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을 도운 길앞잡이들이 바로 조선농민들이였다. 일본군은 지나가는 마을마다 보릿쌀을 나누어 주었다. 그동안 양반+아전+향리들에게 가렴주구만 당했던 조선 농민들은 일본군이 나누어주는 보릿쌀을 받고 일본군을 대환영했고 일본군 첨병과 간첩으로 활발히 활동 하였다. 조선에선 이들을 ‘순왜’ 라고 불렀다.
일본군이 한양으로 진격해 오자, 궁궐에 있던 관노비들이 궁궐에 불을 지르고 한양성문을 열어 일본군을 반겼다. 한양 공격대 사령관이였던 ‘와키자카 야스하루’ 는 성문을 열어준 조선 관노비들에게 은화 10냥씩(현재 가치 7000만원) 상금을 내린다, 그런데 그는 추격대를 만들어 의주로 도망치는 선조를 추격하지 않았다는게 의문이 남는다.
일본군에 협력했던 수천명의 조선농민들이 일본군을 따라 일본(가고시마현)으로 건너간다. 일본 다이묘(영주)들은 조선인을 고려촌(고라이 무라)에서 거주하게 했으며 농사지을 땅과 집을 주었다. 이후 조선 농민들은 일본에 영구 정착한다.
조선은 유교를 숭배하고 불교를 억압하였다. 조선시대 중들은 천민계급이였고 백정과 동급 취급을 받았다. 조정은 중들에게 천민계급을 없애줄테니까 의병활동을 해달라고 부탁했고 중들이 일본육군과 전쟁을 한것이다. 이중 유명한 이가 바로 사명대사다. 사명대사도 조선시대에는 천민계급으로 인간취급도 못받고 개백정들이랑 동급 대우를 받았다.
소설.. - dc App
글 쓴 거 보니깐 항왜도 대해서도 잘 알 거 같은데 항왜는 왜 뺐냐? 조선에 항복한 항왜가 만명이었다. 임진왜란때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별로 안 좋아하는 반토요토미 히데요시 성향의 왜군도 많았고 이들은 다 조선 의병장이나 관군에 항복했다. 처음에는 항왜를 죽였는데 나중에 그 숫자가 많아지고 쓸모를 인정받게 돼어서 항복하는 왜군이 있으면 조선에서 받아주었음
공식적으로 드러난 것만 만명이지, 실제는 훨씬 더 많았을 것임. 이들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군대가 일본으로 철수하자, 그냥 조선에 정착해서 조선여자랑 결혼하고 애도 낳고 살았고,, 병자호란 때 활약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