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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머리를 맞댈 용기, 연대를 복원하는 지혜

지금은 당적이 없지만 나는 과거 한 진보정당의 당원이었던 적이 있었다. 당비만 내는 불량 당원이긴 했어도 아주 가끔 지역 당원 모임에 얼굴을 비추긴 했다. 그런데 고백하자면 나는 그 모임에서 희망보다 절망을 느낀 적이 훨씬 많았다. ‘콩가루도 이런 콩가루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단합이 잘 안 됐기 때문이었다.

당원 모임은 늘 격렬했다. 내가 보기에 대충 합의하고 넘어가도 될 문제였는데도 한 번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당원들은 서로를 “존경하는 아무개 동지!”라고 불렀는데, 정작 토론 때에는 피차를 전혀 존경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속으로 ‘그럴 거면 차라리 <안 존경하는 아무개 동지>라거나 <미워하는 아무개 동지>라고 솔직하게 부르지’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였다.

당명을 바꿀 때 논쟁은 극에 달했다. 물론 나도 선호하는 당명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당명도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주요 후보로 오른 당명은 몇 글자 다르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 몇 글자를 가지고 여러 정파가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싸웠다. 이게 이렇게 싸울 일인가?

보다 못한 나는 난생 처음으로 당원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당명을 기사식당이나 숭구리당당으로 하시고, 제발 좀 그만 싸웁시다”라고 말이다.

내 감정이나 기억이 과장됐을 수 있다. 하지만 솔직히 이야기해보자. 이른바 ‘정파’라고 불리는 파벌의 문제가 범 진보진영 내에서 하루라도 안 심각했던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그 정파의 갈등이 과연 오로지 역사의 진보를 위한 것이었을까? 내가 무식해서 그런지 모르겠어도, 나는 지금까지도 그 갈등이 역사의 진보를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머리를 맞댈 용기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시비하자는 게 아니다. 진보는 다양성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과 같은 것이다. 다양한 의견은 진보의 숙명이자 자랑이기도 하다. 문제는 다른 의견을 해소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상대를 납작하게 밟아야 직성이 풀리는 관행이 우리에게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이 문제를 해결할 힌트를 하나 소개해보려 한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자연주의 의사결정론의 창시자로 불리는 심리학자 게리 클라인(Gary Klein)이 두 주인공이다. 카너먼과 클라인은 인간이 어떤 경로로 의사결정을 내리는지를 연구한 의사결정이론 분야의 양대 산맥이다.

이 두 거장은 전문가의 의사결정에 대해 매우 상반된 시각을 가졌다. 카너먼은 “전문가라도 많은 편향 탓에 형편없는 결정을 자주 내린다”고 주장한다. 반면 클라인은 “전문가의 직관은 이성을 뛰어넘는 매우 훌륭한 것이다”라고 반론한다.

“그게 뭐 중요한 주제라고 지면에 소개를 하느냐?”라고 반론하지 않아주셨으면 한다. 경제학과 심리학에서 다루는 의사결정이론에서 이는 매우 중요한 주제다. 그러니 카너먼이나 클라인 같은 거장들이 의견을 다투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완전히 상반된 주장의 이 두 거장이 언젠가 치열한 논쟁을 벌일 것이라 예상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두 사람의 한판 대결을 은근히 기대하기까지 했다. 사람들 심리가 그렇지 않은가? 원래 싸움 구경이 재미진 법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두 학자는 한판 대결이 아니라 공동연구라는 새로운 길을 택했다. 의견 차이를 좁히기 위해 카너먼이 클라인에게 공동연구를 제안했고 클라인은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나는 이 대목에서 진심으로 거장들의 품격을 느꼈다. 공동연구를 벌여 한 가지 결론에 이르면 그 뒷감당은 어찌 할 것인가? 애초 정 반대의 의견을 지닌 둘 중 한 명은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가? 둘 다 의사결정이론 분야에서 맨 꼭대기까지 오른 인물들인데? 하지만 두 사람은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흔쾌히 공동연구에 동참했다. ‘거장이 괜히 거장이 아니구나’라는 감탄을 금치 못한 대목이었다.

험난했던 공동연구와 위대한 합의

두 거장은 이후 꽤 오랜 기간 연구를 진행했는데, 예상대로 좀처럼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의견이 조금 다른 게 아니라 정반대였던 데다가, 양쪽 다 30, 40년의 오랜 연구 결과를 손에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카너먼의 회고다.

“클라인은 직관을 주장하는 전문가를 신뢰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그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