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원래 충돌을 조정하려고 생겼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따르는 법 대부분은 깊은 논의의 결과가 아니라 빠듯한 일정에 쫓겨 나온 타협이다.


왜 제도는 자꾸 현실과 어긋나는가. 대부분은 입법자 역량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꺼낸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수백만 명이 저마다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사회에 하나의 기준을 전국에 동시 적용하면 어딘가에서 반드시 무리가 생긴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불편으로 끝나지만 누군가에게는 생계나 존엄을 건드리는 문제가 된다. 조항 하나가 수십 년 뒤 어떤 결과를 낳을지 입법 당시엔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여기서 AI에 기대를 건다. 그런데 그 기대는 방향부터 다시 잡아야 한다. AI는 완벽한 법을 대신 설계해주는 존재가 아니다. 어떤 제도를 도입했을 때 사회 어디서 충돌이 생길지, 소수자가 어느 지점에서 영향을 받을지, 그 정책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지 데이터와 시뮬레이션으로 보여주는 게 AI의 일이다. 결정은 여전히 사람이 내린다. 문제는 이 도구를 어디에 쓰느냐다. 전국 단위 입법에 얹는다고 법 체계의 근본 문제가 풀리지는 않는다. 진짜 힘을 발휘할 곳은 지역 단위다.


국가가 모든 지역에 같은 규칙을 일률적으로 내려보내는 대신, 각 지역이 자기 상황에 맞는 제도를 시도해보게 하면 어떨까. 한 지역의 시도가 효과를 보이면 다른 지역이 가져다 쓰고, 부작용이 드러나면 빠르게 고치거나 버린다.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다른 실험이 진행되면 사회 전체가 한 번의 잘못된 결정으로 큰 피해를 입을 위험도 줄어든다.


다만 이 구조는 조건 하나가 없으면 그냥 이론이다. 사람이 실제로 옮겨 다닐 수 있어야 한다. 이주에는 값이 붙는다. 언어가 다르고 인맥이 끊기고 직장을 새로 구해야 한다. 이 값이 지금처럼 높으면 제도가 아무리 나빠도 사람들은 눌러앉는다. 그 값이 낮아져야 비로소 인구이동이라는 피드백이 작동한다. 불합리한 규칙을 유지한 지역은 사람이 빠져나가고 합리적인 제도를 만든 지역은 사람이 몰린다. 이 격차 자체가 제도를 다시 들여다보라는 신호다. 그러니까 이동의 자유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이 전체 구조가 굴러가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한 가지만은 선을 그어야 한다. 다수의 의견이 소수자를 억압하거나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선까지 가서는 안 된다. 신체의 자유 표현의 자유 차별받지 않을 권리. 국가는 이 최소한의 틀만 지키고 나머지는 지역 자치에 맡기면 된다.


중앙이 모든 삶을 재단하는 방식은 이미 한계를 드러냈다. AI가 하는 일은 그 한계를 메우는 것이지 대신하는 게 아니다. 어떤 사회를 만들지는 여전히 우리가 정한다.