데 당시 게베어는 중앙의 친군영이 주로 사용했으며, 동학군 진압을 위해 나선 심영병들은 레밍턴 롤링블럭을 주력으로 사용했다.
익명(223.38)2020-04-27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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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 개틀링이랑 야포는 순수 관군전력이 아니라 일본군도 참전했을때 스펙 아닐런지요?
익명(125.182)2020-04-27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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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데요?
익명(223.38)2020-04-27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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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위영은 조선독자적인 군부대인데요?
익명(223.38)2020-04-27 14:10
답글
관군이 처음 대치했을때 동학군에게 개발리고 그다음 일본군이 들어와서 싸운후 스펙과는 상당히 대조적이죠.
익명(125.182)2020-04-27 14:11
답글
계속추측,뇌피셜은그만하셨으면합니다 ㅋㅋ 소모적인데.. 인정하는게낫지않을까요?
익명(223.38)2020-04-27 14:11
답글
황룡촌전투는 전주입성이전이라 텐진조약때매 양국 개입하기전인데요?
익명(223.38)2020-04-27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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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 대화가 왜 진행됐는지 모르겠는데 문숭주의 하다가 망한건 맞지 않나요? 삼지창 들고 싸웠다는것에서 발끈한건가요 아님 문과를 까서 발끈하신건가요? 항모로 미군이랑 싸울때 우리나라 뭐했는지 보시면 문숭주의의 처참함은 맞지 않을까용
익명(125.182)2020-04-27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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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를까서발끈한게 아니라 님이 역사적사실을 악의적으로 왜곡해서 뇌피셜로 그럴듯하게 선동하니까 그런거에요^^
익명(223.38)2020-04-27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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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연히 총이주력인데 삼지창얘길하질않나..
익명(223.38)2020-04-27 14:13
답글
아 그렇다면 죄송합니다. 글은 수정할게요.
익명(125.182)2020-04-27 14:13
답글
너무 조선 비하식으로 쓰긴 했네요
익명(125.182)2020-04-27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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넹 감사합니다
익명(223.38)2020-04-27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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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문제 없나요 글? 총들고 싸운걸로 바꿨고 일본이 1900년대 항모 가지고 싸운거랑, 임진왜란때 통신사 보냈는데 돌아와서 당파싸움 하다가 초기대응 놓친것 등은 한번 체크 해주십쇼.
개소리한다 임진왜란이후 휴전때부터 조총들어오고 그뒤로화약만든지가언젠데 역사를 니멋대로쓰노?
?? 항모 만들때 화약 만든게 자랑은 아니지 않냐
화약 1900년으로부터 200 300년전에만들엇다구요 ㅋㅋ 창들고싸웟다며 ㅋㅋ
실제 동학농민운동 부터 민씨일파 집권 대한제국시절 까지 포졸들이 삼지창 들고 싸웠습니다만...?;;
당시 기관총 등 몇몇 신식 무기들이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으나 어떻게 사용하는질 몰라서 전부 청에 반납 하기도 했음
삼지창만들고싸웟냐? ㅋㅋ 황룡촌전투때 농민들 곡괭이 낫들고 싸우고 정부군 총갖고싸워서 개쳐발랏는데?
관군이 전부 쓸려 나가서 청,일 군대 끌여 들어온게 당시 조선조정 수준인데 저랑 역사를 다르게 아시는듯
저 7급국사 100점입니다만 ㅎㅎ 한국검정1급 97점이구요
어찌되었건 쇄국정책, 기술천대문화, 소극적인 개방정책과 국내정치 망해서 일본한테 통으로 먹힌건 팩투 아닙니까
1894년 3월 봉기 이후 동학군의 세력이 전라도에서 전국으로 확대되기 시작하자, 이러한 사태에 다급함을 느낀 조선 조정은 홍계훈을 양호초토사로 삼아 이를 진압하게 하였다. 홍계훈은 한성을 지키던 정예부대인 장위영 약 800명을 이끌고 전라도로 내려갔다. 이들은 독일 제국에서 수입한 크루프 사의 야포와 마우저 소총, 개틀링 기관포2문으로 무장하고 있었으며,
당시 개틀링 2문 가지고 삼지창 들고 싸웠다는걸 까고 싶은건가요?;;
너무후려치시는거같아서 한마디햇네요 ㅎㅎ
그때 당시 관군 주력이 뭐였는지 검색을 해보셈
야포와 소총은왜빼시죠?
일단 관군이 게베어 1871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왔는데 당시 게베어는 중앙의 친군영이 주로 사용했으며, 동학군 진압을 위해 나선 심영병들은 레밍턴 롤링블럭을 주력으로 사용했다.
거기다 개틀링이랑 야포는 순수 관군전력이 아니라 일본군도 참전했을때 스펙 아닐런지요?
라는데요?
장위영은 조선독자적인 군부대인데요?
관군이 처음 대치했을때 동학군에게 개발리고 그다음 일본군이 들어와서 싸운후 스펙과는 상당히 대조적이죠.
계속추측,뇌피셜은그만하셨으면합니다 ㅋㅋ 소모적인데.. 인정하는게낫지않을까요?
황룡촌전투는 전주입성이전이라 텐진조약때매 양국 개입하기전인데요?
근데 이 대화가 왜 진행됐는지 모르겠는데 문숭주의 하다가 망한건 맞지 않나요? 삼지창 들고 싸웠다는것에서 발끈한건가요 아님 문과를 까서 발끈하신건가요? 항모로 미군이랑 싸울때 우리나라 뭐했는지 보시면 문숭주의의 처참함은 맞지 않을까용
문과를까서발끈한게 아니라 님이 역사적사실을 악의적으로 왜곡해서 뇌피셜로 그럴듯하게 선동하니까 그런거에요^^
엄연히 총이주력인데 삼지창얘길하질않나..
아 그렇다면 죄송합니다. 글은 수정할게요.
너무 조선 비하식으로 쓰긴 했네요
넹 감사합니다
이제 문제 없나요 글? 총들고 싸운걸로 바꿨고 일본이 1900년대 항모 가지고 싸운거랑, 임진왜란때 통신사 보냈는데 돌아와서 당파싸움 하다가 초기대응 놓친것 등은 한번 체크 해주십쇼.
조선 개ㅂㅅ맞아여 나머지는다맞으심 ㅎㅎ
삼지창 하나로 굉장히 화가 많이 나셨네요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