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ipe를 쓰고 싶다. 그것뿐이다. 구독 결제, 인보이스 자동 발행, 전 세계 카드 처리, Hubspot 연동까지 한 번에 해결되는 이 서비스를 그냥 쓰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업자 번호를 들고 가입 버튼을 누르는 순간, 벽이 나타난다. Stripe가 지원하는 국가 46개 목록 어디에도 대한민국은 없다. 가나가 있고, 태국이 있고, 홍콩이 있는데, IT 강국이라 불리는 이 나라만 빠져 있다.
이 사실 앞에서 처음에는 단순한 사업적 판단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다. Stripe가 한국 시장을 매력적으로 보지 않는 것 아닐까, 혹은 기술적인 인프라 연결이 안 된 것 아닐까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런 낙관적 해석이 설 자리가 없다. Stripe는 실제로 한국에 진출을 시도했다. 사람도 뽑았다. 그러다 조용히 사라졌다. 그 조용한 철수 뒤에는 법 하나가 서 있다.
그 법의 이름은 전자금융거래법이다. 28조를 보면 이렇게 적혀 있다. 전자지급결제대행업(PG업)을 영위하려면 금융위원회에 등록해야 하고, 어기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이다. 여기까지는 납세 투명성이나 금융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이해가 간다. 문제는 이 등록 절차의 무게다. 자본금 요건, 물리적 한국 지사 설립, 국내 임직원 고용, 기존 카드 네트워크와의 계약, 금감원 보안 감사. Stripe 같은 글로벌 플랫폼이 그냥 API 하나 연결하듯 통과할 수 있는 관문이 아니다. 표준화된 글로벌 인프라를 통째로 한국 규격에 맞게 뜯어고쳐야 하는 수준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한국 창업자들이 미국 법인을 만든다. 델라웨어 주에 LLC나 C-Corp를 설립하고, EIN(연방 세금번호)을 발급받고, 미국 은행 계좌를 만들어서 "저는 미국 사업자입니다"라고 Stripe에 신청한다. Stripe Atlas라는 서비스가 이 과정을 하나로 묶어 $500에 해결해준다. 연간 유지 비용은 프랜차이즈 택스, 등록 대행비, 회계사 비용을 합산해 $1,000에서 $1,500 정도 나온다. 한국에 멀쩡히 사무실과 팀이 있는 회사가, 결제 하나 받으려고 미국 법인을 하나 더 굴리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역설적인 상황인지를 제대로 느끼려면 숫자가 아니라 현장을 봐야 한다. 한국 스타트업 창업자가 글로벌 SaaS를 만들었다. 해외 고객이 구독 버튼을 눌렀다. 결제를 받아야 한다. 이 순간 그 창업자는 자신의 제품을 고치거나 고객에게 집중하는 대신, 델라웨어 세법을 공부하고, 미국 회계사를 구하고, FBAR 신고 기한을 달력에 적어넣는다. 제품 만들 시간에 법인 행정을 하는 것이다. 린 스타트업(린 스타트업, Lean Startup)의 핵심인 "빠르게 출시하고 반응을 보자"는 방법론이, 결제 시스템 구축이라는 첫 번째 관문에서 바로 깨진다.
에스토니아 이야기도 나온다. 에스토니아는 e-Residency라는 제도를 통해 세계 어디서든 유럽 법인을 디지털로 설립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한국 창업자들이 에스토니아 법인을 만들고 Stripe 유럽 계정을 개설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한국에 살면서 에스토니아 법인으로 유럽 Stripe를 운영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이 사실을 알면 뭔가 불편한 감정이 들어야 정상이다. 창업자들이 한국을 벗어나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 한국 안에서는 선택지가 없어서 이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국내 PG사가 있지 않느냐"는 반론이 여기서 항상 나온다. KCP, KICC, KSNet 같은 기업들이 있고, 이들도 해외 결제를 지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비교해보면 어디까지나 차선이다. 국내 PG사는 구조적으로 국내 매입사를 경유해 국경 간(Cross-border) 거래를 일으키기 때문에, 해외 발급사의 이상거래탐지시스템이 이를 고위험으로 분류해 결제 거절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Stripe나 Adyen 같은 글로벌 결제사는 전 세계 거점에 로컬 매입 라인을 깔아 놓아, 같은 거래를 로컬 처리로 통과시킨다. 승인율 차이가 여기서 난다. 매출 전환율로 직결되는 그 차이를.
한국 PG사들의 또 다른 약점은 3D Secure(결제 인증) 정책이다. 차지백(차지백, chargeback)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대부분의 거래에 일괄적으로 인증을 요구한다. 정상적인 해외 고객도 낯선 인증 창 앞에서 이탈한다. Stripe는 데이터 기반으로 저위험 거래만 걸러 인증을 생략하고, 고위험 거래에만 인증을 요구하는 위험 기반 선별 방식을 쓴다. 결과적으로 보안 수준을 유지하면서 전환율도 지킨다. 이건 단순한 편의 차이가 아니다. 글로벌 SaaS의 수익 모델 자체가 이 전환율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왜 한국은 이 상태로 이렇게 오래 있었는가. 단순히 법이 복잡해서라는 설명은 충분하지 않다. Hacker News에서도 이 주제가 거론됐을 때 나온 댓글이 있다. 국내 PG사들이 정부에 로비해서 외국 경쟁자를 막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직접적인 증거가 없으니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구조를 보면 의심이 자라는 건 자연스럽다. KCP, KICC 같은 기업들은 현행 규제 체계의 가장 큰 수혜자다. 외부 경쟁이 차단된 시장에서 높은 수수료와 복잡한 연동 요건을 유지하며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2024년 위메프 사태는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위메프와 티몬의 정산 지연 사건이 터지자 정부는 PG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을 손봤다. 9월 15일부터 시행된 개정 조항들은 PG사의 자금 보관 기간을 더 엄격히 제한하고, 에스크로 의무를 강화했다. 소비자 보호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 조치다. 그런데 부수 효과로 외국 결제사의 한국 진입 장벽이 더 높아졌다. 이미 복잡한 등록 요건 위에 추가 규제가 쌓인 것이다. 한쪽에서 창업 생태계를 키우자고 외치면서, 다른 쪽에서는 그 생태계가 쓸 도구를 막는 구조다.
2025년 들어 부분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점은 짚어야 한다. 해외 법인을 둔 사업자가 한국 고객의 카드 결제를 원화로 받을 수 있게 됐고, 네이버페이와 카카오페이도 연동 가능해졌다. 이것은 진전이다. 그런데 여기서 혼동이 생긴다. 이 변화의 수혜자는 "이미 해외 계정이 있는 사업자"다. 한국 법인이 Stripe 계정을 새로 개설할 수 있게 된 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자조 섞인 요약이 SNS에 돌았다. "Stripe는 열렸지만, 진짜로 열렸다고 보긴 아직 애매하다." 반쪽짜리 개방이다.
이 구조가 만들어내는 가장 심각한 장기적 손상은 기업 소재지의 이동이다. 글로벌 SaaS를 키우려는 한국 창업자가 결제 문제 때문에 미국 법인을 만들었다고 치자. 그 법인이 자라면 어떻게 되는가. 투자자는 미국 법인에 투자한다. 매출은 미국 법인 장부에 잡힌다. 핵심 인재를 미국에 채용한다. 결국 그 회사는 한국 팀이 만든 제품이지만, 법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미국 기업이 된다. 세금도 미국으로 간다. 고용도 미국으로 간다. 한국 사회가 육성해야 할 글로벌 기업이 결제 하나 때문에 한국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걸 갈라파고스 현상이라고 부른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동물들이 고립된 환경에서 독자 진화하다 외부 종에게 경쟁력을 잃듯, 한국의 금융 생태계도 규제라는 장벽 안에서 독자 진화를 계속하고 있다. 카카오페이와 네이버페이는 한국 내에서는 강하다. 그런데 외국인이 카카오페이를 쓰려면 국내 휴대폰 번호가 있어야 하고, 국내 계좌 인증이 필요하다. 사실상 내국인 전용 시스템이다. 글로벌 표준과의 호환성보다 내부 최적화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이게 잘못이라는 게 아니다. 이것이 글로벌 경쟁을 위한 도구가 되기엔 너무 폐쇄적이라는 것이다.
비판의 공정성을 위해 규제 당국의 논리를 이해하는 시도도 해야 한다. 금융위원회 입장에서는 미등록 외국 결제사가 들어왔다가 갑자기 사라지면 한국 소비자 피해가 생긴다. 자금 세탁 경로가 될 수도 있고, 세금 징수도 어려워진다. 그래서 등록 요건을 두는 것이다. 이 취지 자체는 틀리지 않다. 문제는 취지를 구현하는 방식이 너무 경직되어 있다는 것이다. 영국 FCA나 싱가포르 MAS처럼, 핀테크 전용 샌드박스(sandbox) 라이선스를 만들어 진입 장벽을 낮추면서도 감독은 유지하는 방식이 있다. 한국도 금융 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있긴 하다. 그런데 그 문을 통과한 외국 결제사가 아직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이 문제는 도구의 문제가 아니다. 태도의 문제다. 한국 스타트업이 글로벌로 나가길 바란다면서, 그 스타트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쓰는 기본 도구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모순이다. 마라톤 선수에게 세계 대회에 나가라고 응원하면서, 국제 규격 운동화는 국내 브랜드만 쓰라고 강제하는 격이다. 전자금융거래법 28조가 탈세를 막고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은 맞다. 그런데 그 법이 동시에 한국 창업자를 미국 법인으로 내모는 효과를 낳는다면, 그것은 법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인식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은, 더 이상 실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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