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반도 남쪽은 신식민지인가?

김규상 연구위원(캐나다 거주)

조선반도 남쪽은 신식민지인가?

이 질문에 대해 답하는 방법엔 최소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다른 어떤 문에서와 마찬가지로, 객관적 현실 속에서 현실에 대한 탐구를 통해서 그 답을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고 답하는 것이다. 질문의 의도를 찾는다면, 질문에 담겨있는 것들, 즉 용어, 태도, 맥락 등이 답을 이끌어내는 데 중요할 것이다.

우선 ‘조선반도’란 말을 보자. 북에선 조선반도가 당연한 말로써 등장하지만 남측에서 완전히 다른 얘기가 된다. 한반도, 한국, 남한이라 해야지, 조선반도라든가 남조선이라 하면 길 가던 사람들 열에 아홉은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듣는 사람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상대방을 어떻게 대할 지도 즉각 정해질 것이다. 좋든 싫든, 국가보안법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현실의 한 모습이다.

이렇듯 그 의도도 답도 뻔한 듯한 질문이 새롭게 들릴 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최근에 벌어진 일들, 즉 4.27선언 이후 전개된 새로운 정세 때문에, 그 정세가 알게 모르게 우리 마음을 흔들어놨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보았는가? 세기적 사변이라 부르는 세 차례 “북남수뇌”회담과 두 차례 ‘조미’수뇌회담을 보았고, 그것은 분단체제 속에서 사는데 익숙한 사람들이 ‘이북조선’에 대해 들어왔던 모든 것들을 다시 생각하도록 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국정원 같은 데서 의례히 제공하는 뿌옇고 벌겋게 채색한 화면이 아니라, 고해상도 화질과 함께 또렷하게 들여오는 목소리만으로도 무한한 감동이었을 것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고 앞서 던진 질문을 다시 대하면, ‘조선반도 남쪽’이란 말은 그저 특정 지역을 가리키는 말에 불과한 것으로 들리고, 질문의 의도니 정치적 입장이니 하는 것은 뒤로 밀려나고, 질문의 초점인 신식민지인가, 아닌가에 차분히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객관적 현실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이며, 의도되고 조작된 답이 아닌, 우리가 진정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는 조건을 비로소 갖춘 것이라 하겠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가 사는 반도의 남쪽이 신식민지인지의 여부를 말해보고자 한다.

첫째, 미국에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정도가 얼마인지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일본 등과의 수출입 교역량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2000년대 들어서 판도가 바뀌어 일본, 미국을 차례로 제치고 중국과의 교역량이 급격히 늘어난다. 2019년 현재, 일본은 홍콩, 베트남보다 뒤처졌고, 중국은 미국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교역량을 기록 중이다. 수출입규모가 경제적 의존성을 가늠하는데서 얼마나 타당한 지표냐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지만, 실물경제의 움직임을 이만큼 잘 보여주는 것도 없다는 전제에서다. 예컨대, 경제적 대외종속의 지표로 상장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 지분율을 거론하는데, 이는 두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하나는, 어느 나라 자본인지 구분이 없으며, 비상장기업을 누락시킨다는 것, 그리고 주식시장에 유입된 간접투자만을 계산한 지표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렇게 주식시장을 통해 유입된 외국자본은, 잉여가치의 일부인 기업수익 배분에 참여할 권리를 표시하는 것일 뿐, 경제의 대외의존성을 나타내는 데는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어쨌든, 수출입교역량으로 봤을 때 경제의 대외의존도, 즉 경제적 종속성은 일본, 미국으로부터는 크게 감소하고, 중국을 상대로 급속히 상승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둘째, 정치적 종속성이다. 우선 이것은 수치로 표시하기 어렵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은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먼저, 주한미군 주둔비용에 대한 협상에서 역대 그 어느 정권만큼이나 비굴한 자세를 취했고, 그 결과 가장 굴욕적인 협상결과가 나왔다는 점을 봐야한다. 최근 일본을 상대로 수산물수입제한에 대한 승소판결을 얻어냈다는 자랑이 무색하게 하고도 남는 끔찍한 결과다. 특히, 최근 방미 중 막대한 액수에 달하는 무기수입을 약속한 것이나, 정상회담으로 형성된 새로운 정국에서 철저히 미국의 요구에 굴복하는 모습은 정치적 종속이 어느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게 한다. 더구나 현 정권은 자타가 공인하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 못지않은, ‘국민을 위한 정부’라 선전해오지 않았던가.

셋째, 국내 독점자본과 제국주의 자본이 우리 민중들을 수탈해가는 정도가 각각 어느 정도인가의 문제다. 이를 직접 보여주는 통계는 없다. 다만, 90년대말 외환위기, 2008년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 등 일시적 변동을 제외하면, 과거 20년간 외채 규모 및 외국인 투자자 지분율이 점증하여 각각, 국내총생산액의 30%에 육박하거나, 상장기업 시가총액의 30%를 넘어섰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에서 창출된 잉여가치가 배당이나 이자 형태로 미국, 일본 등으로 빠져나가게 하는 환경이 더욱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보다 직접적인 지표는 최저임금 수준일 것이다. 2017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여전히 열악하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최근 최저임금 수준을 두고 언론에서 떠드는 소리다. 즉, 국민소득 대비 최저임금이 세계 3-4위라는 것이다. 소득수준이 그만큼 낮다는 얘기를 하지 않고 정반대로, 아전인수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와 평균 임금을 비교한 통계를 보면, 선진국 수준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동유럽 국가들을 제외하면, 사실상 최하위 수준인 것을 호도, 왜곡하는 것이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노동자들부터 착취해간 잉여가치가 국내 독점자본과 미국의 제국주의자본 사이에 어떻게 나뉘는지 그 액수는 알 수 없어도, 그런 착취체제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이다.

이런 얘기들을 통해서 이끌어내고자 하는 논지는 다음과 같다.

이제까지 사용해온 신식민지라는 개념의 내용이 바뀌어야 한다.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조선 침략, 또는 영국의 인도 지배와 같은 직접적 지배-피지배 관계를 일컫는 말로서 식민지라는 말과는 대조적으로, 신식민지라는 개념은 직접 지배 대신, 경제적 지배를 중심으로 하는 간접적 지배-종속 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컨대, 남한자본주의를 두고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라 하면,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세계경제체제에서 분업화된 하위체제로서, 정치적으로는 일정한 자율성을 갖더라도, 경제적으로는 그 종속성을 통해서만 발전이 가능한 것을 말했다. 이른바 독점강화, 종속심화라는 명제다.

이 명제에 담긴 현실 진단은 3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지금 전혀 들어맞지 않음이, 그 주장의 내용과 실제 현실과의 괴리를 통해, 실증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즉 상대적 자율성을 지닌 국가의 비호 아래 독점자본의 발전과 경제적 종속이 서로 상승작용한다는 주장은, 상대적 자율성이라 하기엔 너무나 미국에 굴욕적이고 사대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문재인 정권을 비롯한 역대 정권의 모습을 통해서 그 근거를 잃었고, 경제적 종속 측면에서는 중국과의 교역량이 급속하게 증가한 만큼 미국으로의 직접적 종속성이 이완되었다는 것을 통해서, 그 현실부적합성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신식민지라는 진단 자체가 틀렸다거나 그 개념을 버려야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다만 경제적 측면에서의 지배-피지배 관계의 내용이, 종전과는 달리 쌍방 간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정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즉 제국주의 미국자본의 편에서는, 남한자본주의의 발전을 통해서 사회주의진영의 확산을 막고 그들의 전세계적 지배체제를 지켜나가려는 데서 이해관계가 발생하고, 다른 한편 남한의 독점자본과 그 비호세력들에겐, 노동자 착취체제를 온존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에서 미국의 개입이 필수적인 담보자 역할을 한다는 데서, 쌍방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남한 독점자본에게는 잉여가치 창출을 통한 확대재생산이라는 본연의 경제적 이해가 걸려있다면, 미제국주의자본에게는 그런 직접적 이해보다는, 자본주의진영과 사회주의진영의 대결구도 아래에서 정치적, 군사적 차원의 이해관계가 훨씬 더 크게 걸려 있다.

사실 이렇게 긴 설명이 아니더라도, 반도 남쪽 땅이 제국주의의 이해가 관통하는 신식민지인가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미국의 허락이 없으면 범죄행위라도 제대로 처벌할 수 없는 불평등한 ‘한미주둔군지위협정’을 봐도 그렇고, 한 해 5조원이 넘는 세금이 주한미군 주둔비용으로 쓰인다는 것, 정부가 대북제재를 해제하려 해도 미국의 허락이 없이는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봐도 그렇다. 답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