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ews.v.daum.net/v/20201206211542737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은 정보인권과 더불어 걸림돌 판결 후보에 가장 많은 이름을 올린 분야이다. 이 가운데 옛 통합진보당 행사에서 민중가요인 ‘혁명동지가’를 부른 행위가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에 해당한다며 안소희 전 파주시의원과 홍성규 전 진보당 대변인 등에게 징역형을 확정한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의 판결이 대표로 선정됐다. 이 판결은 최악의 걸림돌 판결 후보로까지 올랐으나 선정 과정에서 “2020년에 국가보안법 판결을 걸림돌 판결로 선정하는 것 자체가 비참하다”는 의견과 “올해의 화석 판결로 선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경향신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과 ‘평등과 연대로! 인권운동더하기’, 경향신문은 공동으로 ‘2020년 디딤돌·걸림돌 판결 선정위원회’를 열고 인권과 사법정의를 증진시키거나 저해시키는 등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된 판결 21개를 선정했다. 2019년 11월1일부터 2020년 10월3일까지 각급 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선고된 판결과 결정이 대상이다.
■디딤돌 판결
기초생활급여 조건 채우려 무리하게 일하다 사망…국가가 배상해야
올해 최고의 디딤돌 판결은 기초생활보장급여를 받기 위해 무리하게 일을 하다 사망한 조건부 수급자의 유족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다. 판결은 근로활동을 강제하는 현행 복지제도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공론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기 수원에 살던 버스 운전기사 최모씨는 2005년 심장 대동맥을 인공혈관으로 치환하는 수술을 받고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어 기초생활보장급여 수급자가 됐다. 2013년 11월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근로능력이 있다’는 판정을 받고 아파트 지하주차장 청소 일을 시작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조건부 수급자는 자활근로에 참여해야만 수급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최씨는 일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부종과 쇼크로 쓰러져 2014년 8월 사망했다. 최씨 유족은 수원시와 국민연금공단이 최씨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며 3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 소송은 영국의 복지제도 문제점을 제기한 켄 로치 감독의 영화 제목을 따 한국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 소송으로 불렸다.
청소년 성매매 주모자에 18년형성관계 유도 거짓말 ‘위계’ 인정 등
성폭력·성매매 피해 폭넓게 해석
수원지법 민사1단독 강민성 판사는 지난해 10월 수원시와 국민연금공단은 최씨 유족에게 1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강 판사는 “공단이 (서류만 보고 최씨의) 근로능력을 평가한 것은 위법하다”고 했다. 2심 재판부도 “최씨는 조건부 수급자가 돼 일을 하면서 질환이 자연적인 속도 이상으로 악화돼 사망에 이르렀다”고 했다. 디딤돌·걸림돌 판결 선정위원회는 “수급자에 대한 잘못된 근로능력 평가의 위법성을 확인한 첫 판결”이라며 “빈곤층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조건부 수급제도의 문제점을 공론화했다”고 밝혔다.
디딤돌 판결에는 성폭력과 성매매 피해를 폭넓게 인정한 판결 3개가 포함됐다. ‘자발적 성매매’ ‘위력’ 위계’ 등의 기존 관념을 변경하거나 확장한 판결들이다. 울산지법 형사11부(재판장 박주영)는 지난 10월 가출 청소년들을 협박해 성매매를 시킨 주모자에게 징역 18년형을 선고한 것을 비롯해 공범 11명에게도 전원 징역형을 선고했다. 피고인들은 “피해자들이 성매매에 동의했다”고 주장했지만 박 재판장은 117쪽 분량의 판결문에서 “성매매는 비가시적 권력에 의한 폭력”으로 규정하면서 “아동·청소년의 경우 자발적 성매매란 관념은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 판결은 온라인 채팅에서 만난 상대에게 마음의 문을 쉽게 여는 ‘디지털 원주민’ 세대의 특성과 청소년 성매매의 특수성을 깊이 있게 이해한 판결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스토킹을 당하던 16세 여성을 채팅 앱에서 만나 스토커로부터 도와주겠다고 속여 사귄 후 성관계한 혐의로 법정에 선 36세 남성의 상고심에서 ‘위계에 의한 간음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성관계 자체를 속이는 경우만 위계로 인정한 기존 대법원 판례에서 나아가 성관계로 이끄는 과정에서 거짓말을 해 아동·청소년이 성관계에 동의하게 만들었다면 이를 위계로 인정할 수 있다며 해석을 바꾼 것이다. ‘위계’의 의미를 보다 넓게 해석해 아동·청소년 성폭력 처벌의 범위가 확대되는 계기로 평가됐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9월 성매매 알선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당한 태국 여성을 성매매 피해자로 인정했다. 헌재는 이주여성의 언어적·경제적·사회적·심리적 취약성을 고려하여, 성매매에 이르는 과정에 직접적인 협박이나 적극적인 거부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위력에 의한 성매매 피해자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11대 디딤돌 판결에는 선정되지 못했지만 성폭력·성매매 관련 판결은 후보작에 대거 포함됐다. 정치인의 잇따른 성폭력이나 텔레그램 성착취에 대한 사회적 분노와 양형에 대한 문제제기가 사법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018년에는 전직 충남지사 안희정씨의 성폭력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이 걸림돌 판결에 포함됐다.
경제·노동 분야에서는 현대중공업의 하도급 업체에 물품 대금을 주지 않고 납품단가를 깎은 혐의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해 총 8억3500만원을 피해 업체에 지급하도록 한 울산지법 민사12부(재판장 김용두)의 판결이 선정됐다. 기업 갑질에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된 첫 판결이다.
전직 대통령 이명박·박근혜씨가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고 인정한 판결도 디딤돌 판결로 선정됐다. 삼성이 이씨의 다스 소송비를 대납하고 최서원씨(개명 전 최순실)의 딸 정유라씨에게 말을 사준 것이 뇌물로 인정된 것이다. 선정위원회는 “재벌들의 권력자에 대한 뇌물제공 범죄가 정경유착의 범죄인지, 재벌들이 겁박을 당해 끌려간 범죄인지 그 성격을 명확하게 한 분기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선정위원회는 해마다 10대 디딤돌 판결을 선정해왔지만 올해는 중요한 판결이 많아 11개를 선정했다.
■걸림돌 판결
“동성애 하면 에이즈” 발언자, ‘가짜뉴스 유포자’로 보도한 건 ‘낙인’
올해 최악의 걸림돌 판결로 “동성애 하면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에 걸린다”는 등 공공연하게 혐오표현을 한 사람을 가짜뉴스 유포자로 표현한 언론사에 정정보도와 손해배상을 하게 한 법원 판결이 선정됐다. 재판부가 혐오표현의 의미와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았으며 혐오표현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고 위축시킬 위험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4부(재판장 김병철)는 지난 1월 인터넷 언론 뉴스엔조이가 김지연 약사(한국보건정책연구원장), 유튜브 채널 khTV, 비법인사단 GMW연합을 ‘가짜뉴스 유포자’로 보도해 이들의 인격권을 침해했다며 각각 1000만원씩 총 3000만원을 배상하고 관련 보도를 삭제하라고 판결했다. 이들은 집회와 강연, 유튜브 방송 등에서 동성애가 에이즈의 원인이므로 차별금지법 통과를 막아야 한다는 발언을 해왔다. 재판부는 동성애와 에이즈 발병 사이의 상관관계가 없으며 뉴스엔조이의 보도는 공공의 이해에 관한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가짜뉴스 유포자로 지목된 자’와 같은 공격적인 표현은 사회의 올바른 여론 형성과 공개토론에 기여하는 바가 없고 원고들을 낙인찍는다”고 했다.
DNA자료 삭제 요구 권한 불인정47억건 의료정보 유출 “무죄” 등
법원 ‘개인정보=권리’ 인지 못해
선정위원회는 “재판부가 혐오표현을 단순히 부정적인 의견 정도로만 인식했다”며 “역설적으로 혐오표현을 보호해 낙인과 차별을 강화하고 성소수자들을 공론장에서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헌법재판소가 혐오와 차별표현을 금지한 서울학생인권조례 일부 조항을 합헌 결정 내린 것과 대조적”이라고 선정위원회는 평했다.
10대 걸림돌 판결에는 개인정보 관련 판결이 2개 포함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유환우)는 공장점거 시위로 형사처벌받은 노동자 A씨가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의견진술 등 절차 없이 확보한 자신의 DNA 정보를 삭제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며 대검찰청을 상대로 낸 소송을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미의 결정으로, 재판부는 조리상 A씨가 자신의 DNA 정보 삭제를 요구할 권한이 없다고 봤다. 조리상 권리는 법규상의 권리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회통념상, 경험칙상으로 이해된다. 선정위원회는 “DNA 신원정보는 민감정보에 해당한다”며 “민감정보에 대해서는 헌법상의 자기결정권이 보다 적극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데, 해당 판결은 형식적으로 당사자에게 조리상 신청권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모든 영역에서 보장되어야 할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의 기본권성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헌재는 2018년 범죄 수사나 예방 등을 위해 구속 피의자나 수형인 등의 DNA 감식시료 채취 영장을 발부할 때, 채취 대상자의 의견진술이나 불복 절차를 두지 않은 DNA신원확인정보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했다.
47억건의 의료정보를 유출한 한국IMS헬스 임직원들에게 고의성이 없었다며 무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이순형)의 판결도 걸림돌 판결에 포함됐다. 한국IMS헬스는 2011년부터 2014년까지 국민의 88%인 4399만명의 의료정보 47억건을 약 20억원에 사들여 이를 미국 IMS헬스 본사에 보냈다. IMS헬스는 이를 재가공해 국내 제약회사에 약 100억원에 되팔았다. 주민등록번호, 처방내역, 질병 이름, 약값 등이 포함된 의료정보였다. IMS헬스 등은 암호화 과정을 거쳐 전송했다고 주장하나 복호화(암호를 푸는 과정)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정위원회는 “(이 판결로) 무분별한 영리목적 개인정보 활용이 무한정 허용될 우려가 있다”고 평했다. 지난해 가명정보의 거래와 활용을 가능하도록 하는 ‘데이터3법’이 통과됐다. 올해 코로나19 방역 과정에서 개인정보 수집에 대한 인권침해 논란도 벌어졌다. 조수진 변호사(민변 사무총장)는 “개인정보에 대한 이슈는 불거져 가는데 사법부가 아직까지 개인정보가 하나의 권리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은 정보인권과 더불어 걸림돌 판결 후보에 가장 많은 이름을 올린 분야이다. 이 가운데 옛 통합진보당 행사에서 민중가요인 ‘혁명동지가’를 부른 행위가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에 해당한다며 안소희 전 파주시의원과 홍성규 전 진보당 대변인 등에게 징역형을 확정한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의 판결이 대표로 선정됐다. 이 판결은 최악의 걸림돌 판결 후보로까지 올랐으나 선정 과정에서 “2020년에 국가보안법 판결을 걸림돌 판결로 선정하는 것 자체가 비참하다”는 의견과 “올해의 화석 판결로 선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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