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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질문을 바꿔 보았다. 당신은 기관사가 아니라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구경꾼이다. 마침 당신 앞에는 덩치 큰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을 선로에 떠밀면 기차를 멈출 수가 있고 인부 5명을 살릴 수가 있다. 대신 그 덩치 큰 사람은 죽게 된다. 당신이라면 덩치 큰 사람을 밀겠는가?
보행자 우선 말하면서 차 구입은 꺼려
이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앞선 질문과 달리 고민에 빠진다. 무슨 차이일까? 스위치를 누르는 행위와 사람을 떠미는 행위 사이에서 인간의 감수성은 달라진다. 두 질문은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이 자주 인용하여 널리 알려진 일명 ‘트롤리 딜레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두 번째 질문에 대다수의 사람들(78%)은 밀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두 질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모순이다. 우리는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다수를 위한 명분 때문에 소수를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율배반적인 존재가 된다.
만약 인부 5명이 나의 가족이라면 어떻게 될까? 그래도 덩치 큰 사람을 밀지 않을까? 그때는 누군가를 밀어서 가족을 살리는 게 오히려 정서적 판단이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정서적 판단의 개입이 무조건 옳다고 볼 수 있을까?
그동안 트롤리 딜레마는 대학교의 정치 철학 강의나 시민들을 위한 교양서적에서만 볼 수 있는 지적 유희에 해당했다. 그런데 코딩과 알고리즘의 발달이 모든 것을 현실로 바꿔 버렸다. 이제 우리는 그런 철학적 딜레마를 프로그래밍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자율주행차의 등장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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