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차별을 해소하라”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 눈물의 집단 삭발

학비노조, 17일 서울 청와대 앞서 100인 삭발.. ‘공정임금제 시행’, ‘교육공무직 법제화 요구’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가 17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 약속 이행 촉구 학교비정규직 여성노동자 100인 집단삭발식을 하고 있다. 2019.06.17ⓒ김철수 기자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대선 공약인 '공정임금제' 시행과 '교육공무직 법제화'를 요구하며 100인 집단 삭발식을 가졌다. 또 이들은 전국 교육청이 두 달 넘게 집단 교섭을 파행시켰다며, 최근 시작된 본 교섭에도 불성실하게 임한다면 7월 초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예고했다.

이날 30~60대 여성노동자들이 대거 삭발을 했고 일부 남성노동자들도 삭발에 동참했다. 삭발을 하는 사람은 물론 머리카락을 밀어주는 사람도 눈물을 흘렸다. 서럽고 참담한 심경이 노동자들의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미용실 커트보 대신에 몸에 두른 노조 지부 깃발 위로 노동자들의 머리카락이 흩어졌다.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도로에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이하, 학비노조) 조합원 100인의 집단 삭발식이 열렸다. 이들은 삭발식에 앞서 '학교 비정규직 정규직화 대통령 약속 이행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핵심 요구는 '정규직과의 차별해소'와 '교육공무직 법제화' 였다.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가 17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 약속 이행 촉구 학교비정규직 여성노동자 100인 집단삭발식을 하고 있다. 2019.06.17ⓒ김철수 기자

학비노조는 작년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인해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해가 크다고 주장했다. 수년 간의 단체교섭을 통해 만든 복리후생비가 산입범위 안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조합원들은 임금이 줄어들었다고 전했다.

이를 해결하는 대책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대선 공약으로 내놓았던 '공정임금제(정규직-비정규직 임금 격차 축소,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 80% 수준으로)'를 실현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학비노조에 따르면,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은 공무원 최하위 직급의 60 ~70% 수준인데, 이를 80% 선까지 인상시켜 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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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현재 학교비정규직(교육공무직)에 관한 국가 차원의 법적 근거가 없으므로, 관련 법을 제정해 달라는 요구를 했다.

학비노조 집계에 따르면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약 50%(약 35만명)가 학교 비정규직이고, 전국 학교 교직원의 41%가 비정규직이다. 이렇게 대다수의 노동자가 '비정규직' 신분으로 학교에서 일함에도 국가 차원의 통일된 정원 기준, 인건비 예산 기준 등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부당한 처우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사용자인 전국 17개 시도교육감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이들은 지난 2개월 간 진행된 전국 차원의 집단교섭이 계속 파행적으로 진행됐다며 권한 없는 교섭위원을 앞세우고 무책임하게 대응하는 교육감들의 태도를 비판했다. 또 1년 전 지방선거 당시 맺은 '학교 비정규직 차별 해소에 대한 정책협약'을 지키라고 촉구했다.

학비노조는 이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시, 오는 7월 3일 진행될 '민주노총 공공부문 비정규노동자 총파업'에 동참하고, 이후 무기한 총파업으로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가 17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 약속 이행 촉구 학교비정규직 여성노동자 100인 집단삭발식을 하고 있다. 2019.06.17ⓒ김철수 기자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가 17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 약속 이행 촉구 학교비정규직 여성노동자 100인 집단삭발식을 하고 있다. 2019.06.17ⓒ김철수 기자

박금자 학비노조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하고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에 우리는 환호했다. 학교비정규직노동자도 살맛나는 세상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기대를 품고 기다렸다. 이제 3년차에 접어들었다. 언제 하실 건지 대통령께 묻고 싶다"며 "이 땅에 비정규직이 없어지고 정규직화 되도록, 대통령께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 선언 하신 것 약속이 이행되도록 하게 하기 위해 오늘 우리가 삭발을 결의하게 됐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날 삭발식 현장에는 민주노총 산하 다른 노조 조합원 다수가 참가해 학비 노동자들에게 연대와 응원의 마음을 보냈다. 이은아 특성화고졸업생노조 위원장은 박금자 학비노조 위원장의 머리를 직접 잘라 주며 연대의 뜻을 표했다.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은 "차마 말을 못 잇겠다. 뒤를 돌아보지도 못하겠다"며 삭발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이들이 오는 삭발하는 마음은 온전히 '절실함' 때문"이라며, "학교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구조화하고, 이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서야 되겠나. 오늘의 삭발은 그것을 바꾸자는 뜻이다. 민주노총이 이 절실함이 유실되지 않게 함께 크게 싸워가겠다"라고 말했다.

권정오 전교조 위원장은 "우리 조합원들은 대부분 정규직이다. 그러나 저는 학교 현장에서 여러분과 우리들이 하는 역할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의 노동과 교사들의 노동이 합쳐져서 학교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라며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응원했다.

이어 "이 사회를 이끌어갈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의 모범은 모든 노동자들이 평등하게 일하는 일터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학교를 만들어 가자"며 "전교조 6만 조합원이 여러분과 함께 하겠다. 여러분의 투쟁을 지원 할 방법을 찾겠다"고 다짐했다.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가 17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 약속 이행 촉구 학교비정규직 여성노동자 100인 집단삭발식을 하고 있다. 2019.06.17ⓒ김철수 기자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가 17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 약속 이행 촉구 학교비정규직 여성노동자 100인 집단삭발식을 하고 있다. 2019.06.17ⓒ김철수 기자

기자회견을 마친 뒤 삭발식이 이어졌다. 학비노조 조합원들은 너나할 것 없이 슬퍼했고, 삭발한 조합원들의 머리카락이 떨어지자 경복궁 담벼락 밑에 모여 이를 지켜보던 다른 노조 조합원들도 눈물을 훔쳤다.

현장에 나와 있던 마트노조 홈플러스 김포풍무지회 박성숙 지회장에게 삭발하는 학비노조 조합원들을 지켜보는 심경을 물었다.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는 분명히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해주겠다는 대통령을 뽑았는데 왜 안 되는 것일까. 언제까지 이런 일이 반복될 지 모르고, 끝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것 같아 맘이 아프다. 최저임금 받고 인간답게 살겠다고 몸부림 치는데 그것조차 실행이 안 되는 이 나라는 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그래도 문 대통령의 선의를 믿고, 학비 노동자들의 투쟁에 희망을 걸었다.

"대통령 본인 뜻과는 상관없이, 야당과 주변 환경에 따라서 공약이 이행되지 않는 것 같다. 약속을 지켜주실 걸로 믿는다. 학비 노동자들이 삭발하는 것 직접 보니 현실로 다가오고 마음이 많이 아프다. 이들의 뜻이 전달되어서 대통령께서 하나씩 해결해 주시길 바란다"

<인터뷰> 학비노조 조합원인 어머니를 응원하며 머리를 밀어준 취업준비생 딸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가 17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 약속 이행 촉구 학교비정규직 여성노동자 100인 집단삭발식을 열었다. 딸이 어머니 현은정 씨의 머리를 삭발하고 있다. 2019.06.17ⓒ김철수 기자

이날 삭발을 한 조합원 중엔 학비노조 제주지부 현은정 조직국장(52)이 있었다. 그의 머리를 밀어준 것은 큰 딸 문믿음(26·가명) 씨였다. 믿음 씨는 집을 떠나 대구에서 직장을 찾고 있었으나 어머니를 위해 상경했다. 오십대 여성 노동자인 어머니의 노조 활동을 응원하며 머리를 밀어주는 취업준비생 딸의 모습은 삭발식에 참석한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들 모녀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 문믿음 씨와 나눈 이야기
질문1, 어머니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삭발을 돕게 됐나?
답변) 엄마는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이번에 우리 노조에서 삭발식을 한다. 나도 하기로 했다. 너가 와서 밀어줄 수 있겠냐'고 하셨다. 그래서 저는 흥쾌히 하겠다고 했다. 이런 행동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엄마의 행동하는 모습이 멋있어서 돕겠다고 했다.

질문2, 어머니와 어머니의 많은 동료들이 삭발을 하고 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나?
답변) 정권이 바뀌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살아가기가 아직 힘들고, 일하는 환경도 많이 바뀌지 않았다는 게 느껴진다. 더 빨리 많이 나아져야 겠다는 생각이든다. 저도 앞으로 일하게 될텐데, 그러면 겪어야 할 상황이다. 한 발 앞서, 그런 환경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 나서 주시는 분들이 멋있다.

질문3, 오늘 이 자리 노동자들의 요구가 '대통령님, 공약을 이행해달라'다. 대통령께 유권자로서 한 마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답변) 성인이 되고 첫 대선 투표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뽑았다. 제 표 받으신 만큼 남은 기간 동안 잘 해주셨으면 좋겠다. 약속해 주신 것 이행해달라. 소중한 표가 아깝지 않게 해달라.

질문4, 어머니에게 남기고 싶은 응원의 메시지는?
답변) 엄마! 멋있어. 앞으로도 늘 그렇게 행동해줘요.

■ 현은정 씨와 나눈 이야기

질문1, 딸한테 삭발을 도와달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딸이 뭐라고 하면서 돕겠다고 했나?
답변) 딸이 주저하지 않고 돕겠다고 했다. 평소에 엄마가 하는 일을 응원했고, 어려서부터 활동하는 걸 봐 와서 그런지 주저함이 없었다. 딸이 둘 있는데, 막내딸한테는 말하지 못했다. 아직 모르고 있는데 알게 되면 그 애는 울 것 같다.

질문2, 오늘 도와준 딸과 그 동년배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답변) 제가 학교를 졸업할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취직하기 위해서 온갖 스펙 쌓아야 하고, 스펙을 쌓았다고 해서 취직이 되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는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계속해야 하는 청년들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웠다. 열심히 하면 자기가 원하는 일 정도는 할 수 있는, 노력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대통령께서 비정규직 없애겠다고 약속하셨다. 이 청년들을 위해서라도 이 약속 반드시 지켜주시기를 바란다.

질문3, 문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답변) 제주도는 아직도 다른 시도와 달리, 급식실 조리원들의 1일 노동시간이 7시간이다. 그러다보니 업무 시간에 쫓겨서 산재도 많이 나고, 월급도 적다. 도대체 다른 곳과 무슨 차이가 있어서 이런가 싶어 투쟁에 나서게 되었다. 저를 비롯해 제주 학교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똑같은 업무시간, 출퇴근 시간이 보장되었으면 좋겠다. 또 비정규직 정규직 차별 없이 똑같은 사람으로 대우받을 수 있게 해 달라. 이것은 대통령이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