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으로 잡혀간 포로들 중에는 조선에 돌아오기 싫어해 일본에 정착하며 살고싶어 한 사람들도 많았다.
실제로 고향을 그리워한 사람도 있었지만 반대로 돌아가길 거부한 사람들도 있어서, 조선 통신사들의 기록을 보면 쇄환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현지 정착 포로들을 보며 통신사들이 분개하거나 어이없게 생각한 경우도 많이 보인다.
그 이유로는 귀환 포로들 신세가 고국으로 돌아갈 때 비참해 졌기 때문이다. 연려실기술 17권에 보면
1605년에 (사명대사) 승려 유정이 데리고 온 귀환 포로 3천 명은 통제사 이경준이 맡았고 해군 선장들에게 일임했는데
선장들이 출생한 곳을 물어도 어릴 때 포로가 되어서 본계를 자세히 알지 못하면 모두 자기의 종이라 칭하고, 아름다운 여자는 그 남편을 묶어서 바다에 던지고 마음대로 자기의 소유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 후에 강훙중이 포로 146명을 데려왔지만 부둣가에 방치되어 마찬가지 대접을 받았다.
이런 추태가 소문으로 퍼지자 이문창이란 조선인이 본국으로 돌아가봐야 좋을게 없다는 말을 퍼트려 더욱더 송환은 어려워지게 되었다.
그 당시 일본에 끌러왔던 조선인 포로들은 일본에서 농노로 정착했던 부류가 많은데 고국으로 돌아가면 더 비참한 신세인 노비가 되니 고국말도 잊은지 오래된 상황에서 가고 싶은 생각이 없던 것은 당연한 생각이기도 했다.
그래도 돌아가려는 포로들은 일본에서 경제적으로 고생하고 있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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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포로 중 기술자만 조선 돌아오기 싫어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큐슈에 조선 도공들이 정착한 마을 가서 조선통신사가 조선으로 가자고 하니깐 아무도 안 갈라고 함. 오히려 도자기 만드는 재료 흙인가 이런 거 구하러 집에 없었음.그리고 조선 도공들은 큐슈쪽은 일본인들로부터 전문가로서 존경받았데,,, 큐슈 번주도 조선 도공들한테 잘 해 주었고, 조선 도공들은 조선에 가면 기술직이라서 천직으로 멸시받는데 일본 큐슈에서는 대접 받고.., 또 도자기 재료도 많아서 큐슈에서 잘 먹고 잘 살았음. 요즘 시대에 이르러 일본 대표 도자기 이름이 또 기억이 안 나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도자기의 뿌리는 임진왜란 때 끌려간 도공들의 노하우를 받아들어서 지금 성공하게 된 것임... 일본 다이묘들은 조선 도공들의 도자기를 모방한 일본인이 만든 도자기를 모두 부셔버렸데
읽었어, 내가 알고 있는 바하고 좀 틀리네.. 임진왜란 때 일본넘들 토기(유약 안 바르고 그냥 흙을 구은 그릇)사용했어.. 흙으로 뽄 뜨고 유약바르고 1000도도 넘는 가마에 몇일 구워서 만드는 그런 기술 같은 게 일본에는 전무했어
조선 출신 도공이 만든 도자기만 인정하고 그 외 일본인이 흉내낸 도자기를 엄정하게 처벌했다고 하더라... 그럴 수 밖에 없는데 조선 도공들이 도자기 기술로 일본에서 도자기 만들던 시대에 일본은 귀족들도 흙구어서 만든 토기(흙그릇)를 사용했었음. 일본에 도자기는 큰 영향력을 끼쳤음.. 도자기만 그런 게 아닌 인쇄술도 일본이 조선왕조부터 후진적이었다더라.. 하튼 임진왜란은 전쟁은 피했지만 일본인들은 조선에서 탐나는 것은 전부 다 뺏어갔다
전쟁은 피했지만===>전쟁은 패배했지만
심수관인가 조선 도공 출신이 변호사되어서 도쿄에서 활동했는데 도저히 자신의 뿌리를 숨길 이유도 없었지만 어떻게든지 그걸 알자 심수관씨를 왕따 시켜서 제발로 큐슈 고향으로 돌아가서 도자기나 만들어라고 했데
심수관씨가 조선 도공 후손이래
이탈리아에 가면 성씨가 코리아라는 마을이 있데... 학자들의 추측으로는 임진왜란 때 일본이 잡은 조선인 포로들을 노예로 팔아먹기도 했는데 그 때 이탈리아로 팔려서온 후손들이 지금의 이탈리아에 코리아라는 성씨를 가진 마을이 있게 된 거 아닐까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