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폴라니도 인간, 자연, 화폐를 계량화할 수 없다며 인류학적으로 접근했는데 비슷한 입장입니다. 저도 이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맑시즘 뿐 아니라 화폐제도 차제가 결함있는 근세 계몽주의 망상입니다. 쉽게 말해서 사람마다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른 맛이나 멋을 숫자로 계량화하는게 가능한가요? 흉내를 낼 뿐입니다. 그것도 권력자가 세팅해둔 구조로 말입니다.
비슷하게 성별을 계량화할 수 있을까요? 2개가 아니라 LGBT 포함 6개요? 무성애자 포함 7개요? 퀴어는 몇 개입니까? 낮에는 23시간 24분 동안 무성애자였다가 연예인과 밤에 만나는 36분동안에만 이성애자가 되는 사람의 성별은 어떻게 계량화 하나요? 이렇게 성별 계량화도 언어와 숫자란 구조를 통한 망상입니다.
도올의 맑시즘 비판
"오늘날 노동 생산성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맑스의 최대 실수는 인간 노동의 가치를 시간으로 계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는 점입니다. 맑스는 상품가치의 실체를 순수하게 노동시간으로 환원하여 노동착취를 과다한 노동시간에서 오는 것이라고 크게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맑스에게는 근세의 수량적 가치관과 관련하여 모든 가치를 수량화해야만 하는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에 『자본론』 제1권에서부터 수량적인 분석을 시도한 거예요. 그러나 노동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문화를 창출하는 道의 행위입니다. 그 노동은 절대 시간이라는 양으로 계산될 수 없어요. 이것이 동양인들의 생각입니다.
내가 집을 짓느라고 나이 많은 목수와 젊은 목수에게 일을 시켜보았는데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6,70살 되는 옛날 도목수들은 놀 때는 판판히 놀면서 일을 안 하지만, 자기가 무엇을 만들고 깎을 때에는 누가 보든 안 보든 시간 제한 없이 밤을 새우더라도 완벽하게 완성을 해냅니다. 그런데 요새 젊은 목수는 아침에 와서 기계로 붕붕붕 일하다가 시간 되면 일하던 중간에 손을 털고 일어나버려요. 그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집이 지어지겠습니까. 일이라는 것은 반드시 그렇게 시간으로 딱딱 잘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때는 쭉 가다가 어떤 때는 쉬기도 하고 그래야 결과적으로는 더 효과적인 작업이 되고 또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입니다.
시간을 가지고 인간을 착취하는 것은 비참한 일이지만, 가치의 창출 그 자체로 말하면 시간으로 계산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정보’가 가치창출의 원천이 되고 있는 현대사회에 있어서는 맑스의 수량적 가치관은 별 의미가 없어요.
반복되는 얘기지만 옛날 일꾼들에게 일을 시켜보면, 요새 일꾼들과 가장 크게 다른 것이 보이지 않는 데서도 완벽하게 일을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요새 애들은 보이는 데에서는 완벽한 체하고 보이지 않는 데에서는 개판이에요. 도대체 미국이 소니제품을 따라 갈 수 없는 중대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이 일본 제품을 따라갈 길이 없어요. 지금 미국의 자동차시장을 일본이 제패했습니다. 여러분 벤츠가 대단한 줄 알죠? 지금 그 무서운 벤츠의 아성이 깨졌습니다. 미국에서는 지금 벤츠보다 도요타에서 나오는 렉서스(LEXUS)라는 차를 더 알아주거든요. 20년 전만 해도 일본차는 미국에서 명함도 못 내미는 똥차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렇게 완벽하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일본 노동자들의 질 높은 노동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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