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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 껍질깨기 - 46] 현재 한국에서 가장 많은 욕을 먹는 집단 중 하나가 정치인들이다. 민생 법안들은 국회만 가면 올스톱이다. 당리당략만을 앞세우는 정치인들에게 국민들은 뒷전이다. 정책이 집행되기까지 숱한 시간이 흘러간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온다. 한국 정치는 1980년대 군부독재 시대를 거쳐 민주화가 급속도로 진행됐다. 현재 정치 시스템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민주적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민주적인 정치 시스템이 가장 효율적인 것은 아니다. 정치 시스템이 얼마나 효율적인지를 분석하는 시도는 계속 있어 왔다.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효율적인 정치란 의사결정 과정에서 지불하는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공공선택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뷰캐넌은 정치 의사결정에 따르는 사회적 비용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하나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지불하는 비용이다. 예를 들어 표결을 통해 70%의 동의를 얻어야 법이 통과된다고 가정하자. 이 원칙에 따라 70%의 찬성을 얻은 법률이 집행된다면 나머지 30%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사에 반하는 법을 따라야 한다. 의사결정에서 채택되지 못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겪어야 할 고통은 사회적 비용으로 볼 수 있다. 또 다른 사회적 비용은 표결 과정에서 지불하는 비용이다. 70%가 의사결정의 기준이라고 한다면 70%의 사람들을 설득하고 그들의 동의를 이끌어 내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이 역시 사회적 비용이다. 그런데 소외 비용과 표결 비용은 서로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독재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스템에서는 소외 비용은 매우 많다. 하지만 표결 비용은 거의 0에 가깝다. 반면 만장일치 시스템 아래서는 소외 비용은 거의 발생하지 않지만 표결 비용은 매우 많다. 투표를 해서 몇 %가 동의해야 법을 통과시킬 것인지는 소외 비용과 표결 비용을 합한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험적으로 다수결의 원칙, 즉 50% 이상의 동의를 얻어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가장 줄이는 시스템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하지만 소외 비용이 막대한 경우에는 만장일치에 가까운 의사결정 시스템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고 의사결정 비용이 큰 사회에서는 독재가 어찌보면 효율적일 수도 있다.

 이런 원칙을 우리나라에도 적용할 수 있다. 정부가 입안한 법들은 국회를 통과해야 빛을 발한다. 국회로만 법이 올라가면 통과되기까지 하세월이다. 정치논리로 왜곡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법에 대한 토론보다는 고성과 욕설에 훨씬 익숙하다. 정책 표결 과정에서의 비용도 막대하다. 2012년 만들어진 국회선진화법은 중요 법안의 경우 국회의원 60% 이상의 찬성 동의가 없을 경우 3분의 1만의 반대 동의만으로 법안 통과를 저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60% 이상 찬성 동의를 받기 위해서는 여당과 야당 중 어느 한 곳이 압도적으로 많은 의석을 차지하고 있어야 한다. 국회선진화법 통과 이후로 여당이나 야당이 60% 이상의 의석을 독점한 경우는 없었다. 그러니 소수 정당이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법 통과를 저지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 있는 것이 한국의 정치 시스템이다. 이런 시스템 아래서 우리는 그동한 막대한 의사결정 비용을 지불해왔다. 지금도 민생과 직결되는 각종 경제활성화를 위한 법안 70여 개가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7·30 재보궐 선거에서 집권당인 여당이 압승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것은 물론 절대 불가할 것으로 예상됐던 호남에서 여당 후보가 당선됐다. 선거 결과를 놓고 말들이 많다. 지역주의 타파의 근거가 마련됐다는 분석도 있고 국민들이 여당에 힘을 몰아줬다는 분석도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 이번 선거의 의미를 찾는다면 국민들이 너무나도 과도한 정치 의사결정 비용을 지불하는 것에 환멸을 느꼈다고 볼 수 있다. 비효율적인 정치 시스템을 개혁하라는 국민들의 경고다. 대통령은 공약을 내세워 정권을 잡는 데 성공했다. 당시 이들 공약은 어느 정도 국민의 검증을 받았다. 그런데 새로운 대통령이 집권 후 공약 실천을 위해 법을 국회로 가져가면 그때부터 매번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정치적 의사결정에 대한 비용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지불한다. 이 비용은 국민들이 모두 부담한다. 이번 선거 결과는 집권당에 표를 몰아주면 과도한 정치 비용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국민들의 열망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정치권도 국민의 뜻을 받아들여 의사결정 비용을 줄이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