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강점이자 약점은 남의 시선을 끈다는 것과 '천천히' 표지판처럼 너무 빨리만 뛰는 사람들을 느리게 이끌면서 사색하고 쉴 여유를 준다는 것이다. 전장연 지하철 투쟁 덕에 회사 일을 덜해도 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우영우 변호사가 아직도 '이상해' 보이나?

https://v.daum.net/v/20220830060508276


그린커 교수(사진)는 정신질환, 그중에서도 자폐증에 대한 낙인의 역학을 연구하는 인류학자다. 오랜 연구를 집대성해 〈정상은 없다〉를 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자주 언급했다.

ⓒ메멘토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마서스비니어드라는 섬이 있다. 영화 〈죠스〉 촬영지로 알려진 대표적 휴양지다. 지금이야 외부인의 출입이 잦지만, 1600년대만 해도 고립된 섬이었다. 영국인들이 정착한 것이 그즈음이다. 여러 세대에 걸친 근친혼의 결과, 정착민 후손들에게 유전적 청각장애가 생겨났다. 1800년대 말 주민 4분의 1이 어느 정도의 유전적 청각장애를 가지게 되었다. 마을은 어떻게 됐을까? 이들에게 청각장애는 딱히 불행한 일이 아니었다. 섬 주민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수어를 고안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수어를 사용했다. 누가 청각장애인이고 누가 청인(비청각장애인)인지 구분할 수도, 구분할 필요도 없었다.

장애를 ‘만드는’ 것은 신체적 손상인가 사회문화적 차별인가. 마서스비니어드섬 사례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로이 리처드 그린커 조지워싱턴 대학 인류학 교수는 이를 두고 “문화가 장애를 없애버릴 만큼 강력하다는 걸 말해준다”라고 설명한다. 그린커 교수는 정신질환, 그중에서도 자폐증에 대한 낙인의 역학을 연구하는 인류학자다. 오랜 연구를 집대성해 〈정상은 없다〉(메멘토)를 냈다. 한국어판이 발간된 7월18일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화제가 될 때였다.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다는 그가 〈시사IN〉과 한 서면 인터뷰에서 우영우를 자주 언급했다.

그는 증조할아버지부터 아버지까지 3대가 정신과 의사인 집안에서 자랐다. 그가 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젠가 어느 정도의 정신질환을 경험한다”. 본인이 아니라도 가족이 겪기도 한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에게 우울증과 조현병 같은 정신질환은 숨겨야만 하는 수치스러운 정체성인가? 그린커 교수는 의학 대신 인류학을 선택한다. “가족 중 누군가가 끔찍한 병을 진단받았을 때, 질병에 걸린 개인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약과 의학 기술이지만, 일상생활에서 그 사람과 가족에게 도움을 주거나 상처를 줄 수 있는 것은 문화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미국에서 정신질환의 발병부터 첫 치료까지 평균적으로 걸리는 시간은 74주에 이른다. 한국에서는 부모들이 자녀의 자폐증 진단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었다. 집안 내력으로 오해받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반응성 애착장애’라는 진단을 받으려고 했다(자폐증 사례의 상당 부분은 신생 돌연변이가 원인이지만, 유전인 경우도 있다). 반면, 일본에서는 우울증이 과로나 은둔형 외톨이 등 사회적 원인과 결부되어 설명되자, 우울증의 진단율과 치료율이 증가했다. 이 사례들은 기초과학만으로 정신질환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1992년 12월에도 그랬다. 딸 이자벨이 생후 14개월이었을 때다. 저금통에 동전을 하나씩 넣고 있는 이자벨을 아무리 불러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날 찍은 동영상에서 아내 조이스는 “과학자 정신이 있는걸” 하고 말했다. 그의 아내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정신과 의사인 아내도 딸의 자폐증을 눈치채지 못했다. 2년 후 이자벨은 자폐증 진단을 받는다. 당시만 해도 1만명당 3명꼴로 발생하는 희귀한 장애였다. 그린커 교수는 자폐증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혼란스러웠다.

‘이자벨의 세계’를 이해하고 싶었다. 아프리카와 인도, 동아시아 등을 오가며 자폐증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인류학자로서 그가 알아낸 것은 자폐에 대한 문화적 태도가 나라마다 다르다는 점이다. 2008년 그의 저서 〈낯설지 않은 아이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프리카에서는 (자폐증을) 마법과 연관 짓고 미국의 나바호 인디언은 ‘신의 실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유독 한국과 프랑스에서는 아이가 자폐증을 가진 경우 부모가 죄인 취급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린커 교수는 자폐증에 대한 낙인이 줄어들면 더 많은 가족들이 좀 더 빨리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린커 교수는 드라마 속 우영우 변호사(위)가 <말아톤>의 초원보다 나아간 캐릭터라고 말한다. ⓒENA 채널딸의 세계 이해하기 위해 자폐증 연구

한국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것도 그 때문이다. 2006년부터 2011년까지, 국내에서 최초로 진행된 대규모 연구였다. 2000년대 초반 미국에서 자폐증 유병률이 높아지자, 언론에서는 ‘전염병’이라고 불렀다. 두려움도 커져갔다. 그린커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유병률이 높아진 게 아니라 자폐증을 더 많이 진단하게 된 것이다.” 한국은 미국보다 자폐증에 대한 인식이 낮은 곳이었다. 그런데 연구 결과, 만 8~12세 한국 아동 약 5만6000명을 대상으로 한 자폐증 조사에서 유병률이 2.64%로 나왔다. 세계에서 보고된 가장 높은 유병률이었다. “당시 CDC(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등 미국 연구자들은 “말도 안 돼!”라고 말했다. 11년이 지난 지금, 아무도 2.64%가 터무니없이 높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자폐 연구를 진행한 30년간 나타난 변화가 이를 보여준다. 자폐, ADHD, 조현병 등에서 나타나는 뇌신경의 차이를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인정하라는 신경다양성 운동이 생겨났고,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가 공식 진단명이 되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란, 노란색과 주황색의 경계를 딱 잘라 구분하기 어려운 것처럼, 증상들의 차이로 자폐성 장애를 표현하는 개념이다. 자폐증 치료와 특수교육도 확대되었다. 자폐증이 좀 더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진단이 되면서 자녀의 자폐증을 비밀에 부치려는 분위기도 서서히 바뀌어갔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그린커 교수에게 이 변화를 알려주는 주목할 만한 자료였다. “한국에서 자폐증 인식이 얼마나 빨리 높아졌는지 놀라울 정도다.” 그린커 교수는 “한국에서 연구를 진행하던 2006년에는 대중문화에서 자폐증을 다룬 게 영화 〈말아톤〉에 나온 정도였다”라고 회상했다. 당시 〈말아톤〉도 “획기적인” 영화였다. “〈말아톤〉에서 중요한 장면은 주인공 초원의 어머니가 아들이 자신을 필요로 하는 만큼, 자신도 아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부분이다. 진정으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독립이나 자율이 아니라 의존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린커 교수는 의존이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장애에 따른 수치심과 불편함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영우는 초원보다 더 나아간 캐릭터였다. 특히 그는 우영우 변호사가 첫 번째 법정에서 자신이 자폐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고 밝히는 장면을 강조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정의하도록 두기보다는 스스로를 정의한다. 그녀는 자신을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든다.”

그 장면에서 그는 딸 이자벨을 떠올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이었다. 장애인 졸업 연설자로 나서는데, 교장이 여기에 회의적이었다. 자폐인을 키우는 부모로서 겪는 흔한 반응이었다. “운동이건, 학교 수업이건, 일자리건 뭔가를 시도하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을 수없이 많이 봤다. 이자벨이 성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다들 자신이 이자벨을 보호하고 있다고 여긴다.” 그린커 교수는 누구나 모험하고 실패할 기회를 누려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자력으로 살아남으라’는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겐 허락되지 않았다.

그날 이자벨은 청중 3000명 앞에서 연설을 했다. “제가 어렸을 때 어떤 사람들은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자벨이 입을 열자 일부 학생들이 웃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마치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 탓이었다. 그런데 이자벨이 “저처럼 자폐증이 있는 사람들은”이라고 말하는 순간, 갑자기 실내가 조용해졌다. 그린커 교수는 책에서 이렇게 그날을 회상한다. “이제 청중은 이자벨을 이해하고 그녀가 보이고 싶어 하는 모습대로 그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보이던 것이 갑자기 이해되었다. 이자벨은 기립박수를 받았다.” 우영우를 보며, 또 이자벨을 보며 그린커 교수는 “배제하고 차별하는 말과 행동에 대해 주도권을 가짐으로써 낙인을 바꿀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정상성 개념은 ‘유해한 허구’

한국어판으로 발간된 그의 첫 번째 책 〈낯설지 않은 아이들〉의 원제는 ‘이상하지 않은 정신(Unstrange Minds)’이다. 딸의 자폐를 연구하고 세상의 편견과 맞서온 이야기를 담았다. 우연인지 우영우 변호사에게도 ‘이상한(Extraordinary)’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어떤 연결고리일까. 그린커 교수는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을 높이면 이상한 것을 익숙하게 여기고 이해할 수 있다”라고 답했다. “한국은 ‘이질감(저자가 ijilgam이라 표현)’이라는 개념에서처럼, 다름이 같음보다 낮은 평가를 받는 사회의 본보기다.” 우영우는 남들에게는 낯설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관점을 보여준다. 그가 딸 이자벨을 통해 경험한 세계이기도 했다. “어쩌면 드라마가 끝난 뒤 시청자들에게 물어야 할 것 같다. ‘아직도 우영우 변호사가 ‘이상하게’ 보이는가?’”

〈정상은 없다〉는 오랜 기간 ‘정신질환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붙들어왔던 한 문화인류학자의 대답이다. 그린커 교수는 낙인을 지탱하고 있는 오래된 힘을 파고들고, 질병의 정치사회적 원인을 배제하는 생물학적 모델에 의문을 제기하며, 정신의학이 만들어낸 ‘정상성’의 논리를 하나하나 격파해간다. “정신질환은 정도의 문제이며, 우리는 항상 질환 스펙트럼의 어딘가에 있다. 자폐증은 자연보다는 문화를 통해 경계가 그어진다.” 저자는 정상성이라는 개념이 ‘유해한 허구’라고 지적한다.

스웨덴 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자신의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공개하며 “병이 아니라 슈퍼 파워”라고 말했다. 그에 반해 자폐의 뜻엔 부정적 함의가 있다. ‘스스로(自) 닫는다(閉)’는 뜻이다. 영어 오티즘(Autism)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자기중심주의’다. 저자는 문화가 낙인과 정신질환을 함께 묶었다면, 분명 그 둘을 분리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결국 인간에게 달려 있다. “어쩌면 20~30년 뒤에는 오티즘이나 자폐증 같은 단어를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 히스테리나 신경쇠약처럼 한때 강력했으나 더 이상 공식 진단명으로 쓰이지 않는 용어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