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와 비슷한 경우

춘향과 이몽룡이 한창 사랑에 빠졌을 때 이에 대한 묘사가 굉장하다. 이때 둘의 나이는 17살, 16살이지만 당시 조선시대에선 15세 남성에게 관을 씌웠기 때문에,[13] 지금으로 치자면 대학교 1~2학년끼리의 로맨스라고 보면 된다.

어쨌든간에 현대 기준으로는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한창 아청법에 대해 논란이 있을 때 아청법이 소설 등 텍스트 매체에는 적용되면 안된다는 주장의 근거로 이 춘향전과 같이 성적 묘사가 강하게 나오는 고전 문학 작품들을 드는 경우가 많다.[14]

눈결에 얼핏 보니, 삼삼이를 덮고 있는 것이 맹랑하고 야릇하다. (중략)
“생리대를 풀고 과거 시험장에 있는 과녁[15]처럼 잠깐 일어서려무나.”[16]
“그건 곤란합니다. 그만하고 주무시지요.”
“이렇게 부탁하는데 일어나지 못하겠느냐.”
춘향이 어쩔수 없이 반쯤 일어섰다 다시 앉았는데, 몽룡이 정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니, 겹겹이 둘러 싸인 푸른 산속, 늙은 중이 송이죽을 자시다가 혀를 데인 형상이요, 홍모란(紅牧丹)이 반개하여 피어오는 형상이라. 영계[17]찜을 즐기시나 닭의 볏이 거기 왜 있는가? 먹물이 흐른 줄과 도끼자국이 일치하는 구나.[18]
이도령의 움직임좀 보소. 몸이 점점 달아오르니, 훨훨 벗어 제끼고 모두 벗고 이부자리로 뛰어드는데, 춘향이 하는 말이,
"저 보고는 일어서라더니 당신은 왜 안 일어납니까?"
이도령이 눈결에 일어서서 앉아있자 춘향이 묻는 말이
“검은색을 띠면서,[19] 송이버섯의 머리 같은 것이 무엇시오?”
“그것도 모르느냐. 동해 바다에서 대합(大蛤) 조개 일쑤 잘 까먹는 소라 고둥이라 하는 것이라.”
에후리쳐 덥썩 안고 두 몸이 한 몸 되었구나. 네 몸이 내 몸이요, 네 살이 내 살이라. 호탕하고 무르녹아 여산폭포(廬山瀑布)에 돌 구르듯이 데굴데굴 구르면서 비점가(批點歌)[20]로 화답한다.
“우리 둘이 만났으니 만날 봉 자 비점이요, 백년가약 맺었으니 맺을 결 자 비점이요, 우리 둘이 누웠으니 누울 와 자 비점이요, 우리 둘이 벗었으니 벗을 탈 자 비점이요, 우리 둘이 덮었으니 덮을 복 자 비점이요, 오늘 침상 즐겼으니 즐길 낙 자 비점이요, 우리 둘이 입 맞추니 법칙 여 자 비점이요, 우리 둘이 배 닿으니 배 복 자가 비점이요, 네 아래 굽어보니 오목 요 자 비점이요, 내 아래 굽어보니 내밀 철 자 비점이요, 두 몸이 한 몸 되니 모을 합 자 비점이요, 나아갈 진, 물러갈 퇴, 잦을 빈 자 비점이요, 좋을 호 자, 실 산 자자, 물 수 자 다 비점이라.”
이렇듯이 음탕한 소리와 난잡하게 즐기니 남대문도 개구멍처럼 작게 보이고, 인정도 매방울처럼 작을 뿐이라. 선혜청이 오 푼이요, 호조가 서 푼이요, 하늘이 돈짝만하고, 땅이 맴도는구나.
ㅡ 춘향전 도남문고본. 출처

이도령이 춘향의 가는 허리를 후리쳐 담쑥 안고 기지개 아드득 떨며 귓밥(귓불)도 쪽쪽 빨고 입술도 쪽쪽 빨면서 주홍 같은 혀를 물고 오색 단청 순금장 안에 쌍거쌍래 비둘기같이 꾹꿍꿍꿍 으흥거려 뒤로 돌려 담쑥 안고 젖을 쥐고 발발 떨며 저고리 치마 바지 속곳까지 활씬 벗겨놓으니 춘향은 부끄러워 한편으로 잡치고 앉아 얼굴이 볼그레하고 구슬땀이 송실송실 맺힌다. 어디 이뿐인가, 〈춘향가〉에는 ‘정자타령’ ‘궁자타령’ ‘비점가’ 등 춘향과 이도령의 성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거나 빗대어 부른 사랑가가 즐비하다. 갈 데까지 다 갔지만 전혀 상스럽거나 추하지 않다. 그래서 〈춘향가〉이다. 〈춘향가〉는 이와 같이 은밀한 남녀간의 관능적인 사랑을 열린 공간에 드러내놓고 자연스럽고 떳떳하게 즐길 수 있게 해준다.
ㅡ 김석배 교수. 네이버 지식 백과. 〈춘향가〉의 자력

특히나 이 부분은 유머화 되기도 했다. 업음질이 무슨 뜻인지 몰라 선생님에게 질문했더니 그제야 보이는 부분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춘향전을 일본어로 번역했는데 이 번역본의 성적 묘사가 매우 강해서 '일본인들이 열녀 춘향을 모욕하려고 왜곡한 거 아냐?'라며 연구를 했으나, 알고 보니 원전을 충실히 번역한 것일 뿐이었다는 카더라도 있다.

성적 묘사가 원체 직설적이다보니, 판소리를 배우는 사람들도 미성년자라면 이 부분을 생략한다고 한다. 국악인 박애리가 벌거벗은 한국사 101회 방송분에서 증언하기를, 9살 때부터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해 중학생 때 춘향전을 뗐다고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첫날 밤 대목은 건너뛰고 배웠기에 선생님께 이 대목은 안 배우는 거냐고 질문했더니 "그 대목은 성인이 된 후 가르쳐 주겠다"라는 답을 받았고, 실제로 스무 살이 되어서야 그 대목을 배웠다고 밝혔다.[21] 이해조 역시 춘향전을 음탕교과서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