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열린우리당 원내수석부대표 지낸 이종걸 민화협 의장
편집자주ㅣ해방 직후 탄생한 국가보안법은 우리 사회의 해묵은 적폐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국제사회에서도 국가보안법, 그중에서도 특히 7조를 폐지할 것을 촉구해왔다. 최근 국회의 과반 의석을 확보한 여당에서 국가보안법 7조 폐지 법안이 발의되고 시민사회도 이에 동력이 되고 있다. 인권존중과 나라다운 나라 건설을 표방한 문재인 정부가 이 숙원을 풀 수 있을지 짚어본다.
① 문재인 대통령의 숙원 ‘국가보안법 폐지’, 촛불정부서 이뤄질까
② ‘트위터부터 드라마까지’ 국가보안법 7조가 ‘불법’으로 보는 것들
③ 한나라당도 찬성했던 국가보안법 개정, 과거 실패 딛고 21대 국회서 이뤄질까
16년 전 겨울, 여의도는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을 두고 뜨겁게 달아올랐다.
2004년 12월 당시 수천 명의 국민들은 국회 앞 아스팔트에 자리를 펴고 앉아 “국가보안법 연내 폐지”를 주장하며 연일 농성을 벌였다. 국회 안에선 국가보안법을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민주당, 그리고 이를 반대한다는 한나라당이 맞붙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막판에 국가보안법을 개정하는 쪽으로 물밑협상을 벌이자, 민주노동당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장을 점거하며 반발하기도 했다.
이처럼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극한 대립을 이어가면서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은 결국 처리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 국가보안법을 단 한 글자도 고치지 못하고 해를 넘긴 것이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지금, 국가보안법은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 국민들의 일상을 감시하고 있다.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은 20일 서울 마포구 민화협 사무실에서 가진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그때를 떠올리며 “너무 참담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참여정부 때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원내수석부대표로서 여야 간 실무협상을 이끌던 그는 2005년 1월 1일 새벽 천정배 원내대표와 함께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개혁입법을 연내 처리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한나라당도 사실상 폐지에 가까운 국가보안법 개정에 찬성했다”
2004년 4월 15일 제17대 총선으로 열린우리당은 단독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국민들의 사회 개혁에 대한 열망도 그만큼 더욱 커졌다.
이에 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비롯한 개혁입법 논의가 본격화됐다. 이중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도하고 나선 건 이른바 ‘386’ 출신 의원들이었다. 여기에 임채정·장영달·한명숙·이호웅 의원 등 중진까지 대거 가세했다. 이들은 그해 7월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입법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공론화에 나섰다.
국가인권위원회는 1년여 간의 검토 끝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하면서 관련 논의에 힘을 실었다. 나아가 노무현 대통령이 MBC ‘시사매거진 2580’에 출연해 “국가보안법이라는 낡은 칼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는 말을 하면서 국가보안법 폐지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정부는 국가보안법 개폐 추진을 공식화했다.
게다가 총선을 기점으로 한나라당도 대북정책과 그에 직결된 국가보안법에 전향적인 입장을 내비치면서 국가보안법 폐지 논의는 국회에서도 탄력을 받는 듯했다. 한나라당에선 여전히 보수진영의 눈치를 보면서 국가보안법에 손대는 것을 꺼려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일부 개혁 성향의 의원들은 “수구냉전의 산물일 뿐”이라며 국가보안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실제 다수의 국가보안법 개정안이 한나라당에서도 나왔다.
하지만 그해 7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선출하면서 기류가 달라졌다. 보수 성향이 짙은 영남에 지지기반을 두고 있던 박근혜 대표가 총선 이후 ‘최대의 위기에 봉착한 당을 살리겠다’며 강성 발언을 쏟아내면서다. 특히 박 대표는 당의 정체성 논란 끝에 “대표직 등 모든 것을 걸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막겠다”고 선언했다.
이종걸 의장은 “4대 개혁법안 협상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었다”며 “우선 표결하기로 합의를 봐야 했다. 그런데 4대 개혁법안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이 국가보안법이었다”고 회상했다. 이 의장은 “한나라당에서는 4개의 법안 중에서 다른 건 양보할 테니까 국가보안법만큼은 열린우리당이 양보하라고 했다”며 “한나라당은 국가보안법을 최우선으로 지킬 태세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세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해 9월 유엔과 국제엠네스티 등 국제기구도 나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것을 권고할 정도였다.
이에 발맞춰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민주당은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을 공동으로 제출하기로 합의했다. 3당은 의견 차이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공통분모를 이끌어낸 것이다. 만약 3당이 힘을 합친다면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은 170표 이상의 과반 찬성으로 가뿐히 처리될 수 있었다. 한나라당이 반대할 명분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해 12월에 들어서면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협상도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국회 밖에선 4~5천 명의 국민들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고 이 의장은 전했다. 이 의장은 “우리 당 의원들도 찬반으로 나뉘었다”며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않으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는 분도 있었을 정도로 일부 의원들은 굉장히 강경했다”고 기억했다.
결국 한나라당도 여론에 등떠밀려 국가보안법 개정 협상에 나섰다. 열린우리당 원내수석부대표였던 이 의장의 당시 협상 파트너는 한나라당 남경필 원내수석부대표였다. 그는 보수정당 내에서 개혁적인 인물로 꼽혔다.
이 의장은 물밑협상을 할 때 남 원내수석이 국가보안법을 두고 상당히 전향적인 입장을 보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남 원내수석이 ‘국가보안법 이름만 남겨 놓으면 1조부터 다 삭제하더라도 받아들이겠다’고 한 적도 있었다”고 최근 토론회에서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그는 “형식적 폐지는 아니지만 내용상으로는 폐지에 가까운 개정을 한다는 것이었다”며 “형식적 개정, 실질적 폐지, 이렇게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형식적 폐지라는 건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며 “(그걸 하지 않는 대신) 내란죄라든지 반국가단체 주요 내용을 형법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다 없애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실효화 하는 내용으로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내는 것이었다”고 부연했다. 그는 “이름만 남고 실질적인 내용은 없어지는, 그 정도까지 구상하고 있었다”며 “그건 조문 작업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열린우리당은 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했을까
하지만 국회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국가보안법 폐지만큼은 절대 안 된다는 한나라당과 국가보안법을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민주노동당 사이에서 열린우리당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이 의장은 “정상적인 국회 절차로 법안 처리를 진행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며 결국 열린우리당 출신인 김원기 국회의장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고 밝혔다. 이 의장은 “그때 다들 국회의장을 따라다녔다. 국회의장 공관은 항상 전쟁터였다”고 회상했다.
‘동물국회’를 방지하는 일명 ‘국회선진화법’이 없던 시절이었다. 본회의장에서 몸싸움이 빈번할 때였다. 김 의장이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이든, 국가보안법 개정안이든 직권상정을 한다면 국회 본회의장은 그야말로 ‘전쟁터’가 될 게 불 보듯 뻔했다. 이 의장은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렸다.
“국회 경위들이 의장석을 점거하는 의원들을 끌어내거나 점거하지 못하도록 사전조치를 한다면, 김 의장이 의장석에 올라가서 직권상정하면 됐다. 그러면 표결까지도 막기 어려웠을 것이다. 의원들이 이쪽, 저쪽에서 한꺼번에 투표를 하면 소수 의원들이 이를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그저 의장이 의사봉을 두드리는 것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김 의장이 ‘직권상정을 하지 않겠다’고 버틴 것이었다. 이 의장은 “직권상정을 하지 않겠다는 얘기는,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장을 점거하고 있던 민주노동당까지도 설득하라는 것이었다”고 해석했다. 그는 “법사위에서 정상적으로 처리해 본회의로 올려 보내는 방식으로 한다면 한나라당도 ‘OK’ 하겠다는 생각이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이 의장은 “실질적인 내용까지 다 무효화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와있었고 그냥 법 이름만 남길 정도로 합의가 가능한 상황이었는데, 민주노동당과는 이를 합의할 수 있는 룸(공간)이 별로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그렇다고 보수정당에 함께 대항해온 민주노동당과의 ‘신의’를 깨뜨릴 수는 없었다고 이 의장은 털어놨다. “역사적인 무게감을 지니고 있는 국가보안법 폐지 또는 개정이라는 거대한 과제에 대해 우리 개혁진보 진영 내 입장이 정리가 참 안 돼 있더라. 그게 아쉬웠다.”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 폐지에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모호한 태도를 취했던 모습은 오히려 한나라당과 보수진영에 불필요한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의원도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민주당 사이의 분열을 한나라당이 잘 활용한 것”이라며 “형식적인 폐지만 아니면 모든 걸 수용하겠다는 협상안을 내놓으면서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과도한 순혈주의를 깬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장은 “한나라당은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 하나를 남기는 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며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상징성이 언젠가는 국가보안법을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는 불씨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고 짚었다.
이 의장은 “저도 과거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활동하면서 먹고 살던 일이 국가보안법과 싸우는 것이었다”며 “그런데 결국 또 과제를 남겨놔서 정말 참담했다. 내 손으로 이걸 폐지시킬 수 있었는데 못한 데 대해 분노도 일어났다”고 털어놨다.
이 의장은 직권상정을 끝내 거부한 김 의장에 대해서도 “국가보안법 하나만은 직권상정할 수 있지 않았을까. 속으로 야속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6년 19대 국회에서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내던 당시 여당이던 자유한국당이 밀어붙이던 테러방지법을 막기 위해 본회의 마지막 필리버스터(합법적 무제한 토론) 주자로 나섰던 것을 다시 떠올리기도 했다. 그는 “그때 테러방지법은 제2의 국가보안법이라고 생각했다. 엄청난 인권침해가 일어날 우려가 있었다”며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는지, (자유한국당 출신) 정의화 국회의장이 요건도 안 되는데 직권상정하더라”고 토로했다.

21대 국회서 ‘국가보안법 7조부터 폐지’ 추진되나
이처럼 국가보안법 폐지를 시도한 지 16년이 지났지만 국가보안법은 아직 단 한 글자도 고쳐지지 않은 채 남아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해친다는 지적이 이후에도 국내외에서 계속 나왔지만 왔지만, 정부와 국회는 그에 어떤 응답도 하지 않았다.
이 의장은 “국가보안법에 손을 대야 한다는 것만큼은 다 동의하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일자일획도 고치지 못했다”며 “그런데 16년이 지나는 동안 (국회에선) 아무도 국가보안법에 대해 얘기를 하지 않더라. 국가보안법이 무효 선언을 당한 이후에도, 지금까지 자기검열의 수단으로서 살아 움직이고 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그나마 최근 제7조 찬양·고무죄를 폐지하는 내용의 국가보안법 개정안(더불어민주당 이규민 의원 대표발의)이 발의되면서 시민사회단체가 반색하고 있다. 올해 4.15 총선을 거쳐 민주당이 여당으로서 열린우리당 때보다도 더 많은 과반 의석을 확보한 상태라 법안을 처리할 동력도 충분하다.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도 지난 18일 민중의소리의 질문에 “국가보안법 7조 폐지는 우리 당의 기본 입장”이라고 밝힌 바 있다. 16년 전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를 논의하던 것과는 다르지만, 현실에서 가장 많이 적용되고 있는 7조를 당장 폐지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의장은 “민주당에서는 ‘우리가 집권하면 국가보안법이 적용되는 사건은 없을 것이다, 이미 사문화되지 않았느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며 “하지만 이건 잘못된 생각이다. 국가보안법 존속 자체가 많은 지식인들에게 자기검열의 수단이 되고 있지 않나”라고 꼬집었다.
이 의장은 “최근에도 교육 관련 활동을 하던 선생님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유죄 선고를 받고 싸우고 계신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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