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 개발 예산을 전용시켜 IT 강국을 이룩하다
1980년대에 기반을 다진 한국 IT 산업은 1990 ― 2000 년대에 급속히 발전했다. PC 통신과 인터넷의 발전, 초고속 통신망 보급, PCS 서비스 등을 통해 통신 인프라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했다.
2005년 서울 디지털 포럼에서 엘 고어 미국 전부통령은,
“한국의 유비쿼터스는 전세계가 한국에게 금속인쇄술에 이어 또 신세진 통신부문의 혁명적 성과이다.”
라고 말했다. 한국 IT 산업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음을 미루어 알 수가 있다.
한국이 IT 강국, 인터넷 강국, 첨단기기 제품 강국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데에는 정부의 역할이 컸다. 박정희, 전두환 정부의 역할이, 시대 상황을 감안할 때 특히 컸다.
박정희가 1967년에 수십 명의 해외거주 과학자들을 국내로 불러들여 KIST를 설립했다. 이 기관은 IT 산업을 이끈 원동력, 한국을 IT 강국으로 성장시킨 밑거름이 되었다. 사람들은, ‘박정희가 중화학공업의 초석을 놓았고 전두환이 전자정보통신 사업의 기초를 닦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컴퓨터를 이용한 정보통신을 IT’라고 본다면, 과학기술처와 KIST 전산실, 한국전자계산소가 설립되고 이곳에서 국내 최초로 외국산 컴퓨터를 도입하고 그것을 이용한 작업을 한 해가 한국 IT 산업의 원년이 되며 그 기관들을 설립한 사람은 박정희이므로 전자정보통신 사업의 초석을 놓은 사람도 그가 되어버린다.
박정희가 과학기술처, KIST를 설립한 것은 원래는 전자산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핵무기, 미사일을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그 개발에 국가 예산을 몽땅 쏟아 부었다. 1970년대에 그 때문에 국가경제가 어려워졌으나 그 덕택에 응용과학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세계적 수준에서 저 멀리 뒤쳐졌던 한국의 전자기술이 1980년대에 일약 그 수준에 올라간 것은 1970년대의 연구 성과 덕분이었다.
1982년도에 전길남 박사의 연구로 이룩한 SDN 개통은 한국으로 하여금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을 제치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을 사용하는 나라가 되게 해주었다. 그것은 세계적으로도 기여했으니, 미국 중심의 인터넷 망을 전세계에 공개시켰다. 전길남은 박정희 정부의 해외 과학자 유치 사업 때 귀국한 사람이었다. 1970년대에 응용과학자들이 최고의 대우를 받으매 해외동포 과학자들이 대거 귀국하였다. ― 박정희의 핵개발을 다룬 소설이 밀리언셀러가 된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은, 박정희의 부름을 받은, 세계적인 물리과학자인 이휘소가 귀국하려고 하자 미국 CIA가 그를 살해한다는 것이다. 해외 두뇌들이 대거 유입됨에 따라 한국의 과학기술이 급속히 발전했다.
1970년대에 활발했던 과학 연구가 80년대에 들어서 된서리를 맞는다. 그것은 핵무기, 미사일 개발을 중지한 때문이었다. 전두환 정부에서 핵무기, 미사일 개발을 포기했다. 그 포기는 과학자들에게 날벼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 정부가 무너지고 전두환 정부가 들어선 것은 다행인 것이 과학자들이 전정부의 배려 덕분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찾게 될 뿐더러 인류 파괴가 아니라 복지를 위하여 일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전두환 정부에서 핵무기, 미사일 개발로 축적한 과학 기술을 전자 산업 쪽으로 돌려 활용했다. 전두환이야말로 의도적으로 전자정보통신 사업의 기초를 닦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전두환 정부에서 핵무기, 미사일 개발 예산을 전자산업 부문에 전용시켰다. 그 예산의 일부분을 돌린 것이지만 엄청난 액수였다. 정부의 전자사업에 대한 투자 그 때문에 국가경제는 어려워졌지만 그 덕택에 전자산업은 어려움 없이 발전하게 되었다. 1980년대에 IT 산업이 정부의 지원 아래 태동하고 일어났다. 컬러텔레비전 방송으로 컬러 문화가 꽃 피고 TDX 개발, 전화 및 팩스의 보급으로 통신 인프라가 발전했다. 전화선과 모뎀의 발전으로 PC 통신, 인터넷 시대가 열렸다.
전두환이 81년에, “반도체, 컴퓨터, 전자교환기 부문을 3대 전략 산업으로 추진한다. 5년 안에 전자 부문의 생산 및 수출을 2.5 배로 늘인다”고 발표했을 때 정부 관료를 비롯해서 대다수 사람들이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정확히 그로부터 5년 뒤 ― 86년에 전자산업이 기계산업을 앞질러 국가 최대 주력 산업이 되었다. 전두환이 한 말이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사실, 그 발표는 실천불가능한 일을 호언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전두환은 본래 허풍쟁이가 아니라 리얼리스트였다. 그때 실제로 정부에서 반도체, 컴퓨터 전자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예산과 기술을 확보하고 있었다.
IT 산업이 전두환 정부 시절에 일어난 것은 TDX 같은 기술 개발보다 제도를 개혁하여 통신에 대한 규제기능, 사업기능을 정부, 민간으로 분리시켜 통신 서비스가 경쟁이라는 시장경제 논리를 통해 개선되게 해놓았기 때문이었다.
전두환 정부에서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으로 정보통신 정책을 수립했다. 유신통신조차 적체를 빚는 시절에 ‘데이타 통신 전용회선이 한국전기통신공사의 유선 전화 못지않게 중요하다’며 ‘데이타 통신 육성 정책’을 펼쳤다.
ㅡ《부나나라가되다(유길만 지음, 청명 출간)》
박정희가 아이티 강국의 초석을 다진 건 사실. 가끔 감탄할 때가 많음. 전두환은 박정희가 하던 걸 계속 이어나갔던 건데 사실 이게 쉬운 일이 아님.
저렇게 인프라 구축으로 발전의 초석을 쌓은 것과 반대로 기맹삼이 김대주이 노무혀이 때 소프트웨어 쪽 방향을 자바로 잡는 바람에 발전은 커녕 개발살 내버리면서 지금에 이르렀지 ㅇㅅㅇ 비전공국비들 한텐 천국이 맞겠네 ㅇㅅㅇㅋ
놀랍게도 1980년대에 인터넷이란 걸 어떻게 알았는지 초기 인터넷 개발에 국가적으로 밀어줘서 전남길 박사도 국책사업으로 인터넷 개발했던 것임. 또 TDX가 ㅈㄴ 중요한데 저게 일명 전전자 교환기임. 데이터 통신을 감안한 교환기였는데. 선진국들은 교환기가 전부 음성통화 교환기을 위한 아날로그가 대세였지만 전두환은 1980년부터 국가가 작정하고 초고속 데이터 통신망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전전자 교환기 저 TDX로 전국 전화국을 만들기 시작했고 광통신망으로 연결하는 사업을 진행했다는 것임. 그게 1990년대 중반쯤에 완성되서 전국 초고속 데이터 통신망이 가능하게 되었고 그 이후부터 수용가(즉 가정집)까지 초고속 통신망을 까는 사업을 하게 된거임. 지금의 인터넷은 전두환의 20년에 걸친 프로젝트였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