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정말 반갑습니다. 1년에 한 번 이렇게 함께 보는 아주 소중한 기회인 것 같습니다. 세 분 건의 말씀도 잘 들었습니다. 내용이 참 좋습니다. 전문가 수준입니다.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직접 정책 보좌를 받거나 내각을 통해서 도움을 받고 있는 수준 못지않은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대통령으로서 가슴이 뜨끔한 데가 있습니다. 정부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내용은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뜨끔합니다. 첫 번째는 세 분 위원님께서 말씀하신 내용 중 구체적인 특별한 내용 이외에는 정책기조가 똑같은 방향에 서 있는데 왜 같은 말씀을 반복하실까 하는 의문이 생기고요, 두 번째는 건의 중에 원칙이나 신뢰, 일관성, 국민적 합의,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이라는 것은 ‘이 점에 있어서 우려가 있다.’는 것을 표명하신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잘 알아들었습니다. 제가 구구하게 변명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런 문제점이 있습니다.

제가 뜨끔했던 첫 번째 문제에 관해서 말씀드리자면, 모든 정책이 우리가 지향한다고 다 그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거기로 가려고 하지만 막히는 수도 있고 부득이 돌아가야 되는 수도 있고 또 지체되는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이해를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 문제에 대해서는 변명을 조금 하겠습니다. 저도 신문을 직접 보기도 하고 또 신문을 요약 분석한 보고를 따로 받기도 하는데, 신문 보고 나가서 참모들하고 대화를 하면 자꾸 엇나갑니다. 결국 나중에 맞추어 보면 제가 부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무리 대통령이 긴장하더라도 정보가 입력이 되는데 이것은 몇 날 몇 시 어느 자리에서 누구에게 들은 얘기이고, 이건 몇 날 몇 시에 어느 보고서에서 본 얘기고, 이것은 어느 신문에서 본 얘기고, 이게 구분이 되지를 않습니다. 정보라는 것은 접수되면서 일정하게 그럴 듯하다 싶어서 반응 딱 일어나면 그냥 자기의 기억으로 입력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입력되면 그런 인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인식을 가지고 있다가 그 일을 책임지고 있는 참모하고 만나서 얘기해 보면 이게 말이 앞뒤가 안 맞습니다. 우리 안보실 참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차례 그런 것을 반복한 다음에는 요즘은 늦더라도 좋으니까 좀 기다립니다. 안보실의 보고를 먼저 받고 그 다음에 신문이나 이런 것은 구문으로 다시 참고삼아 정리하는 이런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됐을 때 제 판단에 오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그러면 주는 것만 받아먹고 시민들의 폭넓고 다양한 정보는 차단되는 것 아니냐 그런 우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신문, 방송, 인터넷, 이 모든 정보를 정부가 전부 실시간으로 정리를 합니다.

정부의 정책에 관련된 기사 중에 사실과 의견이 맞는 것은 전부 정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잘못된 것은 전부 고합니다. 이것은 언제까지 법을 고쳐야 되니까 입법 조치를 취하겠다, 이것은 언제까지 시행령을 고치겠다, 이것은 예산 조치하겠다, 이것은 우리가 그냥 처분으로서 알아야 하겠다, 전부 보고서를 쓰게 되어 있습니다.

이 보고서를 쓰면 그것을 우리 정책실에서, 국무조정실에서 1차적으로 점검하고, 국내언론비서관실에서는 기사 건수를 전부 점검해서 주간 보고를 저한테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요즘은 제가 너무 바빠서 비서실장이 한번 더 챙겨 보고 월간 보고로 줄여 달라고 했습니다. 시스템이 안착됐기 때문이지요.

틀린 보고면 어떻게 하느냐, 대강 어중간한 것은 넘어가고, 심하고 명백한 것은 반드시 정정보도를 청구합니다. 정정요청을 듣지 않으면 정정보도 신청을 냅니다. 그래도 안되면 소송까지 갑니다. 물론 정정보도도 있고 반론도 있고 합니다. 그 다음에 항의도 있고요. 항의 정도로 하고 끝내는 것도 있고, 절반은 맞고 절반은 엉성해서 오해가 생길 소지가 있는 것은 해명을 달아 줍니다. 이 활동을 계속해서 하고 있습니다.

결과를 제가 전부 수렴해 가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정보를 흘려 버리는 일은 없습니다. 개인이 혼자 이 신문 저 신문 뒤적거리는 것보다는 훨씬 더 체계적이고 완벽하지요.

그래서 이제 신문기자들이 글을 쓸 때 무척 조심합니다. 사실을 확인하는 습관이 점차 붙어갑니다. 함부로 쓰지 않습니다. 대신에 괘씸하거든요. 옛날 공무원들은 안 그랬는데, 요즘 공무원들은 또박또박 말대꾸를 한단 말입니다. 옛날 장관님들은 기사가 뭐가 나갔든 간에 장관이 ‘기사 잘 봤네. 언제 술이나 한잔 하지.’ 설사 술을 사지 않더라도 이렇게 말합니다. 인사를 이렇게 하고 넘어가는데, 요즘은 장관이 안 나오고 국장, 과장, 사무관들이 나와서 ‘당신 기사 정확하지 않소.’ 또박또박 따지니 괘씸하게 됐단 말이죠.

어쩌겠습니까, 철저히 파는 거지요. 정말 먼지 나는 것이 없는지, 잘못된 것이 없는지 철저하게 파지요. 그러니까 공무원들이 정신 바짝 차려야지요. 대통령이 일일이 다니면서 감사원장이나 장관에게 내부감사 잘하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자들이 눈을 부릅뜨고 알아서 철저히 챙겨 주니까요. 그렇습니다. 괜찮은 시스템 아닙니까,

제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지금 국민들한테 원칙 없는 정부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슬픕니다. 그러나 어쩔 수 있습니까, 슬프다 말하고 또 노여워하면 그것도 문제가 되고 그렇지요.

대통령이 되기 훨씬 전부터 어디 가서 강연할 때 절대로 빠트리지 않는 말 한 마디가 신뢰입니다. 민주주의 못해도 신뢰가 있으면 사회가 유지되고, 민주주의를 해도 신뢰가 무너지면 사회가 유지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뢰를 우리 사회에서 최상의 위치에 있는 가치로 본다, 항상 그렇게 얘기를 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정책 신뢰성이 계속 문제가 되니까 이 또한 제가 또 부끄러운 일입니다. 일관성과 신뢰라는 것은 사실은 비슷하게 맞붙어 있는 것이지요.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원칙들이, 제가 존중하고 꼭 실현하고 싶었던 참여정부 최대의 목표가 지금 이렇게 지적받고 흔들리고 있습니다. 좀더 노력하겠습니다. 아니면 좀더 냉정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숙제입니다.

말씀이 나온 계기에 건의해 주신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겠습니다. 상호주의에 대칭되는 원칙은 일방주의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상호주의에 대응하는 참여정부의 정책은 실용주의입니다. 왜냐하면 상호주의라는 것은 형식적이고 경직된 원칙이 될 수 있습니다. 남북관계를 해 나가는 데 조건과 서로의 처지가 너무 다르고 생각도 다릅니다. 어떤 분이 말씀하는 것처럼 ‘네가 한 대 때리면 나도 한 대 때리고 이게 상호주의 아니냐,’ 이렇게 얘기할 수 있지만 남북관계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결국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인 평화, 신뢰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를 놓고 그때그때 판단해야지 상호주의라는 원칙에 묶어두면 안됩니다. 결코 일방적인 퍼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장기적인 목표를 놓고 신뢰를 확보하고 결국 남북 간 대화로써 보다 더 큰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유익한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상호주의에 대응하는 정책개념은 실용주의라고 이해해 주십시오.

대북 송금사건 수사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명시적으로 반대의견을 표시한 적도 없습니다. 이것이 많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만, 남북 간 대화와 교류를 하는 데 국민들이 투명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저는 국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였습니다.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추세가 비록 통치행위라 할지라도 투명성과 합법성에 대한 강력한 요구가 있어서 제가 이 점은 참여정부부터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수용했습니다.

사실은 남북관계에서 초법적인 통치행위가 성립할 소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단 하나, 국민들이 수용해 줄 때만 최고 통치권자의 초법적인 통치행위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이지, 국민들이 보편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마당이면 어려운 것 아니겠습니까, 잘했는지 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당시 저의 선택이었습니다. 이것도 하나의 원칙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북한에서 대화를 중단했을 때 한국도 중단해 버리고, 일방적 통보가 왔을 때 내가 거절하라고 했습니다. 한 번은 거절했는데, 우리 통일부가 어떻게든 일이 되게 하려는 부처이기 때문에 명시적으로 지시를 내려고 해석을 조금 달리해 가지고 어지간하면 대화를 끊거나 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 점을 크게 문책하지 않았습니다. 문책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여러 가지 대북 지원이 중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원칙이라기보다는 전략적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대북 지원을 끊고 있는 것은 인도주의 원칙, 상호주의 원칙이라기보다는 그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하겠다는 판단이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그 외에 동시행동 원칙이나 정부,민간 분리 원칙, 다 동의합니다. 미국 정부와 의회를 설득해야 된다, 비핵 공영, 이런 이름을 쓰진 않지만 이렇게 가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공부해서 좋은 이름을 차용하든지 한번 검토해 보겠습니다.

냉전구조 해체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큰 틀의 합의를 북핵문제 해결과 함께 가야 합니다. 9,19공동성명에 이 문제가 다 들어 있습니다. 평화체제 협상에 관한 조항, 동북아 다자 안보체제까지 언급되어 있습니다. 9,19 공동성명이 지금 표류하고 있으니까 아무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거기에는 동북아 다자 안보체제라는 새로운 개념이 들어 있습니다.

한국이 북핵문제 해결에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했을 때 9,19 성명이 나왔습니다. 그 뒤에 BDA(방코델타아시아) 문제가 딱 걸렸는데, 참 저도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중국에서 9,19성명을 서명하고 있는데 2,3일 전에 미국 재무부에서는 이미 방코델타아시아에 대한 계좌 동결조치를 해 버린 것입니다.

미국 국무부가 미처 몰랐던 것 아닌가, 베이징에서 모르는 상태에서 그 하루이틀 전에 제재는 나와 버렸고 나온 것을 풀지 못하고 여기까지 와 버린 것 아닌가, 이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또 나쁘게 보면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냐, 이렇게도 볼 수 있습니다. 미국 재무부와 국무부 사이에 이 점에 대한 원칙을 해석하는 것이 달라서 정치적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듭니다. 재무부는 법대로 가자고 주장할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만 알 수가 없습니다.

9,19공동성명이 탄생하자마자 땅에 묻혀 버렸지만, 봄이 오면 싹이 트듯이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와 평화 구축, 나아가 동북아시아 다자안보체제와 평화체제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방향으로 가겠습니다.

대북정책 협의체제, 각계각층의 대표적 지도자나 원로들 모아 놓으면 서로 대화가 잘 안됩니다. 말을 다르게 쓰고 있거든요. 이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우리가 식민지 시대와 좌우대립을 심하게 겪었고 전쟁까지 치르고 독재라는 세월을 거치는 동안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게 돼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개념이 달라 언어가 서로 통하지 않습니다.

국민통합, 참 좋은 얘기인데 이것을 못하고 있는 거지요. 제가 이것 한번 해 보자고 맨 처음에 고건 총리를 기용했었지요. 그래서 고건 총리가 다리가 되어서 그쪽하고 나하고 가까워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그랬는데, 오히려 저하고 저희 정부에 참여한 사람들이 다 소외되는 그런 체제에 있는 것이지요. 중간에 선 사람이 양쪽을 끌어당기질 못하고 스스로 고립되는 그런 결과가 되기도 하고요. 결과적으로 실패해 버린 인사지요.

링컨 대통령의 포용인사가, 제가 김근태 씨나 정동영 씨를 내각에 기용한 그 정도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링컨 대통령은 책에 오래오래 남고 남들이 연설할 때마다 그분 포용인사했다고 인용하는데, 저는 비슷하게 하고도 욕만 얻어먹고 사니까 힘듭니다. 링컨 흉내를 내려고 해 봤는데 그게 잘 안되네요. 재미가 별로 없습니다.

여기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거든요. 이 사안은 통일,외교,안보정책 사안이고, 큰 틀에 있어서 안보의 영역에 포함되는 일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지요. 안보 문제와 표리관계가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통일을 왜 해야 합니까, 더 잘살기 위한, 더 사람답게 살기 위한 목표가 있을 것입니다만, 더 절실한 것은 평화를 확보하기 위해서 아니겠습니까, 일단 평화를 확보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고, 그 다음에 이를 통해 우리가 좀더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면 더 좋은 것이고요. 핏줄을 같이하고, 말을 같이 쓰고, 문화를 함께하는 사람이 하나로 함께 통합되어서 사는 것이 보다 사람답게 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통일해야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평화입니다.

평화라는 것이 안보의 핵심 개념이거든요. 안보가 뭐냐, 전쟁에서 이기는 것도 안보의 목정기고 평화도 안보의 목적 아닙니까, 그러나 고유의 의미에서 우리가 안보라고 얘기할 때는 평화를 지향하는 국가적 활동이지요. 전쟁에서 이기는 것보다는 전쟁을 예방하는 것이지요. 전쟁에서 이기는 안보보다는 평화를 지향하는 안보라는 개념을 확실히 하면 좋겠습니다.

대화를 지향하는 안보를 해야 됩니다. 안보를 위해서 끊임없이 대결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안보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 상대를 경계하게 되는 것이지요. 거기에 적대적 감정이 들어가고 불신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안보가 전쟁을 예방하는 것이라면 어느 정도가 전쟁을 예방할 수 있겠습니까, 적이 공격했을 때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는 수준, 나는 털끝도 안 다치고 아니면 찰과상 정도 입거나 타박상 정도 입고 완전히 제압하는 수준이라면 확실하지요. 안보를 위한 대비가 확실한 것입니다. 적어도 공격을 해서 이길 수 없다, 따라서 점령할 수도 없고 지배할 수도 없는 단계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이겨도 점령하지 못하고 점령해도 지배하지 못하면 전쟁을 일으킬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 가능성이 없으면 상식을 가진 사람이면 전쟁을 시작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기지 못할 수준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한 대 때리려고 하다가 한 대 반을 맞을 형편이면, 팔 하나 부러트렸는데 자기 팔은 두 개 부러져 버릴 형편이면, 제정신 가진 사람이라면 싸움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목적을 어디까지 둘 거냐, 힘의 비교를 어느 정도에 둘 거냐를 판단해 보고 정신없는 짓 안할 것이라는 전제에서 상대를 평가해 보는 겁니다. 상대가 제정신이 멀쩡한 사람인지, 아니면 믿을 수 없을 만큼 제정신이 아닌 사람인지, 아니면 머리가 아주 나쁜 사람인지를 판단해 봐야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전제를 할 때 부도덕한 사람,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비정상인 사람으로 전제를 하는 거지요.

그래서 제가 대통령 후보가 됐을 때 패널들이 저한테 ‘노 후보, 김정일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오,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라고 물을 때 ‘예’ 하면 그날로 박살나는 겁니다. ‘아니오’ 해도 곤란합니다. 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는 것이 한국의 정치 풍토, 정치 문화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