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사건이 보여준 ‘딜레마’…대중은 왜 혁명에서 멀어져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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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지 1세기가 되는 해다. 300년 넘게 러시아를 다스리다가 근대화와 제1차 세계대전의 압박을 못 이기고 하릴없이 무너진 로마노프 황조에 뒤이어 들어선 러시아 임시정부가 세계혁명의 전위를 자처하며 사회주의 정부를 세우려는 볼셰비키와 맞서던 때가 딱 100년 전 이맘때였다. 볼셰비키 지도자 레닌은 노동자와 병사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1917년 늦가을에 무장봉기를 일으켜 임시정부를 무너뜨리고 권력을 얻었다. 이 혁명은 세계를 뒤흔들었으며, 그 여파는 20세기 내내 지속됐다. 러시아 혁명은 오늘날 쓰이는 革命이라는 용어의 전형적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6세기 유럽 점성술사의 맥락화天命을 바꾼다는 뜻으로『주역』에 나오는 혁명이라는 표현이 동아시아 세계에서 가리키는 바는 하늘의 뜻에 따라 폭군을 몰아내고 백성을 구제하는 행위였다. 서양에서도 혁명이라는 낱말은 하늘과 연관돼 있었다. 빙빙 돈다는 뜻의 라틴어 동사 레볼베레(REVOLVERE)에서 비롯된 명사인 혁명(revolution)은, 코페르니쿠스가 1543년에 펴낸『천구(天球)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라는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워낙은 천문학 용어였다. 행성의 운행을 가리키던 이 용어를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격변을 뜻하는 낱말로 쓰기 시작한 이들은 16세기 유럽의 점성술사였다.
별의 운행을 연구하면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점성술사는 혁명이라는 낱말에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천체의 힘이 인간 세계에 작용해 난데없이 일어나는 전환적 대사건이라는 뜻을 보탰다. 이 맥락에서 제임스 2세가 의회의 신뢰를 잃고 쫓겨나고 새 왕이 옹립된 1688년 영국의 정치 격변에 사상 최초로 혁명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이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에서 한 세기가 지난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부터는 혁명이 정치 영역에서 일어나는 급격한 권력 이동이라는 수준을 넘어 사회의 기틀과 얼개가 바뀌는 대격변이라는 뜻으로 확대되었다.
자유와 평등을 인류 보편의 가치로 내세운 프랑스 혁명은 근대를 열어젖히며 유럽 전체를 뒤흔들었다. 체제에 편입된 부르주아지의‘배신’탓에 완성되지 못한 프랑스 혁명의 가치를 마저 이뤄내겠다는 유럽 사회주의의 포부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집단이 러시아에 있었고, 그 한 갈래가 볼셰비키였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세기 전환기에 고통스러운 근대화 과정을 겪던 러시아에서 전제 체제의 타파를 외치는 정치 세력에는 여러 갈래가 있었지만, 그 가운데 언뜻 보면 가장 미약했던 볼셰비키가 1917년 혁명에서 권력을 얻은 뒤 새로운 체제를 세워 생존하는데 성공했다. 그 과정과 결말을 살펴볼 시점이 됐다.
빈부 격차가 극심한 탓에 혁명이 일어났다는 생각이 통념이지만,레볼루션이 리볼버처럼 동그랗게 뱅뱅 돌다가 어원이구나.
공산당의 '한가지 공'도 1도 뜻하고 던지는 공과 발음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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