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ews.v.daum.net/v/20120902213810962

[아시아의 진보 사상가들](1) '케랄라 모델 창안자' E.M.S. 남부디리파드

폭력 혁명 없이 '품격 있는 발전' 이룬 인도의 공산주의자

인도 출신 학자인 아마티아 센은 '성장이 최우선이 아닌 품격 있는 발전'이라는 모델을 제시해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그 모델은 인도 케랄라 주의 사례를 연구한 것이다. 케랄라 주의 소득수준은 가난한 나라인 인도의 전국 평균치에도 못 미친다. 그러나 가난에 가장 민감한 지표인 영아사망률은 가장 낮으며 평균수명도 다른 주보다 훨씬 높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문맹자가 있는 인도지만 케랄라에는 문맹자가 거의 없다. 이런 성과는 주민들의 참여와 지지라는 민주적 방식을 통해 부와 권력의 탈중앙집권을 추구한 결과다. 그러나 대중들과 함께 케랄라 모델을 만든 이가 인도의 공산주의자 E.M.S. 남부디리파드(1909~1998·사진)라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케랄라 개발 모델을 연구하는 거의 대부분의 책들에는 남부디리파드의 저서들이 광범위하게 인용된다. 좌파에서 우파까지 다양한 연구자들이 그의 글을 인용하는 것은 남부디리파드가 케랄라 모델의 설계자이자 실현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남부디리파드는 '불평등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하는 아마티아 센과 같은 학자가 아니라 '불평등을 타파'하기 위해 '실천'했던 사상가이다.

그는 1909년 케랄라의 최고위 브라만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가문을 지배하는 카스트 차별주의 및 보수주의와 맞서 싸웠다. 그의 정치적 출발은 '청년 간디주의자'로 1931년 대학을 떠나 간디가 이끄는 사티아그라하운동에 참가하여 투옥되기도 했다. 그러나 곧 국민회의와 결별하고 1941년 인도공산당(CPI) 중앙위원, 1950년 인도공산당 정치국원에 선출되었다. 말라얄람어(Malayalam語)를 제1언어로 쓰는 권역을 하나의 주로 재편하자는 '아이키아 케랄라(Aikya Kerala)' 운동에도 주력해 1956년 11월 케랄라 주 탄생으로 결실을 보았는데 이는 탈중앙화의 효시였다. 1957년 인도공산당을 이끌고 신생 케랄라 주의 최초 선거에서 승리해 초대 주 총리로 선출되었다. 세계 최초로 선거에 의해 공산당이 집권한 사례이자, 인도 독립 후 처음으로 국민회의가 아닌 당이 집권한 사례였다. 이를 통해 '공산주의 = 폭력 혁명'이라는 도식을 무너뜨렸다.

남부디리파드는 그의 실천에 근거해 광범위한 영역의 글들을 남겼다. < 마하트마 간디, 불편한 진실 > 은 '공산주의 = 폭력 혁명', '간디주의 = 비폭력'이라는 통념이 허구임을 밝힌다. 간디의 '마을'은 최고위 카스트 원로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며 인간의 배설물을 치우도록 태어난 불가촉천민들은 대대로 그 일을 해야만 하는 봉건 공동체로 토지 개혁에 적대적이다. 지주-소작이라는 토대 위에 있는 간디의 '마을'은 지주라는 계급을 없애버리는 토지개혁이 진행되면 붕괴되기 때문이다. 남부디리파드는 90세에 유언으로 적은 < 간디 암살의 정치학 > 에서 간디의 유산을 잊지 말 것을 당부할 정도로 평생 간디의 인격을 닮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는 간디의 봉건적인 정치사상과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 케랄라에서는 무슨 일들이 있어났는가? > (1966), < 케랄라 사회와 정치 > (1984) 등은 케랄라 내에서의 계획경제 구현과정을 적은 책들이다. 케랄라의 개혁은 기득권층의 반발에 직면했고 공산당은 대중조직들과 함께 계획경제 모델의 확립과 대중의 참여 확산을 통해 이 문제를 풀어나갔다. < 인도 사회주의 형태의 정치학과 경제학 > (1967), < 역사, 사회 그리고 토지관계 > (2010) 등은 인도 경제가 소련의 지원을 받으며 사회주의식 계획경제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국가자본주의 계획경제에 불과하다고 보고 철저하게 비판한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토지개혁을 중심으로 '품격 있는 발전'을 추구하는 대안적 계획경제를 제시한다. 또 공황을 막는데 한계를 보이는 케인스주의와 인도 마오이스트인 낙살리즘의 이론과 실천도 비판한다. < 인도의 자유를 향한 투쟁의 역사 > (1986), < 네루 그 이념과 실천 > (1988)은 인도 지배계급의 정치적 성장과정을 분석, 비판하고 대안의 정치를 모색한다.

남부디리파드 저술의 특징은 새로운 용어들로 채워진 최신 이론을 고안해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이론이라고 내놓는 방식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자로서 현실을 분석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그는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않으면서 자본주의 내에서 가능한 범위의 개혁/풀뿌리 민주주의의 모범 사례를 추구했다. 그 과정에서 그가 부딪혔던 문제인 '진보정당'인 공산당과 대중이 어떻게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해 나아갔는지를 기록한 글들은 우리 사회에도 많은 영감을 줄 것이다. 그가 죽었을 때 인도공산당의 총서기 A. B. 바단은 추모사에서 사상가로서의 남부디리파드를 정확하게 규정했다. "남부디리파드의 의견에 찬성할 수도 있고 반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도 남부디리파드가 제기한 문제에서 피해갈 수는 없다."

■ 연재를 시작하며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진보를 유럽의 전유물로 생각하고, 사상가 하면 대학교수처럼 지적 활동을 전업으로 하는 전문가를 떠올린다. 대중 매체에 등장하는 진보사상가도 거의 서구의 전문적 지식인에 집중된다. 비서구 사회에는 진보도 없고 지식인도 없기 때문일까? 경향신문과 세미나네트워크 새움의 이번 공동기획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아시아의 진보적 사상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역사적으로 근대 이후 줄곧 가해자의 입장이었던 서구와 식민지, 반식민지 상태에서 고통받던 아시아에서 진보사상가의 모습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서구에서는 2차 대전이나 늦어도 68혁명 이후로 대규모 저항운동은 거의 사라진다. 진보 담론이 실천과 괴리된 이론 위주로 존재하는 이유다. 반면에 제국주의 침략의 피해자였던 주변부의 진보 사상가들은 스스로가 저항 운동의 주역이거나 실천적 운동들과 직접적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기획에서 소개할 사상가는 E.M.S. 남부디리파드(인도), 차르 마줌다르(인도), 왕후이(중국), 프람무댜 아난다 투르(인도네시아), 우노 학파(일본), 샤나나 구스망(동티모르), 프라찬다(네팔), 호세 마리아 시손(필리핀) 등이다.

< 한형식 | 세미나네트워크 새움 회원 >

< 정호영 | 당인리대안정책발전소 연구위원·인도 자다푸르대학 사회학 박사과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