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사람들이 달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소낙비를 맞으며 십여 명의 여승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들은 기름종이로 만든 우의를 걸치고 있었다. 앞장을 선 늙은 여성은 키가 매우 큰데 그녀는 찻집 앞에 이르자 우뚝 걸음을 멈추더니 큰 소리로 호통 쳤다.
"링하오쳉은, 썩 나오너라!"
화시안하의 제자들은 그 늙은 여승이 지엥일사태라고 불리우며 오악검파 중의 하나인 북악 하웅시안하의 이름난 고수로서, 하웅신안하의 장문인인 지엥히엔사태의 사매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녀는 성질이 불 같아서 강호의 인물들은 그녀를 보면 아예 멀리 피해 버리고 마는 괴팍한 여승이다.
너우딕약을 비롯한 화시안하의 제자들은 급히 몸을 일으켜 지엥일사태에게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삼가 사숙님을 뵈옵니다."
지엥일사태는 여러 사람의 얼굴을 훑어보더니 거친 어조로 호통 쳤다.
"링하오쳉은 어디에 숨었느냐? 빨리 기어나오라고 해라!"
그녀의 음성은 사내들보다도 훨씬 우렁찼다. 너우딕약은 공손히 대답했다.
"사숙께 아룁니다. 링하오쳉 대사형은 지금 이곳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도 그를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화시안하의 대사형은 바로 링하오쳉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꼽추는 속으로 생각했다.
(링하오쳉이라는 사람은 참 말썽꾸러기인 모양이구나! 어쩌다가 늙은 여승의 비위를 긁어놓게 되었다지?)
지엥일사태는 날카롭게 찻집 안을 둘러보더니 소녀의 얼굴에 시선을 못박고 물었다.
"너는 링샨이겠지? 어째서 흉측스럽게 곰보의 얼굴로 변장을 했느냐?"
소녀는 웃으며 말했다.
"나쁜 사람이 저의 얼굴을 보면 자꾸만 추근거릴 게 아니에요? 그래서 곰보로 분장을 한 거에요."
지엥일사태는 싸늘히 코웃음쳤다.
"너희 화시안파는 점점 규율이 문란해지는구나. 너의 아버지는 어째서 제자들을 풀어놓아 이곳저곳에서 말썽을 피우도록 하는지 알 수가 없어! 이곳의 일이 끝나는대로 내 친히 화시안으로 달려가 따져야 되겠다."
링샨은 급히 말했다.
"사숙, 그러지 마세요. 대사형은 얼마 전 아버지께 서른 대의 곤장을 맞았어요.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할 지경이라고요. 사숙께서 다시 아버지께 대사형의 일을 말하신다면 대사형은 다시 예순 대의 곤장을 얻어맞게 될 것이고 다리 병신이 되고 말 거에요."
"그 짐승 같은 녀석은 때려서 일찍 죽여버리는게 좋을 게다. 링샨, 너도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구나. 링하오쳉이 걸음을 걷지 못한다고? 걸음을 걷지 못하는 녀석이 어떻게 내 막내 제자를 납치해 갈 수 있었느냐?"
지엥일사태의 그 말이 떨어지자 화시안파의 모든 제자들은 대경실색하고 말았다. 링샨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사숙, 그럴 리가 없을 거에요! 대사형이 아무리 당돌하다고해도 사숙의 막내 제자를 납치하지는 않았을 거에요! 아마도 누군가 헛소문을 퍼뜨렸겠지요!"
지엥일사태는 버럭 노호를 터뜨렸다.
"너는 그래도 그놈을 위해 변명을 하겠단 말이냐? 이구앙, 타이샨파의 사람들이 말한대로 설명해 주도록 해라."
그러자 지엥일사태의 뒤에 서 있던 한 명의 중년 여승이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타이샨파의 티엔쉉도장은 힝이양성의 어느 주루에서, 구체적으로 말하면 휘안뤄라는 술집에서 링하오쳉이 이링 막내와 술을 마시는 모습을 목격했답니다. 이링 막내는 링하오쳉에게 인질로 잡혀 있었고 링하오쳉의 강요에 못 이겨 억지로 술을 마셨다고 했어요. 이링 사매는 금새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었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옆에는 또 한 사람이 동속하여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여인을 괴롭히기로 유명한... 지엔바이구앙이라고 했습니다."
지엥일사태는 들을수록 화가나는지 주먹을 들어 옆의 탁자를 힘껏 내리쳤다. 그 바람에 그 탁자는 대뜸 도끼로 내려친 듯 두 쪽으로 갈라졌다.
화시안파의 제자들은 그녀의 귀신 같은 솜씨를 보자 일제히 안색이 변했다.
링샨은 눈물을 글썽이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거짓말이에요! 티엔쉉도장은 사람을 잘 못 본 게 틀림없어요!"
지엥일사태는 눈을 부릅뜨고 호통을 쳤다.
"입 닥쳐라! 링하오쳉 이 짐승이 감히 지엔바이구앙 같은 악당과 사귀었으니 그야말로 타락할대로 타락했다고 할 수 있다. 독비행 지엔바이구앙이 어떤 인물인지 너도 소문을 들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놈은 전문적으로 여인을 납치하여 강간한 후 살인하는 색마가 아니더냐? 나는 반드시 천하의 여인들을 위해 지엔바이구앙과 링하오쳉 두 벌레를 제거해 버릴테다! 아...... 이링이 제발 무사해야 할텐데..."
지엥일사태는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했다. 그녀는 다시 말했다.
"이링...... 이 예쁘고 철 없는 것이... 잘 못되면 어떡하나..."
화시안파의 제자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대사형이 하웅시안파의 막내 여제자를 데리고 술을 마셨다면 화시안파의 명예를 더럽힌 것이고 문규를 어긴 것이다. 더구나 색마 지엔바이구앙과 어울려 다녔으니 큰일났구나!)
너우딕약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숙, 아마 링하오쳉과 지엔바이구앙은 우연히 같은 좌석에 앉아 술을 마시게 되었을 겁니다. 결코 어울려 다니는 사이는 아닐 것입니다. 링하오쳉 사형은 요며칠 동안 술에 대취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아마 술기운 때문에..."
지엥일사태는 눈을 부릅뜨며 호통을 쳤다.
"술에 취하면 무슨짓을 하여도 괜찮단 말이냐!"
"아 아닙니다. 링하오쳉을 찾아낸 후 사부님께 데리고 가서 무거운 벌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지엥일사태는 냉랭히 말했다.
"흥! 그 녀석이 벌을 받든 말든 나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나에게 중요한 사람은 이링이란 말야!"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갑자기 손을 뻗쳐 링샨의 손목을 움켜 쥐었다. 링샨은 손목이 쇠집게에 물린 듯 아팠다.
"악! 사숙 왜 이러세요!"
지엥일사태는 호통을 내질렀다.
"너희 화시안파의 제자가 나의 이링을 잡아갔으니 나 역시 너희 화시안파의 막내 제자를 잡아가야겠다. 너희들이 이링을 내놓는다면 나도 링샨을 내놓겠다!"
그녀는 링샨을 확 끌어당기며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링샨은 억지로 끌려 문 밖으로 나가게 됐다.
너우딕약과 이엥봐가 휙 몸을 날려 지엥일사태의 앞을 가로막았다.
너우딕약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사숙께서 화를 내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일은 저의 사매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입니다. 아무쪼록 사숙께서는 아량을 베풀어 주십시오."
지엥일사태는 소리 높여 외쳤다.
"좋아! 아량을 베풀어 주겠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오른발을 비스듬히 휘둘러 너우딕약을 향해 후려쳐 갔다. 너우딕약과 이엥봐는 음유한 기운이 덮쳐와 숨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너우딕약은 태풍에 휩쓸린 나뭇잎처럼 뒤로 날라가 길 건너에 있는 어느 가게의 벽에 '꽝'하고 부딪치고 말았다. 이엥봐는 하운덩을 파는 노인의 등 뒤로 날아갔다. 펄펄 끓는 물이 담긴 솔을 머리로 들이받는 기세로 그의 몸은 곧장 날아가는 것이었다. 끓는 물을 얼굴에 뒤집어 쓰게 될 위험한 처지였으나 누구도 막을 여유가 없었다. 모두들 놀라 비명소리를 냈다.
그런데 하운덩을 파는 노인이 갑자기 몸을 뒤로 돌리며 한 손바닥을 불쑥 내밀지 않는가! 이엥봐의 머리는 노인의 손바닥에 철썩하며 부딪혔다. 노인은 손바닥을 가볍게 앞으로 밀어냈고 이엥봐는 뒤로 몇 보 정도 날아갔다가 사뿐히 자리에 내려설 수 있게 됐다.
지엥일사태는 하운동을 파는 노인을 놀란 눈초리로 바라보더니 싸늘히 말했다.
"알고보니 당신이었군!"
노인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알아내셨군! 사태의 불 같은 성질은 여전하시구려."
바로 이때 길 저쪽에서 두 사람이 기름종이로 된 우산을 들고 한 손에는 등롱을 든 채 가까이 다가오며 큰 소리로 외쳤다.
"혹시 하웅시안파의 지엥일사태가 아니십니까?"
지엥일사태는 대답했다.
"내가 바로 지엥일이오. 그런데 귀하는 누구시오?"
두 사람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들의 손에 들린 등롱에는 류붜우라는 붉은 글자가 씌어 있었다. 앞장을 선 사람이 공손히 말했다.
"저는 사부님의 명을 받고 여러 무림 협사들을 모시러 왔습니다. 성 밖까지 마중하지 못한 점 용서해주십시오."
그는 깊이 허리를 굽히며 정중히 절했다. 지엥일사태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지나친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소. 두 분께서는 류징풩 대협의 제자들이신가요?"
앞에 선 사람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저의 이름은 싱디니엔이고 이 사람은 저의 사제로 뮈이이라고 합니다."
"좋소. 그렇지 않아도 우리들은 류징풩 대협의 은퇴식에 참석하려는 중이었소."
싱디니엔은 화시안파의 제자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분들은 어디서 오신 영웅호걸이신지요?"
이엥봐가 얼른 말했다.
"저는 화시안파의 이엥봐라고 합니다."
싱디니엔은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알고보니 화시안파의 세째 사형이시군요. 영명은 오래전부터 익히 들어왔습니다. 자아, 함께 저희 집으로 가시죠."
너우딕약이 다가와 말했다.
"우리는 원래 대사형을 기다렸다가 함께 류대협께 가서 문안을 드리려고 했었네."
싱디니엔은 기쁜 음성으로 말했다.
"혹시 화시안파의 둘째 사형이 아니신지요? 우리 사부님께서는 화시안파의 링하오 대사형과 너우 둘째 사형 두 분이 걸출한 영재라고 말씀하시곤 했었습니다. 링하오 사형께서 아직 안 오셨다면 우선 다른 분들이라도 함께 저희 장원으로 가시죠."
너우딕약은 생각했다.
(소사매가 징엥일사태에게 잡혀 있으니 함께 행동할 수 밖에는 없구나.)
생각을 마친 그는 얼른 입을 열었다.
"그럼 폐를 끼치겠습니다. 안내해 주십시오."
"예, 따라오십시오."
싱디니엔은 앞장 서서 걸음을 옮기려 했다.
지엥일은 훤돈을 파는 노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분도 초대하지 그러오?"
싱디니엔은 그 노인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안색이 변했다. 그는 공손히 절을 하며 말했다.
"알고보니 인팅시엔의 하대협께서도 여기에 계셨군요. 미처 몰라 뵌 점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함께 가시기를 청해도 될런지요?"
하운돈을 파는 노인은 바로 저우캉시엥의 인팅시엔에 거주하고 있는 고수 하수안취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훤돈을 팔아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는데 무공을 익힌 후에도 변함없이 훤돈을 메고 다니며 강호를 유랑하고 있었고, 따라서 훤돈을 삶는 솥은 그의 표기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는 일신에 무공을 지니고 있었으나 무공을 이용해 돈을 벌지 않고 훤돈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그를 아는 강호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그를 존경하고 있었다.
하수안취는 껄껄 소리내 웃었다.
"하하하! 그렇지 않아도 뒤를 따라가려던 참이었네!"
그러면서 하수안취는 탁자 위에 놓여진 훤돈 그릇을 거두기 시작했다.
너우딕약은 말했다.
"이 후배가 눈이 있으면서도 선배님을 알아보지 못한 점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하수안취는 웃으며 말했다.
"용서하고 말고 할 것이 있나? 자네들은 나의 훤돈을 팔아 주었으니 나의 은인이 아닌가? 훤돈은 한 그릇에 십 문전이니까 모두 합하면 칠십문이 되네."
그러면서 그는 왼손을 내밀었다. 돈을 내라는 뜻이었다. 훤돈이란 밀가루 반죽에 고기를 넣어 삶거나 찐 음식으로 만두의 일종이었다.
지엥일사태가 그 광경을 보고 말했다.
"하대협의 별 말씀이 없는 이상 훤돈을 먹었으면 값을 치뤄야지."
하수안취는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맞아. 조그만 밑천으로 현금 거래를 하는 장사이니만큼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해도 외상은 사절이오."
너우딕약은 급히 칠십 문의 동전을 꺼내 두 손으로 공손히 바쳤다. 하수안취는 돈을 품 속에 넣은 후 지엥일사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대가 탁자를 후려칠 때 그릇 하나가 깨졌소. 모두 십사 문이니 배상을 해 주시오."
지엥일사태는 웃으며 말했다.
"정말 째째하군요. 출가인에게도 돈을 받으려고 하다니! 이구앙, 배상해 드리도록 해라."
이구앙은 십사 문의 돈을 꺼내 공손히 건네주었다. 하수안취는 돈을 품 속에 넣으며 '갑시다' 하고 말했다.
싱디니엔은 가지고 온 우산을 사람들에게 일일이 나누주고 앞장을 섰다. 지엥일사태는 여전히 링샨의 손목을 꽉 움켜쥐고 하수안취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음을 옮겼다. 하웅시안파와 화시안파의 여러 제자들은 그 뒤를 따랐다.
자리에 홀로 남아 있던 꼽추는 잠시 망설이더니 천천히 그들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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