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고 직업 선택을 위한 십계명

1. 월급이 적은 쪽으로 가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선택하라.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선택하라. 4.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은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앞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6.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은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이 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도그마로부터 독립하라

http://www.hani.co.kr/arti/well/people/967504.html?_ns=r1


전성은(76) 거창고 이사장은 꺽다리다. 나이가 들면서 4㎝가 줄었다고 하지만, 180㎝니 여전히 장신이다. 그러나 그가 우뚝한 것은 키가 아니라 도그마의 우물에 갇히지 않아서다.

전 이사장을 16일 경남 거창군 거창읍 가지리 거창고 농장에서 만났다. 그는 3년 전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농장지기를 자청해 이곳에 왔다. 사람들은 그의 외로움을 걱정하지만 그는 공부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한다. 책상 위엔 성경 관련 영어 원서들이 수북하다. 2006년 거창고 교장직을 퇴임한 그는 거창고의 초석을 놓은 부친 전영창(1917~76)이 남긴 단행본 30권 분량의 설교와 강연 원고를 정리하고 성서를 번역하는 데 14년을 보냈다. 국제성서연합회 세계성경번역센터 한국 편집인인 그는 신약을 번역하고, 별세한 누님 전덕애의 뒤를 이어 구약을 번역했다. 그는 왜 오랜 세월을 아버지와 누님의 뒤치다꺼리로 보냈을까. 노무현 대통령 때 초대 교육혁신위원장을 맡아 한국 교육의 방향을 정한 ‘혁신의 아이콘’이 말이다. 일제 때 독립운동을 한 부친 전영창은 박정희 정권 때 거창고 학생들이 삼선개헌 반대 시위를 했을 당시, 주동 학생을 처벌하라는 당국의 요구를 거부해 교장 승인을 취소당했다. 공개 강연에선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며 유신 독재를 비판했다. 또 서울대 재학 당시 미모의 수재로 유명했던 누님 전덕애는 서울대 교수직도 거부하고 거창고에서 평생 영어 교사로 헌신했다. 중심이 아닌 변방에서 진정한 혁명을 시작한 전영창·전덕애는 갔지만, 전 이사장 속에 함께하고 있다. 그래서 중심의 골리앗과의 싸움은 여전히 계속된다. ‘코로나19 사태’라는 위기는 오히려 그에겐 기성 사고를 역전할 기회다. ‘요즘 아이들’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기성세대와는 다르다.
경남 거창군 거창읍 가지리 거창고농장을 걷고 있는 전성은 이사장. 사진 조현 기자
“요즘 아이들이 우리 때보다 훨씬 낫다. 실력만 나은 게 아니다. 도덕성도 더 낫다. 우리 때야 깡패 시대 아니었나. 연애편지 한 통만 써도 정학시키던 시대가 정상이냐. (과거와) 달라진 것을 잘못됐다고 보는 건 인류의 고질병이다. 4천년 전 수메르 점토판에도 ‘요즘 젊은것들은 타락했다’고 쓰여 있지 않은가.” 그는 샛별중·거창고를 운영하며 봄 소풍을 가거나 예술제를 열 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