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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9월3일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항일승전 70주년 열병식이 열렸다. 시진핑 중국국가 주석이 기념사를 마치고 무개차에 올라 부대를 사열하기 직전 음악이 흘러 나왔다. 바로 ‘중국인민해방군행진곡’이다. 항일승전 70주년 열병식의 가장 중요한 장면에서 연주된 이 음악은 항일투사인 정율성(鄭律成)이 작곡한 곡이다. 정율성이 1937년 발표한 이 곡의 원래 명칭은 ‘팔로군행진곡’으로 1988년 중국인민해방군가로 공식 지정됐다. 2014년 방한한 시진핑 중국국가 주석은 서울대에서 강연을 하면서 한국과 중국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상징하는 10명의 역사적 인물을 언급하면서 최치원, 허균, 김구 등과 함께 정율성을 꼽았다.
광주 출신인 정율성은 역사상 가장 많은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은 한국인이다. 하지만 정작 그의 고향인 한반도 남쪽에선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북한 공식군가인 '조선인민군행진곡'도 만든 주인공이란 이유로 외면 받아왔다. 심지어 지난 2012년엔 KBS에서 한중수교 20주년을 기념해 ‘13억 대륙을 흔들다, 음악가 정율성’을 방송했다. 당시 방송을 두고 보수 세력들의 집요한 공격이 계속됐고, 방송통신심의위에 에서도 논란이 됐다. 당시 방송통신심의위 여당측 추천 위원들은 “정율성은 6.25에 참전한 공산주의자로 KBS가 정율성 다큐멘터리를 3차례 내보낸 것은 부적절하다”면서 그를 “국익을 해치는 인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정율성은 공산주의자가 되었으며 그리고 중국에서 존경받는 위대한 음악가가 되었다. ‘조선 독립의 맹렬한 불꽃’ 의열단이 되고자 했던 청년은 어떻게 위대한 음악가로 성장할 수 있었고, 왜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사회주의자가 되어야만 했을까? 1945년 해방 이후 그는 왜 고향 광주로 돌아가지 못하고 북에 머물러야 했고, 다시 조국을 떠나 중국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을까? 파란만장한 정율성의 삶을 담은 책 ‘정율성- 중국의 별이 된 조선의 독립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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