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은 듀이는 훌륭한 사람인데 듀이를 배운 미국의 자유주의 교육자들이 미국 교육을 망쳐놨다고 비판했다.
조선이 도자기 가마 온도라던가 신기전이라던가 처럼 당대에는 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이었지만 자연과학은 아니었다며 기술과 과학은 다르다고 도올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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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픽사베이)
기술공학의 가치를 경시한 과거 철학자들에 대한 비판
[에듀인뉴스] 듀이는 과거의 철학자들 대부분이 기술공학(Technology)의 중요성과 그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비판을 면할 수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기술공학에 대한 상대적인 부정적 편견은 대개 두 가지의 경향으로 나타난다. 한편으로는 기술공학적 활동에 종사하는 기술공이나 공예가들이 하는 작업의 내용과 소재들은 그때그때 쓰고 버리는 일시적인 것들이며, 이론적 지식을 다루는 경우와 같은 항구적 유용성을 지니지 못한다는 것이고, 그러한 일은 주로 무엇인가를 제작하거나 손발을 움직이는 활동에 종사하는 계급의 사람들이 맡은 천한 일이라는 편견이 있다.
다른 하나로는 기술공학적 방법이 바로 우리의 사회적 삶을 민주화하는 원리일 수 있다는 생각, 즉 민주적 사회를 만들고 유지하는 과정도 어떤 의미에서 기술공학의 방법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수용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인간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온갖 기술과 방법들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우리는 매일같이 그것들을 사용하고 개발하며 거물처럼 엮으면서 삶 자체를 영위하고 무엇인가를 생산하는 일을 평생의 과업으로 계속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든 순간이 기술과 방법을 사용하고 만들어가는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듀이는 1892~1898년 초기 저술에서 과학과 산업기술 그리고 일반학교와 기술학교의 차이와 관계를 다루는 데 관심을 바친 바가 있고, 1899~1924년의 중기 저술에는 인간 지력과 기술공학의 관련성에 관한 논의에 무게를 둔 적이 있다. 1925~1952년의 말기 ‘경험과 자연’(1925), ‘경험으로서 예술’(1934)에는 인간의 지력이 실천적-생산적 활동과 어떤 관련을 가진 것인가를 다루는 상세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그는 고대와 근대와 현대의 기술공학을 철학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많은 쟁점과 논의를 제시하고 논의하기도 하였다.
듀이의 주장에 의하면, 과거의 철학자들은 과학과 형이상학과 사회사상에 비해 기술공학을 가장 잘못된 관심의 대상으로 제쳐 놓았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각기 차이는 있지만, 공히 ‘공학적 솜씨’와 같은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무엇인가를 다듬어 만드는 장인(匠人, Artisan)의 손길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보고, 사유하는 인간은 변화 가능한 물질과 상호작용하는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외면해 버렸다.
특히 플라톤은 세계를 만들어 가는 일종의 거대한 손이 있지만 그것은 자연의 영역 밖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고,1)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 그 자체를 거대한 손으로 보았지만 그 손은 자체로서 관조적 사유의 대상이 되는 고정된 목적이지 무엇을 위한 도구적 기능을 하는 개념은 아니다.
1) Plato, Timaeus
그 결과는 기술공학의 의미를 왜곡한 정도가 아니라 과학과 사회적 탐구의 성장을 방해하였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국가론’은 방대한 사회사상적 논의를 담고 있지만,
출처 : 에듀인뉴스(EduinNews)(http://www.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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