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ews.v.daum.net/v/20220205092611692
[[한겨레S] 김도훈의 낯선 사람]유리 겔러
가짜 초능력에 학자들도 깜박
한국서도 숟가락 구부리기 열풍
현대적 미신에 속아넘어간 시절
최근 정치권 '법사 논란' 겹쳐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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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을 구부렸는가 아닌가. 그것이 문제였다. 동네는 공영 <한국방송>(KBS)의 특집 생방송 프로그램이 끝나자마자 흥분의 도가니였다. 나는 경상남도 마산의 작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었다. 사람들의 삶은 아직 주택과 아파트 사이의 경계를 완전히 무너뜨리지는 못한 채였다. 아파트 화단에는 누군가 줄에 묶어 키우는 암탉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여름이면 베란다에 대나무로 된 발을 내걸었다. 밤이면 발 사이로 사람들이 수박을 먹고 있는 광경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모두가 같은 시간에 같은 티브이 프로그램을 봤다. 좋은 시절이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사람은 원래 자신의 유년기를 지나치게 긍정적으로만 기억하려는 경향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다만 그 시절이 지금보다 ‘순진한’ 시절이었다고는 확실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초능력 흉내, 전국에서 숟가락 구부리기1984년은 ‘순진한 시절’에 딱 들어맞는 해였다. 한국의 국민총생산(GNP)이 북한의 5배를 넘어섰다. 애플이 개인용컴퓨터(PC) ‘매킨토시 128K’를 발매했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하며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한 서구에 항의하며 공산권이 모두 불참한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 열렸다. 한국방송 <연예가중계>가 처음으로 방영됐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서울을 방문했다. 역사적인 컴퓨터 게임 ‘테트리스’가 출시됐다. 88올림픽고속도로가 개통됐다. 롯데 자이언츠가 창단 2년 만에 첫 우승을 했다. 사천만이 기다리는 가운데 유리 겔러가 방한했다. 유리 겔러? 그게 누구냐고?
유리 겔러는 당대의 초능력자였다. 그가 주장하기에 따르면 그렇다는 것이다. 유리 겔러는 헝가리계 유대인으로 이스라엘에서 태어났다. 군에 입대했다가 부상으로 퇴역한 그는 이런저런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며 마술쇼를 선보였고, 그게 비즈니스가 좀 되자 스스로를 초능력자로 선전하기 시작했다. 유리 겔러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유럽 국가들의 텔레비전에 출연해 숟가락을 손가락 하나로 구부리는 초능력을 선보이며 점점 유명해졌다. 이런 활약을 지켜보던 미국의 초심리학자(라고는 하지만 초자연현상에 관심이 많은 호사가) 안드리야 푸하리치는 그를 미국으로 초청했다. 몇가지 테스트를 진행한 뒤 푸하리치는 유리 겔러가 초능력자가 맞다고 선언했다. 물론 우리는 푸하리치가 1974년에 펴낸 책에서 유리 겔러가 쇠를 금으로 만들었다거나 개가 벽을 통과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 사람이라는 걸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때는 1970년대였다. 인류가 좀 더 순진하던 시대였다. 푸하리치의 초능력자 마케팅은 통했다. 유리 겔러는 미국을 순회하며 숟가락 구부리는 마술, 아니 초능력을 전시했다. 엄청난 수익이 남는 비즈니스였다. 이 비즈니스가 제대로 굴러가기 위해서는 좀 더 나은 ‘인증’이 필요했다. 흥미진진하게도 정부와 과학이 비즈니스에 말려들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1973년 민간 회사를 통해 유리 겔러를 테스트한 뒤 “초지각능력을 믿을 만하고 분명한 방식으로 선보였다”고 결론 내렸다. 미국 국방정보국 의뢰로 이루어진 스탠퍼드대 연구소의 실험도 비슷했다. 이 실험 논문은 “유리 겔러가 추후 더 심각한 연구를 계속할 필요가 충분히 있을 정도의 능력을 보였다”는 결론과 함께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실렸다.
그 시절을 겪지 못한 2022년의 당신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냐며 경악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에도 몇몇 과학자들과 거짓 초자연현상 타파자들이 유리 겔러의 능력이 싸구려 눈속임에 불과하다고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외침은 유리 겔러의 명성에 큰 흠을 내지 못했다. 어쩌겠는가. 정부와 대학이 초자연현상을 진지하게 연구하던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믿기를 바랐다. 믿고 싶어 했다. 한번 불붙은 명성은 쉽게 사그라들지도 않았다. 유리 겔러는 이미 1980년대 초 전세계가 사랑하는 공인된 초능력자이자 첫번째 백만장자 초능력자가 됐다.
한국방송의 특집 프로 <세기의 경이 초능력 유리 겔러쇼>가 생방송으로 방영되던 1984년 9월23일을 나는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미 광고를 본 사람들이 집집마다 숟가락이나 시계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티브이 화면에 나타난 유리 겔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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