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ews.v.daum.net/v/20200806091857466미국 사회학자 래브넬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서 주장

(서울=연합뉴스) 추왕훈 기자 = 55세 백인 남성 도널드는 20년 넘게 금융 전문가로 일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일자리를 잃고는 단기 아르바이트 알선 서비스 '태스크래빗'의 노동 희망자(태스커)로 등록했다. 벼랑 끝으로 몰린 그에게 청소나 심부름을 해서 얻는 태스커 수입은 생명줄이나 다름없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태스크래빗으로부터 '제명'됐다는 메일을 받는다. 졸지에 생계 수단을 잃어버렸지만, 회사 측이 제시한 사유는 '프로답지 못한 행동'이라는 모호한 표현이 전부였다.

출장 요리사 파견 서비스 업체 키친서핑에 셰프로 등록한 54세 데이비드는 일을 마치고 현관에서 불룩한 백팩을 멘 채 한 발로 서서 장화를 신다가 접질려 넘어지는 바람에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산재 사고'에 해당하지만 '독립사업자'로 분류된 그는 치료 기간 수입을 상실한 것은 물론 치료비까지 스스로 부담해야 했다.

4명의 자녀를 둔 43세 브라이언은 일자리를 잃은 후 다른 직업을 구할 때까지 갖고 있던 고급 SUV로 돈을 벌 요량으로 우버의 고급차 서비스 '우버 블랙' 일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회사 측으로부터 실적부진에 따른 이용 정지 가능성에 대한 경고와 함께 저렴한 서비스인 '우버 X'일도 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문제는 우버가 '우버 블랙'과 '우버 X'의 요금 차이를 보전해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버에서 계속 일하려면 비싼 차를 운전해주고도 싼 요금을 받으라는 회사 측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우버 본사 사옥의 로고 [AFP 자료사진·재판매 및 DB 금지]

사회학자인 알렉산드리아 래브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교수가 쓴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원제 Hustle and Gig: Struggling and Surviving in the Sharing Economy·롤러코스터)에 소개된 플랫폼 기업 노동자들의 사연 가운데 일부다. 공유경제를 칭송하는 이들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일만 골라 하면서 무제한으로 돈을 버는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이라고 했지만, 정작 이 노동자들은 장시간 일하면서도 쥐꼬리만 한 돈을 받고 직업 안정성은 떨어지는 상황에 내몰린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물론 플랫폼 업체들은 이들이 노동자가 아니라 '독립된 사업자'라고 강변하며 법 규정도 상당 부분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저자는 "플랫폼 사업체에 종사하는 이들이 종업원이 아닌 것은 맞겠지만 이들이 하는 일은 분명한 노동"이라면서 "에어비앤비에서 집을 빌려주거나 키친서핑에서 셰프로 일하는 것이 재미있고 없고를 떠나 금전적 보상이 따르지 않는다면 누가 그 일을 하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러나 일반 노동자들과는 달리 단 한마디 사전 협의도 없이 일자리를 잃어버리고 업무 수행 중 몸을 다쳐도 자비로 치료해야 하며 회사 정책에 따른 손실을 순전히 떠안아야 하는 이들에게 노동자의 권익은 다른 세계의 일일 뿐이다. 저자는 공유경제는 착취가 횡행하던 시대로 노동자를 돌려보내는 퇴행경제라고 신랄히 비판한다.

책은 에어비앤비, 우버, 태스크래빗, 키친서핑 등 4개 서비스에서 일하는 80여명의 노동자와 심층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됐다. 그동안 경제학자나 경영학자들이 공유경제의 산업적 측면을 분석한 연구와 저서는 많았지만, 사회학자가 노동자들의 삶으로 깊숙이 들어가 공유경제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그러한 분석의 결과를 책으로 엮은 것은 처음이다.

저자는 공유경제의 퇴행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예로 우버가 은행과 제휴해 출시한 자동차 대출상품을 든다. 우버 기사들은 원칙적으로 자신이 소유한 차로 영업을 하는데 차가 없는 경우 우버가 알선한 대출로 자동차를 구입하고 기사 수입 가운데 일정액을 원리금으로 상환토록 한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 대금을 갚기까지는 회사 측에 예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미국이 식민지였던 시절부터 횡행하다 1917년 법으로 금지된 고용노예(indentured servitude)를 연상케 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특히 공유경제에 생계가 달린 사람들, 저자가 '분투자'라고 부르는 이들에게는 만만찮은 진입 비용이 문제가 된다. 태스크래빗이 최초의 피벗(pivot·정책 변경)을 통해 웹 기반에서 앱 기반으로 전환했을 때 스마트폰이 없거나 데이터 제공량이 많지 않은 요금제를 사용하는 노동자는 지극히 불리한 상황이 됐다. 물론 우버가 요구하는 자동차를 장만하거나 에어비앤비 사업을 위해 주택과 가재도구를 구매하는 데는 더 큰 비용이 든다. 이런 진입 비용과 함께 공유경제에 참여하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노력은 노동자들이 플랫폼 업체에 더욱 얽매이게 한다.

"우버에서 일하고 싶지만 휴대전화가 없어요" 뉴욕 유니언스퀘어 공원에 쭈그려 앉은 젊은이의 옆 종이에는 "우버이츠(우버 계열사) 배달원으로 고용됐습니다. 증거도 있습니다. 일하려면 앱을 이용해야 하는데 휴대전화가 없어서 아직 일을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휴대전화를 개통하기 위해 30달러를 모으고 있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라는 글이 쓰여 있다. 저자 촬영. [롤러코스터 제공·재판매 및 DB금지]

'시간이 날 때마다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공유경제의 장점도 부분적으로만 사실이다. 우버의 월수입 보장액을 받으려면 승차 요청 중 80% 이상을 수락해야 하고 보통은 매일 일정한 시간대에 일하거나 매주 일정한 시간을 일해야 한다. 태스크래빗의 태스커는 30분 이내에 의뢰에 응답하지 않으면 그 작업을 아예 못 받고 이런 일이 거듭되면 수락률이 최소 요구치인 85%로 떨어져 이용 정지를 당할 위험이 있다. 이런 응답 규정은 지하철로 이동하느라 휴대전화가 잘 터지지 않을 때는 물론 다른 의뢰를 받아 일하고 있을 때도 예외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사실상 다른 일을 하지 못하고 대기해야 하는 시간이 표준 노동시간의 두 배가 넘는 주당 84시간에 이른다. 물론 대기 시간을 보상해주는 수당은 없다. 프로필을 관리하고 잠재적 의뢰인의 메일에 답을 하고 앱에서 계속 '새로고침'을 누르는 것도 보수는 없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에어비앤비 임대인(호스트)인 27세 백인 남성 라이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