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적인 이성과 실천적인 이성, 앎과 믿음, 종교와 형이상학, 정치와 도덕 등만 서로 떨어져 나가 독립했던 것이 아니라, 문제, 방법, 이론 등도 너무나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들 모두를 내다볼 수도 없고, 서로 이해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그리고 철학에 관한 회의들은 바벨탑을 쌓을 때처럼 언어의 혼란을 겪었고, 마침내 정신은 자포자기를 하고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적인 것보다 높은 곳에 올려놓음으로써, 자살을 하는 길로 나아가게 된다. 이렇게 서로 모순되게 분열된 상태는 많은 사람들에게 혼란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이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철학에 등을 돌리고, 일종의 절망적인 회의주의에 빠지고 만다. 물론 이런 관찰은 일종의 피상적인 관찰이고, 속단에 지나지 않는다.
 의견들이 무한히 많아서 생기는 혼란은 철학을 하기 위한 예비 단계이고, 이 단계는 꼭 극복되어야만 한다. 지나치게 빨리 단념하지 않고, 한층 더 깊게 철학을 붙들고 늘어지는 사람은, 서로 다르고 일방적인 이론들과 입장들이 어떻게 서로를 다시 고쳐주는가 하는 것과, 그리고 전체로서의 철학이 - 비록 하나하나의 부분적인 진술에 있어서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서로 고쳐주고, 보충해주고, 앞으로 이끌고 나가는 학설들의 총체적인 짜임(구성)에 있어서는 - 진리에로 나아가는 왕도라는 것을 당장 깨닫게 될 것이다.       - 힐쉬베르거,『서양철학사下』 머릿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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