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ews.v.daum.net/v/20140226095015528
지난 2월4일 영국 철도해운교통노조(RMT)와 사무감독기술직노조(TSSA)가 48시간 파업에 나섰다. '매표소 창구 260곳을 폐쇄하고 직원 950명을 해고한다'라는 런던지하철공사(LU)의 구조조정 계획에 반대하는 파업이었다. 이틀간의 파업으로 기존 노선은 30%만 운행되었고, 센트럴 라인 등 도심 구간 운행은 전면 중단됐다. 두 노조는 2월11일 예정돼 있던 2차 파업을 연기했다. 런던교통국(TfL)과 4월까지 협상을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이 일로 노조나 파업에 참가한 조합원들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하지 않았다. 한국이라면 파업 전후로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할 법한데, 영국은 그렇지 않았다.
한 < 시사IN > 독자가 씨앗을 뿌린 '우리가 만드는 기적 4만7000원'을 계기로, 과연 해외에서도 한국처럼 '손배 폭탄'이 투하되는지 추적했다. 영국을 비롯해 독일·프랑스·일본의 노동단체, 현지 노동법 전문 교수, 노동 전문 변호사 등을 접촉했다. 이 나라의 노동법을 전공한 국내 학자들도 취재했다.
ⓒAP Photo 2월4일 노조의 파업으로 런던의 지하철 운행이 마비됐지만, 이 파업으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한 노조와 조합원은 없다. |
영국은 파업 자체를 형벌로 규정하지 않았다. 우리로 치면 업무방해죄를 규정한 법은 1875년에 사라졌다. 당시 영국은 '공모죄 및 재산 보호법' 제정을 통해 파업에 대해 형벌권 행사를 금지했다. 사실 영국에는 파업권에 대한 규정이 따로 없다. 1980년대 대처 시대를 거치면서 파업권을 무력화하는 법안이 속속 제정되었다. 다른 유럽 국가와 달리 파업을 하려면 조합원 투표를 반드시 거쳐야 하고, 사용자에게 쟁의 개시를 통보해야 한다. 이렇게 영국은 노동법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파업권에 대한 제약이 심한 곳으로 통한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영국법을 가르치는 휴 콜린스 교수는 "영국에서 파업은 합법일 수도 있고 불법일 수도 있다. 합법 파업에는 손해배상을 취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번 영국 철도해운교통노조와 사무감독기술직노조의 파업은 합법 파업이어서 손배 청구를 당하지 않은 것이다.
조합원 개인 아닌 노조에게 손배 청구
우리도 법리상으로는 합법적인 파업의 경우 손해배상 청구를 당하지 않는다. 파업권을 법으로 규정하지 않는 영국에 비해, 우리는 '파업권'을 헌법으로 보장한다. 또한 노동조합법에는 '사용자는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제3조)'라며 면책 조항을 두었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손배 폭탄이 투하되고 있다. 법원이 '정당한 쟁의행위'를 좁게 해석하기 때문이다. 정당한 쟁의행위의 판단 기준은 2011년 대법원 판례로 제시되었다. 대법원은 2006년 나흘간 파업을 벌인 전국철도노동조합 파업과 관련해 회사 측에 약 70억원의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때 대법원은 정당한 쟁의행위 기준으로 '주체가 단체교섭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여야 하고, 단체교섭과 관련한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 등을 목적으로 해야 하며, 시기와 절차도 법령에 따라 정당하고, 폭력이나 파괴 행위를 수반하지 않아야 한다'고 제시했다. 즉, 손해배상을 면할 수 있는 쟁의행위가 되려면 주체·목적·절차·수단 등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는 것이다(이 판결의 주심 대법관은 촛불집회 판결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산 신영철 대법관이다).
휴 콜린스 교수는 "영국에서는 파업의 목적(임금인상 등 경제적인 파업)과 절차를 지키면 된다. 물론 영국에서도 불법 파업일 경우 조합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청구하더라도 조합 자체나 조합 간부를 대상으로 하지 불법 파업에 참가했다는 이유만으로 조합원에게 청구할 수는 없다"라고 밝혔다. 콜린스 교수에 따르면, 조합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역시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그는 사용자들이 손해배상 소송 대신, 파업 금지 가처분신청 카드를 사용한다고 밝혔다. 사용자가 법원에 노조 파업의 합법 여부에 관한 판단을 구하는 것이다. 만일 법원이 위법한 쟁의행위로 보고 쟁의행위 금지명령을 내렸는데도 파업을 지속할 경우 이론적으로는 노조 재산을 가압류하고 지도부를 체포 투옥할 수 있다. 그러나 콜린스 교수는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영국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에도 제한을 두었다. 노동조합 재산이더라도 쟁의행위에 지원되지 않는 정치자금이나 연금 등 조합원의 공제를 위한 재산은 보호재산으로 분류해 가압류 등의 집행을 금지했다. 또 노동조합원 규모에 따라 신청할 수 있는 손해 배상액의 상한선을 법으로 정했다(위 < 표 > 참조).
독일 역시 영국처럼 파업할 권리를 법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독일은 한국의 손해배상 관련 판례에 영향을 끼친 나라다. 거액의 손해배상액을 산정할 때 회사는 수십억, 수백억원대 영업 손실을 포함시키는데, 이 근거가 바로 독일법의 영업권 침해 이론이다. 독일의 경우 우리처럼 법 이론만 따지면, 얼마든지 노조나 조합 간부, 파업 참가 노동자에게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
ⓒEPA 지난해 3월 푸조 시트로엥 노동자들이 파리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정치 파업도 합법이다. |
그래서 취재팀은 독일 철도기관사노조(GDL)에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노동자를 소개해줄 수 있는지 문의했다. 슈테판 무시올 독일 철도기관사노조 언론 담당관은 "미안하지만 줄 연락처가 없다. 우리 노조의 어떤 노동자도 손해배상 소송 때문에 고통받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토스텐 발터 독일노동조합총연맹(DGB) 법률자문도 "독일에서 손배 소송은 대부분 노조 조합원이 아닌 노동조합을 대상으로 이뤄진다"라고 말했다. 발터 씨에 따르면 루프트한자 항공사는 2012년 노조 파업으로 인한 손실액을 900만 유로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정 소송비용을 줄이기 위해 노조를 상대로 낸 실제 소송액은 3만2000유로였다. 발터 씨는 "(액수를 줄였지만) 손해를 입었다는 회사 쪽의 주장은 1, 2심에서 기각당했다"라고 밝혔다. 슈테판 무시올 씨는 "재판부는 파업 때문에 발생한 손해배상 액수를 사용자가 청구한 대로 인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회사도 재판을 끝까지 끌고 가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2008년 도이치반 AG(독일국영철도)가 철도기관사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 협상이 진행되자 소송을 취하했다"라고 말했다. 실제 손해배상 집행이 이뤄질 경우 노사관계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양쪽 모두 공감했기 때문이다. 무시올 씨는 "독일의 어떤 노조도 손해배상으로 파산한 적은 없다"라고 밝혔다. 독일 노사관계협회 의장(1990~1995년)을 역임한 괴테 대학 만프레드 바이스 교수도 "이론적으로 불법 파업의 경우 사용자가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실제 손해배상을 물은 노조는 없다. 노조가 파업하는 걸 막기 위한 위협으로 쓸 뿐이다"라고 말했다.
영국이나 독일과 달리 프랑스는 파업권이 가장 넓게 인정된다. 파업권이 헌법에 보장되며 민영화 반대 등 경제 이슈와 관련한 정치 파업도 합법으로 간주된다. 그런 프랑스에서도 1960~1970년대 직장 점거를 동반한 파업이 빈번하게 발생해 사용자들이 손해배상 소송을 무더기로 제기했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당시 200여 건이 법원에 계류되며 사회적 논란이 일었다. 1982년 쟁의로 발생한 손해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위헌 판정을 받았다. 우리로 치면 대법원에 해당하는 '파기원(Cour de Cassation)'은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 손배에 관련한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이때 세워진 원칙이 지금도 유효하다. 첫째, 형법상 범죄를 구성하는 행위나 파업권의 행사로 볼 수 없는 행위가 아니면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하지 않는다. 둘째, 개인의 과실과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입증되어야 한다. 우리처럼 파업 지도부나 점거 조합원 전부에게 연대배상 책임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각각이 벌인 위법행위와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입증은 당연히 회사가 해야 한다. 노조 간부라도 자신이 저지른 행위가 아니면 손배 책임을 지지 않는다.
독일 "손배는 위협으로만 쓰일 뿐"
장 마리 페르노 프랑스 사회경제연구소(IRES) 선임연구원은 "사용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노조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간주되기에 판사에게 기각당하는 경우가 많다. 불법 파업으로 물리적 손해가 발생했다고 해도, 사업자가 개인을 특정해서 입증하지 못하면 노동자는 손해배상에 연루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 프랑스 노동법 > 을 번역한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프랑스 낭트 대학 박사)도 "파기원이 세운 원칙은 손배 책임을 엄격하게 제한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판례 이후 기업은 손배 소송보다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기류가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한국과 프랑스 모두 헌법에서 파업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합법 파업의 범위 해석을 두고서는 하늘과 땅 차이다"라고 덧붙였다.
가까운 일본은 어떨까. 일본 역시 파업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과거완료형'에 가까웠다. 일본에서 손해배상이 가장 문제가 된 사건은 일본국유철도(국철)가 1975년 11월부터 12월에 걸쳐 8일간 '파업권 쟁취 파업'을 벌인 노동조합 두 곳에게 202억 엔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다(당시 공공사업체의 노동자들에게는 파업권이 없었다). "이 손해배상이 나중에 철도 민영화 추진 과정에서 노동운동을 약화시키는 데 철저하게 이용되었다"라고 다나카 야스히로 도로치바(국철치바동력차노동조합) 위원장은 말한다. "당시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것은 동력차노동조합(동노)과 국철노동조합(국노)이었는데, 이 중 동노가 분할민영화 추진 쪽으로 전향하자 정부는 그 대가로 동노에 대해서만 소송을 취하하고 202억 엔 전부를 국노에 청구했다. '민영화에 찬성하면 취하해준다'는 식으로 노동조합에게 전향을 강요하는 도구로 손해배상이 악용됐다"라고 말했다. 결국 정부 개입으로 1994년 국철은 소송을 취하했다. 도로치바는 민영화 전후로 국철 민영화 반대와 해고 철회 투쟁을 하다 손해배상 소송을 당해 2000만 엔을 물어내기도 했다.
한국어로도 번역된 < 일본노동조합법 > 의 저자인 니시타니 사토시 일본 오사카 시립대학 명예교수는 "파업이 준 탓도 있지만, 최근 사례로는 2003년 한 회사의 파업 과정에서 회사 대문을 부순 행위가 위법하다며 회사 측이 조합 간부와 조합원에게 300만 엔을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 정도가 눈에 띈다"라고 말했다.
2014년 1월 현재 민주노총의 집계에 따르면, 쌍용차 노조를 비롯해 노동계에 청구된 손해배상액은 1128억8800만원, 개별 조합원 가압류 금액은 168억2722만원에 달한다. 한국에서는 노조, 노조 간부, 조합원을 가리지 않고, '메이드 인 코리아 손배 폭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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