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가 인간의 존재를 가능성의 존재라고 규정했지만
여기에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존재가 될 것인지 생각하며 가능성을 향해 스스로를 형성한다.
대부분의 인간은 이 미래의 추구하는 것이 결핍되있는 것에서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
돈이 없다면 돈을 많이 벌고 싶다.
지식이 부족하다면 지식을 더 많이 쌓고 싶다
결국 그 가능성의 형태를 결핍이라는 틀로 만든다.
미래가 현재를 규정한다고 하이데거가 말했다.
우리가 내리는 선택과 행동은 어떠한 존재가 되고자하는지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되고자하는 존재는 대부분 결핍이라는 틀에 의해서 망가지는 것이다.
인간은 애초부터 존재부터 근본적인 불안과 고통이 존재하는 존재인데, 이것이 유한한 존재로써 인간이 마주하는 필연적 감정인데,
이 역설이야말로, 자신의 불안정함을 받아들이고, 결핍에 왜곡되지 않은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는 기회를 얻어서, 다시 한번 볼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을 한다.
평생을 이 고통속에서 살아야하지만, 단 하나 분명히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이 불안정함이야말로 내가 나라는 것이라는 것이고,
이 불안정함을 받아들이고, 결핍을 받아들여야 결핍이 만들어낸 틀에서 벗어날 수 있단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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