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이 좋게도 회사가 내준 사택에 살고 있다
방 3개 짜리 24평 마루바닥을 혼자 청소하는 건 꽤 힘들다
대학 시절부터 작은 원룸방 한켠,
심지어 냄새나는 고시원에 누워 공상만 펼쳤던 시절에 비하면
팔자가 아주 좋다고 생각한다
관리비도 회사에서 내주고 돈 모으긴 참 좋다
국비 출신 주제에 이렇게 저렇게 공부할 환경도 괜찮아서
평일이든 주말이든 공부도 열심히 하고
방통대도 다니고 기타학원도 다니고 요즘은 덕질에 헬스에
빨래하고 밥해먹는 것도 여간 이리저리 바쁘다
날이 선선해서 오후까지 낮잠 선잠만 반복하다가
산책을 하러 나왔다
노릇노릇 져가는 아파트 단지를 걷노라면
풍경이 참 좋다
한 4-5년 전 코바야시네 메이드래곤이나 니게하지를 보면서
2LDK 정도 되는 방에 혼자 살면서
저런 히키스러운 프로그래머의 삶을 산다면 행복하겠지
라고 동경했던 적이 있는데
어쩌다보니 그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게 되었다
내 생활과 결이 맞긴 한데 행복한지는 잘 모르겠다
대학시절부터 프로그래머는 직업으로 염두해두었지만
정말 이걸 직업으로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되었다
20대 초중반 내내 우울증을 앓았던 시절에 비하면
살도 좀 찌고 꽤나 건강하게 된 편이지만
그때의 서늘한 감정들이 좀 무뎌지는 것 같아 그건 아쉽다
요즘은 돈 생각 뿐이다
용돈을 받아 칩거했던 옛 시절에 비해서야 좋지만
내 스스로 벌어 쓰자니 이게 여간 고단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평생을 자력으로 벌어 먹어야 한다니
좀 무섭기도 하다
슬슬 자리를 잡고 나도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을 무렵
잇쇼켄메이할 두 가지를 정하고 싶었다
하나는 프로그래밍
다른 하나는 덕질
성취를 떠나서 이 두 가지 분야에서 어떤 탁월함을 가지고 싶다
오타쿠 개발자라는 스테레오 타입이 좀 멋있기도 하고
예전부터 이게 멋있다 생각했으니
나도 그 결이 맞는 사람이겠지
요즘은 결혼이 하고 싶다
어릴 때는 대학 직업 권력 돈 뭐 이런 게 중한 줄 알았는데
요즘 들어서는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경제력 정도만 갖춰지면
그 이상은 다 거기서 거기 아닐까 싶은 생각
골드로져도 노무현도 죽음 앞엔 평등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평생을 같이할 반려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요 몇년 간 좀 방랑하던 생활도 청산하고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니지만
결혼은 할 거니 하고 묻는 아버지 말이 요즘 늘어서 부담된다
또 예전부터 일본에 가서 일하고 싶었는데
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가서도 별 거 없겠지만
그냥 동경 같은 건 지울 수 없다
일본에 가서 코바야시를 닮은 개발자 커플이지롱 하고 싶다
이리저리 정자에 누워 생각해본다
오랜 생각이다
내 이상형은 코바야시다
이런 도태한남인셀씹덕에게도 봄은 오겠지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