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설, 영화 실마리: 미군 출신 양심적 지식인 하워드진 전기
"파시즘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하워드 진은 2차 세계 대전당시 미국 육군 항공대의 490폭격비행단에서 폭격수로 복무하며[4] 베를린,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등을 폭격했다.[5] 하워드 진의 반전 성향은 이때의 경험에 기반한 측면이 있다. 1945년 4월, 하워드 진은 서부 프랑스의 로얀에서 있었던 초기의 네이팜 탄을 사용한 폭격에 참여하기도 했다.[6]
폭격 9년 뒤의 박사후 연구 과정에서 하워드 진은 프랑스 서남부 보르도 부근의 해변 리조트를 방문해 거주민들을 인터뷰하고, 지역 도서관에서 공문서와 전시 신문을 읽었다. 1966년, 하워드 진은 그간의 연구를 정리한 역사의 정치학을 발간한 뒤, 로얀으로 돌아왔다. 이 방문에서 하워드 진은 그가 참여했던 폭격에서 로얀 근처에서 종전을 기다리고 있던 독일 군인 뿐 아니라 1000명 이상의 프랑스 국적의 민간인을 살해한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일에 대해 하워드 진은 "비참한 실수"(une trgique erreur)라고 표현했다. 그의 책 역사의 정치학에서 하워드 진은 정당한 이유라기 보다 군사적 승진을 목표로 한 누군가에 의해 종전 3주 전에 폭격이 명령되었다고 말했다.
하워드 진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에 속해있던 플젠 폭격에도 참여했었다. 공군의 공식 역사 기록에는 플젠에서 5명의 민간인 사상자만이 있었다고 기록되어있으나, 나중에 하워드 진이 플젠에서 온 부부를 만나 들은 바로는 5명이 아닌 수백명의 민간인이 죽었다고 했다고 한다.[7]
하워드 진은 전시 폭격수로서의 경험이 그 폭격의 이유와 결과에 대한 자신의 연구와 결합되어 병사들이 전시에 겪게되는 윤리적 딜레마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고 말했다.[8] 하워드 진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드레스덴, 로얀, 도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등에 대한 연합군의 폭격과 베트남전에서의 하노이, 이라크 전쟁에서의 바그다드에 대한 폭격에 의해 수많은 민간인이 사망한 것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다. 1995년 제작된 그의 팜플렛 히로시마: 침묵을 깨기[9]에서 그는 민간인 살상을 목적으로 한 공중 폭격을 비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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