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vop.co.kr/A00001574784.html

[인터뷰] “이재용 사면·가석방, 국가 경제 비효율 초래”

이창민 경제개혁연대 부소장 “삼성은 총수 개인 아닌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글로벌 기업”


발행2021-06-08 20:48:40 수정2021-06-08 20:48:40
이창민 경제개혁연대 부소장(한양대 교수)ⓒ기타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가석방 요구에 대해 이창민 경제개혁연대 부소장(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은 “경제 운용의 대표적 무형자산인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7일 비판했다.

이 부회장 사면·가석방이 오히려 한국 경제를 훼손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횡령·배임 등 총수의 사익추구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업의 비효율에 대해 면죄부가 계속되면 한국의 규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줘 ‘자본시장 투자 감소-주가 하락-자본조달 비용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삼성전자가 발표한 미국 투자 결정을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은 이미 “총수 개인이 아닌 체계적 의사결정으로 굴러가는 글로벌 거대 기업”이며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삼성에 해줘야 할 것은 총수의 사면이 아니라, 정부가 얼마 전 발표한 K-반도체 전략의 차질 없는 추진”이라는 것이 이 교수의 생각이다.

삼성은 개인 아닌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글로벌 기업
근거 없는 사면·가석방, 경제 비효율 초래

이 교수는 이 부회장이 수감된 탓에 삼성전자가 중대한 투자 결정을 못 하고 경쟁력을 잃는 일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삼성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재벌 총수가 수감되든 건강상의 이유로든 부재한 경우가 제법 있었다”며 “총수 부재로 기업가치가 훼손되거나 주가가 급락한 사례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삼성 측은 이 부회장 구속으로 장기적인 투자 결정이 어렵다고 하는데, 삼성전자는 총수 개인이 아닌 체계적인 의사결정 과정으로 굴러가는 글로벌 거대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 사면·가석방 주장은 기업과 총수를 구분하지 않는 그릇된 인식에 기반한다는 게 이 교수 설명이다.

이 교수는 최근 삼성전자가 미국에 170억달러(약 19조억원) 규모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투자를 밝힌 점을 언급했다. 그는 삼성전자의 미국 투자 발표에 대해 “집단적 의사결정의 결과”라며 “삼성전자가 총수 부재 시에도 시스템에 의해 운영된다는 명확한 증거”라고 말했다.

대규모 미국 현지 투자를 논의하는 과정에는 다각적이고 광범위한 자료 검토와 청와대·백악관과의 실무진 협의가 수반되는데, 이 부회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게 이 교수 설명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이사회와 전문경영인(CEO) 중심의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해놓고 있다. 삼성전자가 최근 내놓은 지배구조 보고서를 보면, 이사회 의결사항으로 ‘국내외 공장 설치’를 명시하고 있다. 이사회에는 반도체(DS·Device Solutions), 가전(CE·Consumer Electronics), 스마트폰·통신(IM·IT&Mobile Communications) 부문장이 사내이사로 참여한다.

보고서는 “IT 산업은 의사결정이 전략적으로 신속하게 이뤄져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며 “각 사업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전문성을 갖춘 이사가 필요하므로, 각 사업 부문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시키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사회 내에는 사업부 최고경영진이 주관하는 경영위원회를 두고 경영상 주요 사안 결정을 위임한다. 주요 3대 부문장과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 사장, 경영지원실장 사장 등 5명으로 구성되며, 연간·중장기 전략 수립, 사업계획 조정, 기술 제휴, 공급 계약 등 20개 주요 사안을 관할한다. 경영위원회는 이 부회장이 구속된 지난 1월 이후 현재까지 메모리·파운드리 투자, 연구 인프라 투자, 해외법인 설립 등 10여건의 주요 안건을 결의했다.

이사회에 참여하지 않는 미등기 임원으로서 이 부회장 역할을 묻자 이 교수는 “지금은 카리스마 있는 1세대 창업주가 전권을 쥐고 기업을 경영하는 시대가 아니다”라며 “일각에서는 ‘나무가 아닌 숲을 본다’는 표현을 쓰는데, 이 부회장을 비롯한 3·4세대 총수에 적용되는 얘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실무 직원부터 임원까지 30여년 경험을 쌓은 백전노장 전문경영인보다 이 부회장 시야가 무턱대고 넓다는 건 편향에 지나지 않는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총수 역할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삼성이 친분을 자랑하는 스웨덴 발렌베리그룹은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 가운데, 가문 인사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재단 운영과 외교적인 측면에서 역할을 한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근거 없는 이 부회장 사면·가석방이 국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경고했다. 그는 “재계는 의사결정 마지막 단계에서 총수 재가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도장 찍어주는 일 때문에 중대한 기업 범죄자를 풀어주면 한국 경제 미래에 안 좋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부회장이 유죄 선고를 받은 횡령·배임 등 총수의 사익추구 과정에서 기업의 비효율이 발생한다”며 “일탈 행위에 대한 면죄부가 계속되면 총수 범죄가 지속되는 한편, 기업의 투자 효율성이 저해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한국의 규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신호는 불신을 초래해 ‘자본시장 투자 감소-주가 하락-자본조달 비용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는다”며 “경제가 잘 굴러가기 위해 필요한 대표적 무형자산인 사회적 자본, 즉 신뢰를 무너뜨린다”고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월 18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1.01.18ⓒ김철수 기자

삼성전자 전문경영인의 ‘자기 부정’, 비상식적
이재용 사면·가석방 통한 삼성전자 경쟁력 제고는 신화에 기반한 허상

삼성전자 전문경영인의 ‘자기 부정’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이 교수는 “책임과 권한을 부여받은 전문경영인이 총수 부재로 경영이 힘들다고 말하는 걸 보면 창피할 정도”라며 “마이크로소프트 전문경영인이 빌 게이츠 재가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한다고 하면 국제적 망신이지 않겠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