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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추석 연휴에 만나는 재미있는 경제역사④
*편집자 주 - 추석 명절을 맞아 경제역사에서 벌어졌던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사건들을 소개하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연휴 기간 동안 모두 다섯 건의 경제역사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① 달러는 어떻게 기축통화가 됐나?_ 스미소니언 협정
② 포르투갈과 스페인, 세상을 절반으로 나누다_토르데시야스 조약
③ 몰락한 시장경제, 무너진 자본주의의 신념 _ 대공황
④ 미국, 핵폭탄이 아니라 환율로 일본을 꿇리다 _ 플라자합의
⑤ 독일을 짓밟은 쾌감도 잠시, 유럽의 자살골 _ 베르사유 조약
미국의 경제 잡지 《포브스》는 매년 세계 부자 순위(The World’s Billionaires)를 발표한다. 주식이나 부동산 등 가치 측정이 가능한 재산을 금액으로 환산해, 세계에서 누가 제일 부자인지 순위를 매기는 것이다.
물론 이 순위가 아주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다. 《포브스》는 독재자나 왕실 등 권력을 이용해 부를 축적한 자들은 순위에서 배제하기 때문이다. 또 비자금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재산을 가진 이들의 순위도 매기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포브스》의 순위는 발표될 때마다 세계인의 관심을 끈다. 2020년 세계 1위 부자는 미국 전자쇼핑몰 아마존(Amazon)을 이끄는 제프 베조스(Jeff Bezos)로, 그의 재산은 1,130억 달러(약 132조 원)로 집계됐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의 창업자 빌 게이츠(Bill Gates)가 960억 달러(약 112조 원)로 2위를 차지했고, 루이뷔통 등 50여 개 명품 브랜드를 소유한 프랑스의 사업가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 가문이 760억 달러(약 90조 원)로 3위, 투자전문회사 버크셔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를 이끄는 주식 투자의 전설 워런 버핏(Warren E. Buffet)이 675억 달러(약 80조 원)로 4위에 올랐다.
순위를 볼 때 주의할 점이 있다. 《포브스》가 측정하는 재산은 모두 ‘미국 달러’를 기준으로 한다. 이 때문에 환율 변화에 따라 비(非)미국인들의 재산이 요동친다. 실제 재산은 변동이 없는데, 단지 환율이 변했다는 이유로 재산이 늘거나 주는 일이 생긴다는 뜻이다.
한국인으로 최고 순위에 오른 인물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75위)이다. 게임회사 넥슨의 창업주 김정주 대표가 241위, 제약 회사 셀트리온의 서정진 회장이 253위, 요즘 한참 재판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330위로 그 뒤를 이었다.
이처럼 한국 부자들 가운데 세계 100위 안에 든 인물은 이건희 회장 한 명뿐이다. 세상은 넓고 부자는 많은 법이어서 이런 결과가 그다지 이상해 보이진 않는다.
그런데 제24회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포브스》 부자 순위에 놀라운 인물이 톱10에 올랐다.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회장이 무려 세계 4위 부자로 선정된 것이다. 신 회장은 이듬해인 1989년에도 세계 5위 부자에 이름을 올렸다.
신격호 회장이 부자이긴 했지만, 당시 롯데는 글로벌기업이 아니었다. 국내에서도 유통과 제과에 의존하던 그룹이다. 이런 그룹의 총수가 어떻게 세계 4, 5위 부자가 됐을까? 이 미스터리를 이해하려면 플라자합의와 환율의 마술에 대해 알아야 한다.
플라자호텔에서 만난 미국과 일본
미국 뉴욕에는 플라자호텔이라는 카타르 기업 소유의 유명한 호텔이 있다. 이 호텔의 옛 주인이 미국의 부동산재벌이자 현재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다. 이 호텔은 영화 〈나 홀로 집에 2:뉴욕을 헤매다>의 촬영 장소로도 유명한데, 영화를 자세히 보면 당시 호텔 소유주였던 트럼프가 카메오로 등장한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1985년 9월 22일, 이 호텔에서 세계경제의 역사를 바꾼 유명한 회의가 열렸다. 미국, 영국, 프랑스, 서독, 일본 등 그때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5개 나라 재무장관이 이곳에 모였다.
하지만 말이 회의지 이건 사실상 미국의 ‘소집’이었다. 그 당시 최강대국이자 자유진영의 리더였던 미국이 “내 밑으로 잘사는 나라 네 곳, 내가 부르는 장소로 모여!”라며 나머지 나라를 자국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1970년대까지 화려한 성장을 거듭하던 미국 경제는 1980년대 들어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특히 일본과 서독 등 탄탄한 실력으로 무장한 제조업 강국이 자동차와 가전제품을 앞세워 미국 시장을 점령했다.
1981년 로널드 레이건(Ronald W. Reagan)이 집권한 이후 3년 동안 미국은 엄청난 무역적자를 경험했다. 그때 미국 경제가 얼마나 나빴는지, 미국은 돈을 빌려주는 채권국이 아니라 돈을 빌려 쓰는 채무국으로 전락했을 정도다.
미국은 엄청난 무역적자의 원인을 일본과 서독에 돌렸다. 특히 일본에 대한 미국의 반감은 대단했다. 그 당시 미국은 일본과의 무역에서 497억 달러(약 61조 원)를 손해 봤는데, 이는 전체 적자의 40%에 육박하는 수치였다.
레이건 정부는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일본을 포함한 4개국 재무장관을 플라자호텔에 불러 놓고 윽박질렀다. 특히 미국은 일본과 서독에 ‘환율을 강제로 내리라’고 다그쳤다.
환율이 부리는 마술
그렇다면 왜 미국은 환율을 문제 삼았을까? 환율이란 ‘자기 나라 돈과 다른 나라 돈의 교환 비율’을 뜻한다. 무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돈은 미국 화폐인 달러다. 무역할 때 많은 국가가 달러로 돈을 주고받는다.
물론 우리도 무역을 하려면 한국 돈인 ‘원’을 미국 돈으로 바꿔야 한다. 이때 1달러와 교환할 수 있는 원화가 얼마인지 표시한 것을 ‘원달러환율’이라고 부른다. 같은 맥락에서 ‘엔달러환율’은 미국 돈 1달러와 교환하는 데 필요한 엔화가 얼마인지 표시한 것이다.
요즘 원달러환율은 대략 1,200원이다. 이 말은 ‘미국 돈 1달러를 내면 우리나라 돈 1,200원을 준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미국 돈 1달러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돈 1,200원을 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제는 환율이 시시각각 변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환율 변화는 각 나라의 경제, 특히 무역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보자. 원달러환율이 1,200원이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800원으로 급격히 내려갔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일단 외국에서 물건을 수입하는 업자들은 만세를 부른다. 과거에는 1달러짜리 물건을 외국에서 수입하기 위해 1,200원이나 내야 했지만, 이제는 800원만 내도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수입업자들은 더 많은 물건을 수입할 여력이 생긴다.
반대로 수출업자들은 곡소리를 낸다. 예컨대 휴대전화를 미국에 수출하는 회사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회사는 미국에서 휴대전화를 1,000달러에 팔았다. 환율이 1,200원일 때 휴대전화 한 대를 팔면 회사는 우리돈으로 120만 원을 손에 쥔다.
그런데 환율이 800원으로 떨어지면? 예전과 다를 바 없이 열심히 팔았는데, 우리돈으로 바꿔 보니 손에 들어오는 금액이 120만 원에서 80만 원으로 줄어들었다. 환장할 노릇이다. 이래선 이익이 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휴대전화 가격을 1,200달러나 1,300달러쯤으로 높인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판매가 부진해진다. 1,000달러에 팔던 물건을 1,200달러로 가격을 높이면 소비자들이 좋아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환율이 하락하면 수입업자가 유리해지고 수출업자는 불리해진다. 국가 전체적으로 수입이 늘어나고 수출이 줄어든다. 일본과의 무역에서 엄청난 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이 “일본은 강제로 환율을 내려서 수입을 늘리고 수출을 줄여라!”라고 윽박지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플라자합의와 일본 경제의 몰락
일본은 세계 최강 군사 대국이던 미국의 압력에 굴복했고, 플라자합의 이후 2년 만에 엔달러환율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 사건으로 일본 경제는 일대 격변을 맞았다.
환율이 하락하면서 일본인들이 외국에서 쓰는 돈은 크게 늘어났다. 플라자합의 전까지만 해도 1달러를 받으려면 240엔이나 내야 했지만, 1987년에는 그 절반인 120엔만 내도 1달러를 얻게 됐기 때문이다.
이 시기 일본인들은 그야말로 온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흥청망청 돈을 썼다. 야스다화재해상보험이라는 일본 회사가 무려 3,990만 달러를 내고 빈센트 반고흐(Vincent van Gogh)의 명작 〈해바라기〉를 사들인 것도 이때다.
플라자합의 이전의 환율이라면 3,990만 달러는 약 96억 엔에 이르는 거금이었다. 하지만 플라자합의 이후 환율로 3,990만 달러는 약 48억 엔에 불과했다. 단지 환율이 조정됐을 뿐인데 ‘반값할인’으로 명화(名畵)를 살 기회를 얻은 것이다. 일본 3대 기업 미쓰비시가 미국을 상징하던 건물 록펠러센터를 인수한 것도 이 무렵(1989)이다.
1988년 신격호 회장이 세계 4위 부자에 오른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 당시 신 회장은 한국보다 일본에서 훨씬 크게 사업을 벌였고, 이에 따라 그의 재산은 대부분 일본 돈이었다.
이때 신 회장의 재산은 일본 돈으로 9,600억 엔 정도였는데, 이 돈은 플라자합의 이전 달러로 환산하면 약 40억 달러였다. 그런데 플라자합의 이후 환율이 바뀌면서 9,600억 엔의 가치가 약 80억 달러로 상승했다. 신 회장이 갑자기 돈을 많이 벌어 순위가 오른 것이 아니라, 환율이 조정되면서 재산이 갑절로 불어난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1987년 순위에서 일본인들이 상위권을 휩쓸었다. 그때 세계 1위 부자는 세이부철도그룹 회장 쓰쓰미 요시아키였고, 2위는 부동산재벌 모리 다이키치로였다.
환율의 강제적 조정으로 일본인들은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환율이 하락하면 수출 기업들이 심각한 손해를 입는다. 미국의 의도대로 일본의 수입은 큰 폭으로 증가했고, 수출은 부진에 빠졌다.
일본인들은 낮은 환율의 유혹에 빠져 외국에서 돈을 흥청망청 써 댔으며, 수출업체들의 실적은 곤두박질쳤다. 그 결과 일본 경제를 지탱하던 수출이 뿌리째 흔들렸다. 이 시점을 계기로 경제력 면에서 한때 미국과 자웅을 겨루던 일본은 그저 그런 선진국으로 전락했다.
플라자합의 이후 일본 경제는 장기 불황에 빠졌고, 그 불황은 지금까지 이어지는 중이다. 물론 지금 일본이 겪는 장기 불황은 그 탓만은 아니다. 하지만 1980년대 떠오르던 경제 강국 일본을 밟기 위해 미국이 강제로 환율을 조정한 플라자합의가, 일본 경제 추락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사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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