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깃헙갤에 있으면서 종종 프갤 눈팅을 했는데 계속 맘에 밟히더라. 그래서 활동을 다시 할지 안 할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장문으로 한 번 남겨보고 싶었다.


이러면 뭐 '관종'이라고 욕하겠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난 유명해지고 싶지도, 뭐 자랑을 하고 싶지도 않아.


그리고 설사 그런 걸 하고 싶었어도 레딧 같은데서 하겠지, 학식들이나 개발 경험 별로 없는 애들끼리 매일 같이 국비나 까고 주워 들은 걸로 아는 척하고 그런 데서 할 생각은 없다.


근데 맘에 밟힌 이유는 딱 그거야. 학식들이나 입문자들 많이 오는, 명색이 '프로그래밍'이란 이름 달고 있는 큰 커뮤니티인데, 온갖 편견, 혐오, 잘못된 정보만 넘쳐나는 걸 보니 되게 안타깝더라고.


틀딱이 오지랖 부린다면 인정하마. 관종은 아닌지 몰라도 오지랖은 맞고 뭐 나이도 적진 않으니까.


니들이 국비 애들 혐오하는 건 잘못된 거지만, 국비 같은 게 생겨난 'SI'라는 관행이 엄청나게 그지 같은 건 맞아. 보통 거기서 하는 기술 수준이 낮은 것도 사실이고.


그리고 내가 오키에서 글 쓰는 건 주로 그런 동네에 어쩔 수 없이 입문한 애들이 실력 키워서 탈출을 하던가, 아님 내부에서 그런 걸 바꾸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 그렇다.


"그게 너하고 뭔 상관인데 오지랖이냐"고 묻는다면, 그냥 이 바닥에서 오래 일한 사람의 일말의 책임감이라고 말하고 싶다.


예전엔 SI 이야기 나오면 나도 그냥 아무 생각없이 비판만 했다. 니들은 "국비충", "땔감" 운운하면서 비하 조롱만 했겠지만, 난 장문으로 SI 관행 비판도 자주하고 덧글로 토론도 꽤 했거든.


그런 토론을 하다보면 누구는 정부를 욕하고, 누구는 니들 처럼 비전공 입문자에게 엉뚱하게 화살을 돌리기도 하고 그렇더라. 그 중에 가끔씩 이전 세대 개발자들은 무얼했냐고 비판하는 말들이 있더라. 근데 나이가 들고보니 이젠 내가 그런 관행을 방조한 '선배 개발자'의 일원이 되어 버렸다.


물론 그게 다 내 책임은 아니겠지. 다들 자기 먹고 사는 일 바쁘고, 안 바빠도 혼자서 뭐 정부 정책에 영향을 주고 그런 건 아무나 하는 건 아니잖아?


근데 그래도, 최소한 무엇이 올바르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이야기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보다 이 바닥에서 오래 굴러서 더 많이 보고 들은게 있다면 그런 건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래서 비슷한 이유로 여기서 날이면 날마다 국비 애들 조롱하고 비하하는 것도 마음에 밟히는 거다. 걔들은 현상이지 원인이 아니야. 국비가 있어서 개발자들 단가 떨어지고 수준이 낮아지는게 아니라, SI라는 이상한 관행이 생겼으니 그 수요를 채우려고 국비 같은 게 생겼을 뿐이다.


난 국비로 시작해도 가끔씩은 적성에 맞아서 2-3년 만 지나도 금방 실력자 되는 애들도 꽤 봤다. 그러니 개발자로서 부심을 부리고 싶으면 깃헙 프로젝트라도 자랑을 해라, 니 아래 있는 애들 밟는다고 니가 진짜 실력자가 되는 건 아니잖아, 그런 착각이 들게 할 뿐이지.


그리고 개발자가 무슨 벼슬은 아니잖아? 가뜩이나 살기 팍팍한 동네에서 출신 따지고 차별하고 그런 걸 개발자들 끼리도 꼭 해야되는 거야?


뭐 반말하고 이거 저거 까는게 디씨 분위기인 건 안다. 근데 혐오는 밈이 아니야. 난 디씨 처음 생겼을 때도 기억하는데, 그 땐 그래도 이 지경은 아니었다.


쓸데없는 권위니 격식이니 다 내다 버리는 건 좋은 거야. 그런데 그걸 혐오하고 동일한 걸로 착각하진 마라.


내가 볼 때 우리나라 인터넷 커뮤니티들 이 지경 된 건 나라 전체가 드럽게 경쟁적이고 먹고 살기 팍팍해서 그런 것 같다. 내가 개발 오래했다고 SI 바닥의 병폐를 다 책임 못지는 것처럼, 그게 다 너네 책임은 아니란 거 잘 안다. 근데 최소한 그걸 더 좆 같이 만들지는 마라.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그리고 니들 웹 개발 우습게 생각하고 저수준이 최고인 줄 알고 그런 편견 가진 것도, 내가 니들이 "웹 땔감" 운운하면 기분이 나빠서 그렇게 반박하는 게 아니야.


그런 착각이나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니들은 진짜 실력있는 개발자가 못 될거고, 또 그런 걸 퍼뜨리면 니들 뿐 아니라 다른 입문자들 한테도 그런 한계를 씌워 버리는 거니까 그게 안타까운거야.


뭐 니들이 그런 편견을 가지고 저수준 분야에서 고수가 됐다면, 시야는 좁아도 최소한 그 동네에선 인정 받을 수는 있겠지. 근데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저수준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될 거 같냐?


니들이 맨날 "땔감" 운운하면서 고수준이나 웹개발 욕해도, 아마 여기 오는 입문자나 학식들 대부분은 결국 고수준이나 웹에 관련된 걸로 먹고 살게될 가능성이 높을 걸? 근데 저런 편견으로 고수준 시작하면 그 분야에서 실력자가 될 수 있을까?


웹 개발 별거 없어 보이는 건 진입 장벽이 낮아서, 그리고 특히 우리나라에선 SI 관행 때문에 그냥 무턱대고 페이지 찍어내는 식의 일거리가 대부분이라 그렇게 보이는 것 뿐이야.


입문 단계에서 무슨 언어가 쉬우니 어려우니 그런 진짜 아무 것도 아니다. 진짜 어려운 건 그 다음에 있어, 편견에 갇히면 10년 실무를 해도 그 너머로 못 넘어가서 문제인거지.


고수준 분야가 무슨 "정보 조립사"니 '레고 쌓기'니 하면서 비하를 하던데, 그 레고 블록은 누가 다 만든다고 생각하냐? 스프링, 리액트 같은 건 누가 만들 것 같니? C 개발자가 대신 해주나?


니들이 고수준에 발을 담궜으면 궁극적으로 목표로 해야하는 건 그런 레고 블록을 니 필요에 맞게 다듬고, 때로는 직접 만드는 일이다. 이 동네는 거대한 생태계야. 그래서 남들이 만든 블록도 잔뜩 가져다 쓰고, 가끔은 니들이 그런 블록을 만들기도 하면서 유기적으로 발전하는거다.


그리고 그런 블록들을 이용해서 고층 빌딩을 세우는 사람들이 있어. 스프링이나 이클립스 같은 것도 그런 레고 블록으로 쌓아올린 빌딩이고, 애초에 자바 같은 언어가 그렇게 유행한게 기업들이 백엔드 시스템을 그런 식으로 쌓아올리게 되면서 부터거든, 무슨 JSP로 홈페이지 만드는게 쉬워서가 아니란거다.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시장은 진짜 기형적이야. 그래서 진짜 기술을 선도하는 그런데서 일할 기회는 잡기 어렵고, 기술 동향 같은 것도 니들이 적극적으로 먼저 관심 갖고 공부하기 전엔 알기 힘들어.


그러니까 학식들하고 지가 해본게 전부인 줄 아는 개구리들하고 모여서 허구헌날 국비나 까고 '땔감' 운운하고 있는게 안타까운거다. 그러다 고수준 분야 취업해서 단순 작업이나 하게 될테고, 실력은 딱 그 수준에서 정체되서 프레임워크 예제 갖다가 웹 페이지 만들면 그게 개발의 전부인 줄 알테고, 그러면서 뭐 임베디드나 게임이나 AI 같은 '코어' 개발을 했으면 뭔가 다르지 않았을까 환상과 열등감을 갖겠지.


나 혼자 이런 이야기 한다고 욕이나 처먹지 뭐가 달라질 거라 기대는 못하겠다. 솔직히 여긴 그냥 답이 없는 것 같긴해. 그리고 그냥 신경 끄고 내 할 일이나 할까 싶기도 하고.


그래도 혹시 한 두 명이라도 생각이 바뀌지 않을까 싶어서 글이라도 남겨본다.


그게 이 바닥에서 20년 넘은 선배 개발자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인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